쓰레기는 버리고, 이산화탄소는 뿌린다.
길에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는 대부분 그 위치 혹은 그 지역의 청결을 훼손하는 수준에 그친다. 물론 일부가 끝까지 살아남아 바다로 흐르고, 그 쓰레기가 다른 국가에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매우 제한적일뿐더러, 쓰레기처리라는 기술적인 해결책이 존재한다. 또한 쓰레기는 내가 버린 위치에 그대로 있고 눈에 띄다 보니, 쓰레기 줍기와 같은 주변 환경 개선 활동이 쉽게 있을 수 있다. 물론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실수로 버렸다면 주워서 쓰레기통에 담으면 된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은 전혀 다르다. 일단 내가 탄산음료를 사서 뚜껑을 열어보자. "치익~" 하고 가스가 빠진다. 그게 바로 이산화탄소다. 기분 나쁜 냄새도, 눈에 띄는 색도 없다. 말 그대로 무형무색무취의 기체가 공기 중에 퍼진다. 이렇게 퍼진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에 섞여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밀도를 올리게 된다. 한번 빠진 이산화탄소는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물론 직접포집이라는 방법이 있기는 하나, 이에 대해서는 이 글의 한참 뒤에 100 편쯤 되었을 때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하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내가 탄산음료 뚜껑을 여는 순간 나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옆나라인 일본과 중국,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유럽 심지어 지구 반대편의 칠레뿐만 아니라 남극에도 소소하나마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제가 이러하다 보니 지금까지 누가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는지 일일이 찾아서 책임을 묻는 것은 쉽지 않다. 쓰레기는 대략 어디서 버려졌는지 쓰레기 내용물이라든가 상표명 등을 보고 유추할 수 있지만, 이산화탄소는 어디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든 모두 동일한 이산화탄소이다. 즉, 탄산음료 뚜껑을 열었을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나, 석탄발전소 굴뚝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나 같은 이산화탄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산화탄소의 책임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기존의 경제활동과 에너지소비 등을 역추적해서 일일이 분석해 보는 방법뿐이다. 수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충분히 신뢰할만한 수준의 결과를 우리는 볼 수 있다.
지구 전체는 매년 350억 톤이 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예전엔 대부분 유럽과 미국이 책임이었다. 1900년엔 전 세계 배출량의 90% 이상이 이 둘에서 나왔다. 1950년대까지도 이 비중은 85%를 넘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지금은 아시아가 절반 가까운 탄소를 배출한다. 특히 중국은 전 세계 배출량의 27%를 혼자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약 15%, 인도는 7%, 유럽 전체는 6% 내외다. 상위 3개국(중국, 미국, 인도)이 지구 전체의 절반 가까운 탄소를 내뿜고 있는 셈이다.
보다시피 대한민국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게 대한민국은 책임이 아니라니까! 그럴 리가. 이렇게 보는 건 그저 국가 단위일 뿐이다. 당연하게도 인구가 많은 국가 즉 중국과 인도 같은 국가가 압도적으로 높은 배출량을 갖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1인당 배출량으로 보자. 왜? 앞서도 말했듯이, 이산화탄소는 그 국가에만 영향이 제한되지 않는다. 즉 인구와 경제력을 모두 고려한 국가단위 배출량은 국제정치의 영역 외에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1인당 배출량은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각 국가의 배출량 감축의 노력이 어느 수준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지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대한민국의 배출량 수준은 어마어마하다. 전 세계 평균 1인당 배출량, 유럽 및 아시아의 1인당 배출량은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고, 중국과 일본의 1인당 배출량 까지도 가뿐히 뛰어넘어 이제는 곧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하지만 조금 덜 엎지를 수는 있지 않을까? 우리 몫은 없다고 발을 빼기엔, 이제 너무 많이 내고 있다. 당장 줄일 수는 없어도, 줄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기후위기는 누구 하나의 책임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문제는 쌓이고, 책임은 흐려진다. 그럴수록 더 명확해야 한다. 지금 내 앞의 선택이 어떤 무게를 갖는지. 탄산음료 뚜껑을 여는 그 사소한 습관조차, 누군가에겐 폭우가 되고, 가뭄이 되고, 태풍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게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 첫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