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아이젠크Michael Eysenck와 동료들이 연구한 주의 통제 이론attentional control theory에 따르면, 불안과 걱정, 염려 등의 부정적 감정은 우리가 목표를 향해 쏟아야 할 주의력을 망가뜨리고 외부 자극이나 공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한다. 부정적 정서는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는 데 기울여야 할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외부에서 다가오는 불편한 자극에는 보다 예민하고 과하게 반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상담과 코칭을 진행해보면, 자신이 스트레스 때문에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고 있거나 몸의 한 부분이 아프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음이 너무 힘들고 지친 상태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 세 가지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1) 나는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가?
2) 일을 하거나 사람들을 대할 때 평소와 어떻게 달라지는가?
3) 신체의 어떤 부위에서 고통을 느끼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몰랐던 적이 있다. 나는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되면 두통이 심해지고 말수가 줄어든다. 집중도가 많이 떨어진다. 사회생활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까지는 이를 잘 알지 못했다. 그저 ‘바쁜데, 이럴 때가 아닌데’ 하며 조급해했고, 그래서 마음이 힘들다고 보내는 신호, 좀 천천히 가라고 울리는 경고를 자꾸 무시하곤 했다.
머리가 아픈 것을 꾹 참고 일하려니 표정이 굳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나를 불편해하고 있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 어느 날, 가까운 동료가 내게 말해주었다.
“하유진 씨는 기분이 안 좋고 지칠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아요? 얼굴이 굳고, 원래도 말이 없는데 갑자기 더 말이 없어져요. 말을 걸기도 어려울 만큼. 함께 일하는 일터에서는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그런다고? 나만 모르고 주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고?’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다 맞는 말이었다. 스트레스를 버티며 일하고 사람들을 대하는 나를 떠올리니 보였다. 편두통을 견디느라 미간을 찌푸리고 표정은 굳은 채 입은 꾹 다문 나의 모습이 말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후부터 스트레스가 심할 때 내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의 변화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힘들고 지칠 때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신체 어디에서 아프다는 신호가 오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요즘은 일하다가 두통이 심해지고 말수가 줄어드는 상황이 되면 잠깐 멈춤을 한다. ‘내가 너무 긴장하고 있나 보다’, ‘마음을 너무 졸이고 있나 보다’ 하고 알아준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 편두통이 심해지고 예민해진다."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편두통이 심해지고 예민해지면 --> 내가 지금 스트레스가 심한가 보다."를 깨닫고 "워, 워~, 잠깐 Stop!"사인을 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을 대할 때 더 주의를 기울인다.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도록 긴장된 표정을 의식적으로 풀어보려 하고, 말을 조금 더 친절하게 하려고도 노력한다. 잠깐 짬을 내어 따뜻한 차를 마시거나 편안한 음악을 듣기도 하고, 산책을 하면서 꽉 조인 머리를 느슨하게 해보기도 한다. "잠깐 멈춤"의 시간을 주고 나 자신을 돌보는 작은 행동을 통해 스트레스가 더 심해지는 것을 막으려 노력한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알람이 있다.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신호가 있을 것이다. 마음이 힘들고 스트레스에 눌릴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느 부위가 아픈지, 어떤 고통이 오는지 파악하자. 예를 들어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충동적으로 잔뜩 구입하는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 다리를 심하게 떨 수도, 입술을 깨물 수도 있다. 머리카락을 배배 꼬다 뽑아버릴 수도 있다. 혼잣말이 늘 수도 있다. 중얼중얼하는데 들어보면 전부 욕설인 경우도 있다. 그밖에도 눈에 띄게 성급해지는 사람이 있고, 뚜렷한 진전은 없이 자꾸 자신을 바쁘게만 몰아가는 사람도 있다. 결정을 못 내린 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거나, 서류를 계속 들여다보고도 무엇을 봤는지는 기억을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과 친하고 편한 이들에게 유독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먹기만 하면 체할 수도 있고, 잘 자던 잠을 못 자게 되기도 한다.
이 중에서 당신이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하는 행동이 있는가? 스스로를 유심히 관찰하고 파악해두자. 일하다가 또는 사람을 대하다가 문득 평소와는 다른 부정적 행동을 하고 있음을 깨닫거든 '혹시..' 하고 살펴주자. 어쩌면 당신은 많이 긴장이 되고 힘들고 불안한데 열심히 일만 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다음 질문에 대해 답을 생각해보는 것은 스트레스에 눌린 자신을 이해하고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1) 스트레스가 심할 때 나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기는가?
- 예) 편두통이 생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과식을 한다, 매운 음식을 찾는다, 평소보다 말을 공격적으로 하여 갈등을 키운다, 자꾸 허둥댄다, 중도에 포기하려고 한다, 등
2) 이런 상태가 되면 어떤 점을 조심해야 할까?
- 예) 결정을 조금 미룬다, 서류를 조금 천천히 읽는다, 상대방에게 욱하며 하고 싶은 말을 참아본다, 왜 이렇게 엉망이냐며 나를 욕하지 않는다, 등.
3) 나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 예) 잠을 좀 더 충분히 잔다, 불필요한 약속을 줄이고 휴식 시간을 확보한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 속내를 털어놓는다 '요즘 내 마음이 엉망이야..힘드네',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한다. 내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은 '그러려니'하고 털어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등.
스트레스가 심할 때 나는 '이런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아두면 나도 모르게 '이런이런' 행동을 하고 있을 때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엇! 나 지금 힘든가 봐!" 그리고 조심할 수 있게 된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마음이 불편한 일이 수시로 생긴다. 그래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마음을 잘 관리한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지치고 예민한 상태를 지속하며 밀어붙인다고 해서 일이 빨리, 잘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잘살피면서 일하자.
* 《월요일 아침의 심리학》(청림출판)_4장. <흔들리는 마음. 그냥 두지 말고 내 마음 돌보기> 일부를 정리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