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에 맞서고 다음에도 이겨낼 수 있도록 준비하고 단련하는 게 인생이다. 이런저런 파도를 겪어내며 우리는 다치고, 아물고, 성장한다.
바둑 용어에 복기(復棋)라는 것이 있다. 이미 승패가 결정된 바둑을 앞서 놓은 순서대로 다시 두는 것을 뜻한다. 경기의 승패와 관계없이 바둑 기사들은 매 경기를 복기하면서 무얼 잘했는지, 어디서 잘못했는지, 상대방의 전략과 수는 어땠는지, 무엇을 더 신경 써야 할지 찬찬히 살펴본다. 다음에 더 멋진 승부를 펼치기 위한 일종의 복습 과정이다.
복기는 일상에서도 유용한 도구가 된다. 중요한 발표나 프로젝트를 마치고 난 후, 처음부터 다시 찬찬히 살펴보면 어떤 부분이 괜찮았고, 어떤 부분을 바꾸면 좋을지 정리가 된다. 또한 잘못된 부분은 고치고 실수는 반복하지 않게 해주는 역할도 해준다.
나아가 인생에도 복기가 필요하다. 가로세로 몇 뼘밖에 안 되는 바둑판 위에서 몇 시간 동안 진행한 바둑 한 판에도 돌아볼 부분이 많은데, 수십 년 살아온 인생 안에는 돌아볼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는 인생이지만 모두 다 내 것이다.
심리학자 하유진은 ‘인생 곡선’을 그려보기를 권한다. 종이를 준비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뉘인 T자를 그려보자. 시간은 오른쪽으로 갈수록 최근에 가깝고 좋은 일은 위쪽에, 아프고 힘들었던 일은 아래에 점으로 표시한다. 각 사건에 점수도 매겨보면서 더 좋았던 일은 더 높이, 더 힘들었던 일은 더 아래쪽에 표시한다.
중요한 시점을 표시하고 생각해 보았다면 이제는 점들을 곡선으로 이어보자. 점들은 파도처럼 곡선을 형성하며 하나의 그래프가 된다. 모두 연결해 보면 지나간 20년, 30년 세월이 한눈에 보인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지금의 나를 더 깊고 솔직하게 이해하게 된다.
배우 유해진 씨는 자신이 출연하는 작품을 파도타기에 비유했다. 고난이 심한 작품을 하고 나면 보다 수월한 작품을 만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인생도 파도타기에 비유할 수 있다. 삶의 여정에서 좋은 파도만 만날 수는 없고, 나쁜 파도라고 해서 피할 수도 없다.
힘든 일에 맞서고 다음에도 이겨낼 수 있도록 준비하고 단련하는 게 인생이다. 이런저런 파도를 겪어내며 우리는 다치고, 아물고, 성장한다.
[MK스타일 김석일 기자 / 도움말 : 하유진 (‘나를 모르는 나에게’ 저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