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하지 않아도 공감해 줄 수 있다.
대화의 잔잔한 물결 속에서 공감이 물방울처럼 작게 피어오를 때가 있다. 물살에 실린 공감은 '받는 사람'이 터지기 전에 발견해서 조심스럽게 두 손바닥으로 떠야 오랫동안 터지지 않은 상태로 유지될 수 있다.
공감이 이루어지는 요인 중에는 '공통된 경험'이 있다. 공감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의 공통된 경험이 있다면 공감은 훨씬 수월하게 이루어지고, 관계를 한층 단단하게 다지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이른바 동질감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다. 흔히 '겪어봐야 안다'는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공통된 경험을 겪을 필요는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공통된 경험은 공감의 '해상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단지 충분조건일 뿐이다. 물론, 공통된 경험은 이미 한번 겪은 일이기에 공감을 받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있어 수월하다는 점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공통된 경험이 없다고 해서 공감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명하지 못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더욱 열심히 '들어준다면', 그 자체로 매우 높은 해상도의 공감을 받는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공감을 진정으로 상대에게 전하고 싶다면 '경청'을 필요조건으로 삼아야 한다. 상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으면, 내가 상대와 같은 감정을 공유받지 못해 정서적인 연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감이란 건, 결국 같은 감정을 얼마나 '잦은 빈도'와 '진한 농도'로 느끼는지에 따라 관계의 향방도 좌우된다. 언제 생생한 공감을 주고받았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와의 거리가 까마득하게 멀어졌다는 경고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다.
한 가지 더 조심스럽게 짚고 넘어갈 점은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마치 진열대에 보석을 전시하듯이 유려하게 꾸미는 데에만 온정신을 쏟기보다, 잠시 나를 내려놓은 채로 가만히 옆에서 상대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줄' 준비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항상 대화에 참여할 때 명심하고 또 명심하지만, 가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속사포처럼 쏟아내지 않았는지 한 번쯤은 돌아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