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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진 Dec 26. 2019

"열하나 해봐!"

누군가의 가슴을 찌르는 말

이번 학기 심리학 수강생 중에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A)이 있었다. A는 두 살 때 원인 모를 이유로 청력을 잃었고,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소리를 완전히 듣지 못하니 자신이 말할 때 발음도 조금 다르게 들릴 수 있다는 내용도 알려주었다.  "미리 말씀드려야 놀라지 않으실 것 같아서..." 설명을 잘 듣지 못하는 부분은 입술 모양도 읽고, 대필 도우미의 도움도 받아 수업에 열심히 임하겠다는 말도 전했다.

     



이번 학기 첫 번째 과제는 자기소개였다. A는 첫 장에 밝게 웃는 표정의 사진을 붙이고 글을 시작했다.

"나는 두려워도 앞으로 나아간다. 많지 않은 나이지만, 극복해낸 사례들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나아가려고 한다."


보고서에는 A가 청각 장애인으로 겪는 불편함을 감내하며 단단하게 살아가려는 의지를 담은 문장이 차분하게 담겨있었다.      


얼마 후 학생들에게 두 번째 과제를 내주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그 안에 담긴 나, 경험, 사건과 사람들을 돌아보도록 했다. 과제를 마치면 지원자를 받아 자신의 내용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난 A를 따로 불러서 혹시 발표해보면 어떻겠는지를 물었다. A가 살아온 삶과 그에 대한 신념을 또래 학우들과 나누면 좋을 것 같았다. 내 제안이 의외였는지, A는 당황해했다.


저보고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하라고요?
아시다시피 저는...



나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권하는 것인데 혹 불편하면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편하게 알려달라고 했다. A는 일주일만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A는 말했다.


한 번 해보겠습니다.



이주일 후, A는 강단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발표를 시작했다.   

"저는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말하는 소리도 조금 이상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다른 학우들이 발표할 때보다 더 집중해서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A는 두 살 때 청각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학우들에게 청각장애인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이후 청각을 잃은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A는 미국으로 건너가 몇 차례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고, 재활치료를 받으며 학교에 다녔다. 미국에서 지내며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것 때문에 특별히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친절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A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과 좀 달랐다. A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아프게 인지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자신이 잘 듣지 못한다는 것을 고려해주지 않았다. 배려도 없었다. 듣고도 못 듣는 척하는 거라고, 안 들린 척하는 거라고 수군댔고, 발음이 어색한 것에 대해 "쟤 뭐라는 거야"라며 놀리거나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어느 날, 친구가 입은 옷을 보고 다가가 예쁘다고 말했는데 옷을 달라고 했다며 이상한 애라는 소문이 돌았다. 자신이 말한 내용은 자꾸 나쁘게 왜곡되어 돌아다녔다. 선생님도 친구들의 말만 듣고 자신을 평가했다.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자꾸만 멀어졌다.


어느 날 체육 시간.

선생님은 두 명씩 짝을 지어 서고 앞에서부터 번호를 부르며 앉게 했다. A는 키가 커서 맨 뒤에 섰는데 반 전체 인원이 홀수여서 혼자 서 있게 되었다. A는 순서가 왔을 때 "열하나"를 외치고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들이 웃기 시작했다. A는 궁금했다. "왜 웃지? 내가 뭘 잘못했나?"


선생님은 앞에서부터 번호를 부르며 앉는 것을 여러 번 하게 했다. 친구들은 A가 '열하나'라고 외칠 때마다 웃었다. A는 '내 발음이 잘못돼서 그런가, 내가 너무 작게 얘기했나, 더 정확하게 해 보자'라고 생각했다. 점점 더 긴장하게 되고 겁이 났지만, 자신의 차례가 올 때마다 "열 하나!"를 더 분명하게 소리 내려고 애썼다. 그런데 친구들은 매번 더 크게 게 웃었다. 아무도 A에게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어른인 선생님조차도.  


며칠 후 운동회를 하던 날. 한 아이가 자기 엄마를 A에게 데리고 왔다. 그리고,  

"엄마, 얘가 내가 얘기한 그 애야."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야, 열하나 해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A는 그 자리를 뛰쳐나갔다. A는 그 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이때가 내가 청각장애라는 정체성을 확연히 자각한 경험이었다. 단지 발음이 좀 다르다는 이유로 웃음거리와 구경거리가 되었다는 것에 목 안에서 알 수 없는 뜨거움이 올라온 기억이 남아 있다. 근데 우습게도 나는 그걸 우리 어머니한테 말하지 않았었다. 어릴 때의 나는 ‘차별’이라는 것이 무언지 몰랐다. 내가 청각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A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어서도 놀림을 받았다. 따돌림도 많이 당했다. 조를 이루어 과제를 할 때면 모두들 A를 피했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A의 마음에서는 아픈 생각이 굳어가고 있었다.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잘못해서 그래.


A는 자신감을 잃었고, 위축이 되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가 겁이 났고, 점점 말을 안 하기 시작했다.


강의실에 있었던 우리 모두, A를 제외한 나와 학생들은 모두 비슷한 감정을 가졌던 것 같다. 미안함, 부끄러움, 안타까움, 분노, 의문. 그 마음들이 가득차 아무도, 아무런 말도 못 하고 A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되면서 다행히 A에게 친구들이 생겼다. 친구들은 A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했다.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도움을 주기도 했다. A도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공부에도 집중할 수 있었다.


A는 말했다.


두 살 때 청각을 잃은 사건, 그리고 힘든 수술을 해야 했던 시간들은 내게 그다지 큰일이 아니다. 그건 그냥 내게 생긴 일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있을 수 있다고. 그런데, 정작 나를 아프고 힘들게 한 것은 "사람들"이었다. 대학생이 되었지만 아직도 팀 과제 등을 할 때면 나를 피하는 게 느껴지고, 나를 불편하게 여기는 것이 느껴진다.  


A의 발표를 듣고 몇몇 학생이 질문을 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대해주면 제일 좋을 것 같은가요? 어떤 점을 조심해주면 좋을 것 같은가요?"


A의 대답은 간단했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얘기하면 알아듣기 힘들어요. 소리가 섞이고 입모양을 한 번에 여러 명 보기도 어렵거든요. 하지만 한 명씩 얘기하면 거의 다 이해할 수 있어요. 조금 천천히 얘기해주면 더 좋고요."


"간혹, 배려하는 마음에 저를 두고 제 옆에 있는 필기 도우미 학생에게만 얘기하고 전달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냥 저에게 편하게 얘기해 주세요. 저도 여러분과 이야기하고 싶고, 친해지고 싶어요."


조금 쑥스러워하며 이런 이야기도 전했다.

"저는 게임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저랑 게임하고 싶은 분 있으면 알려주세요. 같이 해요.."


그 날 우리는 한 학기 동안 공부한 학문적 내용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을 나누었다.

어리고 여린 A를 제일 아프게 한 건 사람이었다. 그런 A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준 것도 사람이었다. 사람을 제일 아프게 하는 것도 사람이고, 마음과 손을 내밀어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도 사람이라는 것을, 살다가 종종 깨닫는다.




A는 그 날 이후 조금 밝아졌다. 주변에 앉은 학우들과 인사하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늘 조용히 듣기만 했던 수업시간에 손을 번쩍 들고 대답을 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뜨끈해졌다.


기말고사 시험지를 제출하며 A는 다가와서 말했다.

"저 발표한 거..., 처음에는 하기 싫고 무섭기도 했는데요, 저에게 정말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아요. 해보길 잘한 것 같아요."


그동안 겪은 어려움을 생각하며 청각 장애를 가진 후배들을 위한 과외 선생님이나 멘토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전한 A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보고서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나는 나만의 싸움 속에서 열심히 살아왔다. 괜찮다."   




"열하나 해봐!"

이게 어디 "열하나"라는 단어를 발음해보라는 말 그대로 만일까. 누구에게도 절대 가지면 안 되는, 전하면 안 되는 아프고 나쁜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적지 않아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의미들을 모두 아실 것 같다. 궁금하다. 그때 왜 A주변에 있던 선생님들은, 학부모들은 그게 왜 잘못된 행동인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성적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말과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바로 잡아주는 것이 진짜 교육이 아닐까.




종종 깨닫는다. 사람을 아프게 하고 무너뜨리는 것도 사람이고, 상처 입고 슬퍼하는 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고 다시 웃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역시, 사람이다. 


마음은 우리 모두 후자인 사람이 되면 좋겠다. 만일 바쁘게 사느라 누군가를 배려하고 위로하는 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누구에게도 "열하나 해봐!"라는 말은 함부로 하지 않는 우리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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