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를 되풀이할 것

이해에는 착각의 씨앗이 항상 숨어있다.

by 문하현

별생각 없이 '이해한다'는 말을 사용하다 보면, 단어의 오용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발생한다.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사후적인 판단을 가급적이면 거치려고 애쓰는 편이지만, 가끔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꼬여버리는 바람에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해에는 나만의 착각이 어느 정도 섞여있다고 봐야 한다. 당장 AI만 보더라도 환각, 즉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처럼 만들어내서 사용자로 하여금 무엇이 사실인지 혼란스럽게 만들듯이 사람의 이해도 동일선상에 있다. 완벽한 이해는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해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해는, '되풀이되어야 한다.'


책이나 뉴스의 내용을 이해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일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혹여나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시켜서는 안 되니까. 가장 조심스러워야 할 때는, '당신을 이해한다'라고 표현할 경우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의미와 같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해하는 과정 자체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우리가 각별한 누군가를 이해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그 사람의 말과, 행동과, 성격과, 맥락과, 그리고 기타 등등 모든 정보를 빼놓지 않고 수집하게 된다. 정보를 취합하며 어떠한 방향이든 결론으로 도달하는 과정에서, 순식간에 나의 감정과 생각이 개입해 이해의 지평을 넓힌다.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울퉁불퉁한 원석을 나의 방식으로 조심스레 다듬어나가는 것이다. 여기서 나의 방식은 그저 거드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 잘못된 방향으로 깎거나, 너무 많이 깎아내면 그 순간부터 원석은 '그 사람'의 원석이 아니게 되어버린다. 다듬는 일은 전적으로 '이해받는 그 사람'과 공명하는 과정 아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해는 원석의 형태를 그대로 굳히는 과정이 아니다. 나의 방식을 대상과 조율해야 할 뿐만 아니라, 원석도 대상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어야만, 나은 이해의 형태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각별한 대상에게 이해한다는 말을 건넬 땐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일을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다. 나의 방식에서 '오류'가 발견된다면 그 사람의 기준에 맞춰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게 항상 몸과 마음이 활짝 열려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