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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진 Nov 15. 2019

중앙일보 인터뷰

중앙일보_폴인fol:in

나는 왜 일을 하는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이 일이 아니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걸까.


나와 일은 어떤 관계일까?


모두 "일의 의미"에 대한 질문입니다.

며칠 전, 중앙일보 정선언 기자님과 "일의 의미"를 주제로 즐겁게, 매우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중앙일보 사이트에 인터뷰 내용이 올라왔네요. 이곳 브런치에도 전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저성장으로 선택의 폭이 넓어졌어요. 그래서 우리는 묻게 된 겁니다. 왜 이 일을 하는지 말이죠.


13일 만난 하유진심리과학연구소 하유진 대표는 ‘왜 사람들이 ‘일의 의미’를 묻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 일도 할 수 있고, 저 일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의미’에 집중하게 됐다는 거다. 하 대표는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겸임교수이자 <월요일 아침의 심리학> <내가 이끄는 삶의 힘> 등을 펴낸 심리학 박사다. 그런데 잠깐, ‘이 일도 할 수 있고 저 일도 할 수 있다’니, 그럴까?  



Q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니 무슨 얘긴가요?

A 과거엔 길이 정해져 있었어요. ‘대학을 졸업하면 대기업’ 이런 식으로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타트업에 갈 수도 있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유튜버로 살아갈 수도 있죠. 유튜버로 살아간다고 생각해볼까요? 그럼 그 많은 것 중에서 무엇에 대한 영상을 만들어야 할까요?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할 수밖에 없어요.


Q 대학을 졸업한다고 모두 대기업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게 아닐까요?

A 과거엔 대졸자 정도는 대기업이 고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어요. 이른바 고성장 시대였죠.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요행히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해도 마찬가지죠. 예전엔 회사에 인생을 바치면 그만큼 보상해줬어요. 연차가 쌓이면 연봉이 올랐고, 승진도 시켜줬죠. 정년을 보장해주는 걸 넘어 퇴임 이후엔 관계사나 협력업체 임원 같은 자리로 보내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죠. 조직개편이란 이름의 구조조정과 희망퇴직 같은 게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Q 저성장 덕분에 일과 혼연일체였던 내가 분리되기 시작한 거로군요.

A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긴 했지만, 절대적으로 보면 과거보다 풍요로워졌어요. 고성장하던 과거엔 절대적으로 가난했고요. 그때도 사람들이 일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다만 그 문제가 도드라질 수가 없었던 거죠. 문득 ‘내가 여기서 뭐 하나’ 질문하지만, 곧 잊혀집니다. 집도 사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고, 노후도 준비해야 하고요.


Q 지금도 집도 사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고, 노후도 준비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인데요?

A 서울의 아파트 중간값이 7억 원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서울에 한정한다면 집은 더는 누구나 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집을 사지 않는다면, 맞지 않는 일에 저당 잡혀 살 이유가 그만큼 줄어들 테고 말이죠.


Q 일과 나 사이의 균형을 잡는 출발점은 뭔가요?

A 모든 것의 출발점은 나죠.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의미도 달라지고, 균형점도 달라질 테니까요.


Q 나를 알아야 한다는 건가요?

A 제가 심리학을 공부하고, 상담과 코칭을 하게 된 건 제가 우울감을 안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어요. 내 문제를 해결하고 또 나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을 돕고 싶었거든요. 나는 뭘 좋아하고, 나에겐 무엇이 중요한지 같은 것들을 찾아야 합니다.

  

Q 나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제자 중에 UN에서 일하고 싶어 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UN 같은 성격의 기구가 자기에게 맞을 것 같다고요. 그런데 인턴을 해보면서 꿈을 접었죠. 역동적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매우 정적인 조직이었다는 겁니다. 이런 경우가 꽤 많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로 겪어본 내부는 다르죠. 그러니 겪어봐야 합니다.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가고 싶은 곳 등이 있으면 크고 작은 기회를 찾고 만들어서 경험해보길 권합니다.


Q 일에 끌려가지 않고 일을 주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나를 이해하는 걸 넘어 의사결정의 중심에 내가 있어야 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 해도 남의 시선으로 의사 결정한다면 소용없어요. 사실 우리 사회는 의사결정의 중심에 ‘나’가 아니라 ‘남’이 있는 경우가 많죠.


Q 모난 돌이 정 맞는 사회인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A 저성장의 역설을 떠올려보세요. 정 맞을까 봐 내 길이 아닌 길을 가면 분명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일의 의미는 곧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다. 하 대표는 그걸 ‘소명의식’으로 설명했다. 소명은 영어로 ‘calling’, 즉 신의 부름이다. 하 대표는 “과거에 소명이 신의 부름이었다면, 현대인에게는 내면의 목소리, 나의 부름”이라며 “일의 의미를 찾는 건 곧 나의 목소리에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Q 일이 소명이 될 만큼 인간에게 일이 중요한가요? 건물주가 되고 싶다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일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큰 것 같습니다.

A 일하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니라 안정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 같아요. 빌딩이 있으면 월세가 나오니까, 하고 싶은 일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잖아요. 모험도 할 수 있고요. 부자가 되고 싶다는 것도 비슷합니다.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은 간절함이 부자나 건물로 발현되는 거죠.


Q 일해야만 한다면, 누구나 나를 해치지 않고 일하고 싶어 할 겁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은 듯해요. 번아웃 증후군이란 말이 등장할 정도니까요. 심리학자로서 나를 해치지 않고 일하는 방법을 조언한다면 어떻게 있을까요?


A 일하면 에너지를 씁니다. 그럼 충전을 해야 해요. 충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마다 회복하는 방법이 달라요. 사람을 만나서 웃고 떠들어야 회복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사람도 있고요. 나만의 충전 방법을 찾고, 의식적으로 충전해야 합니다.


[출처: 중앙일보]  "저성장의 역설···취업난에도 사람들이 일의 의미 묻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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