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걸어갈 사람을 찾자.
가끔 이상형에 대한 질문을 받거나 이상형을 만나는 방법을 다룬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면, 상당한 당혹감을 경험한다. 나는 유독 이상형을 떠올리려고 하면, 흰 눈 같이 새하얀 도화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이상형을 떠올리려고 무진장 애를 쓸수록 오히려 더 깊이 생각하지 못해서 스스로에게도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상형은 개인의 '조건'들이 상징화된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이상형은 단어 그대로 '완벽하다.' 외모든, 직업이든, 집안이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이 나의 옆에 있다고 상상해 보자. 당장에야 거대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르지만, 이는 찰나의 순간일 뿐이다. 이상형이 나와 손을 잡고 결혼이라는 관문을 넘어서려고 하지 않는다면 연인 관계로만 남아있게 될 것이고, 평생 연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렇다고 '조건'을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내가 무작정 희망하는 조건보다는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게 우선이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을 굳이 여기에 밝혀보자면,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과 술도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너무 많이 먹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을 이상형으로 설명하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지구에 있는 인구의 절반은 나의 조건을 충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나의 이상형인 셈이다.
이상형을 생각하지 못하니 시선은 자연스레 '이상향'으로 옮겨진다. 나의 이상향은, 역설적이게도 '지금 이 순간'이다. 지극히 평범한 나날들도 충분히 이상향이 될 수 있다.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분노가 치밀거나 슬프고,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행복한 모든 날은 언제나 '이상향'이었다.
나는 조건에 크게 얽매이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순환하는 계절처럼 없다가도 생기거나 생겨도 없어지는 것이 조건이고, 그나마 갖고 있던 조건은 마치 카드가 뒤집히듯 언제 변할지 모른다. 나는 그저, 나의 이상향에 함께 온몸을 던질 사람이 옆에 있어주기를 바란다. 너무 소박하다고 하면 멋쩍게 웃어넘기겠지만, 이러한 일상들은 그냥 유지되지 않는 점을 고려한다면 소박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상형을, 내가 바라는 조건보다는 '이상향'을 먼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