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사랑한다면, 밑바닥까지 함께 떨어지자.
어느 한 사람의 전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그 사람의 '밑바닥'이 가감 없이 드러나게 될 때, 비로소 전부가 낱낱이 까발려지게 된다.
밑바닥이란 한 사람의 '본래 모습'을 말한다.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본래의 모습은 특정한 사건, 즉 인생의 거대한 변곡점을 마주하게 될 때 드러날 수 있다. 변곡점을 넘어서는 과정이 거칠고 험난한 나머지 평상시라면 드러나지 않았을 새로운 모습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보통은 밑바닥이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에 관해서만 확인하려고 하지만, 밑바닥은 '제한이 없다.' 제한이 없다는 것은 밑도 끝도 없이 내려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밑바닥은 변곡점이 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따라 '하한선'이 정해진다. 불현듯 잘만 통과하던 길을 막아버린 변곡점이 비교적 넘어가기 수월하다면 하한선도 높아져 더 아래로 낮아지지 않을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한선은 시시각각 변한다.
밑바닥이라는 말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부정적인 면만을 조명하는 의미가 내포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의 본래 모습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평가할 게 없다. 전적으로 주관적 판단에 달려있을 뿐이다. 심지어 카메라로 연속 촬영을 해서 출력된 사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미세하게 다른 부분을 찾아볼 수 있듯이, 본래 모습은 액자에 담긴 사진처럼 고정할 수도 없고, 고정되지도 않는다. 당장에, 나의 본래 모습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게 되면 스스로도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기 어렵다. 나는 언제나 '나'였을 뿐이다. 나조차도 나의 밑바닥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할 수 없다.
한 사람의 밑바닥이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바로, '밑바닥까지 함께 내려가보는' 것이다. 밑바닥은, '마땅히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정말 아끼는 사람이 아니라면 활용할 수 없다. 대게는 밑바닥을 곁눈질로 확인하려고만 할 뿐, 함께 내려가보겠다는 생각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고 위험도 감수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결국 사람에게 있어 한층 깊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은, 밑바닥이 어디까지든 간에 함께 내려갈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한 번쯤은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밑바닥도, 그리고 상대방도 몰랐던 상대방의 밑바닥도 함께 감수하려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