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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진 Jan 17. 2018

제빵사 정웅_오월의 종

2016년에 한 신문에 소개된 "빵집 사장님" 이야기

기사 소개(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파란색 글씨로 표시)와 함께 몇 가지 생각도 정리해보았다.




보증금까지 모두 날리고 2007년 가게 문을 닫았다. 빵 열 개를 만들면 아홉 개가 팔리지 않은 탓이었다. 온종일 분유 한 통 살 돈조차 벌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빵집 '오월의 종' 주인 정웅(48)은 "돌아보면 여기까지 온 게 신기하다"고 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옛날 얘기는 그저 거짓말 같다. '오월의 종'은 이제 '성공한 동네 빵집'의 표본으로 불린다. 서울 한남동과 영등포에 세 지점을 거느린 이 빵집은 '줄 서서 빵 사 먹는 곳'으로 유명하다. 오전 11시에 문을 열자마자 빵 사려는 손님들이 길게 늘어서고, 오후 2~3시만 되면 대부분의 빵이 팔려나가서 살 수가 없다. "'오월의 종' 빵을 사러 지방에서 올라왔는데도 결국 허탕 쳤다" "일본에서 찾아왔는데도 결국 못 먹고 간다"는 글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올 정도다. 대기업이 여러 차례 인수하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소문난 빵집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난 12일 만난 정웅은 대뜸 "아무래도 가게 수를 줄여야겠다"고 말했다. "손님이 너무 많으면 빵에 몰두할 시간이 줄어들거든요. 지금껏 기업(企業)이 되지 않으려고 애써왔어요. 지금도 전 사업가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그가 건넨 명함엔 대표 같은 직함도, 셰프(chef·한 식당의 수장)나 파티시에(patissier·과자 만드는 사람)같이 유행처럼 쓰는 수식어도 없었다. 그저 제빵사(baker)라고 적혀 있을 뿐이었다.

정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게 저예요." 아침 10시. 가게엔 갓 구워낸 빵 냄새가 짙은 안개처럼 낮게 깔렸다.

 


이토록 지독한 빵 가게

'오월의 종'엔 없는 게 많다. 시식 빵이 없고 포장 서비스가 없고 케이크가 없다. 할인 행사도 하지 않는다. 밸런타인데이, 가족의 달 오월에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빵집 장사가 가장 잘된다는 크리스마스엔 아예 가게 문을 닫는다. 정웅은 "사람들이 오로지 빵만 보고 빵을 사는 가게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인 얼굴이나 알록달록한 간판, 예쁜 포장이나 1+1 이벤트 말고 정말 빵만 보고 사가는 거죠. 왜냐하면 여기는 빵집이니까요(웃음)."

시작은 빵과 거리가 멀다. 대학에서 무기재료공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시멘트 회사에 연구원으로 취직했다. 이후 무역회사로 옮겼고 거래처 직원과 결혼했다. 한 달 수십억 원어치의 계약을 따낼 정도로 일을 잘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의 틀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 창 밖으로 어느 날 제빵학원이 보였어요. 그날 깨달았죠. 내가 저 창문 밖에 뭐가 있는지 지금껏 보지도 않고 살았다는 걸요." 사장도 주변 친구들도 모두 그를 뜯어말렸다. "너 같은 공돌이가 난데없이 빵을 굽겠다니 미친 것 아니냐." 뜻밖에도 아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라"고 했다. 정웅은 "'딱 4년만 내게 시간을 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고 했다.

사표를 내고 33세에 제빵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남들처럼 외국 유학을 할 여유는 없었다. 2년 동안 하루 여덟 시간씩 빵을 만들었다. 자격증을 따고 나선 홍대 '리치몬드 제과점', 압구정 '정글짐 베이커리'에서 일했다. 가게에서 그는 가장 나이 많은 직원이었다.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 화장실 청소 같은 온갖 허드렛일을 했다. "시키는 건 뭐든지 해야 했어요. 아내와 약속한 시간을 지켜야 했으니까요."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한 덕에 '정글짐'에선 곧 반죽을 맡을 수 있었다. 반죽은 빵의 꽃이다. 매일 사람 키보다 큰 반죽 기계를 세 개씩 혼자 돌렸다. 기계 하나에 밀가루가 80kg도 넘게 들어간다. 혼자 매일 240kg가 넘는 밀가루를 나르고 주무르고 치댔다. 완성된 반죽을 여기저기 나르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 시절을 견딘 덕에 체력이 엄청 좋아졌어요. 지금껏 새벽 4시부터 밤 12시까지 매일 빵을 만들 수 있는 것도 다 그때 훈련한 덕분입니다."

 2004년 5월 일산에 '오월의 종'이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열었다. 37세였다. 가게 이름은 대학 시절 늘 즐겨 듣던 팝그룹 비지스의 노래 '퍼스트 오브 메이(First of May)'에서 따왔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달콤한 케이크는 팔지 않았다. 호밀빵, 바게트 같은 정통 발효 빵만 팔았다. 사람들은 "그 집 빵이 딱딱하고 맛이 없다"고 했다. 팔리지 않는 빵이 수두룩했다. 시큼한 효모 냄새를 맡고 "상한 빵을 판다"고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안 팔리는 빵을 버리기 아까워 창가에 장식처럼 놔뒀더니 연말쯤엔 크리스마스트리만 한 높이까지 쌓였다. 건물 주인이 "장사가 이렇게 안 돼서 어떡하느냐"면서 종종 20만~30만 원어치씩 빵을 사가기도 했지만, 결국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새 아이 둘이 태어났는데 생계는 여전히 아내가 책임지고 있었다.

그 무렵 누군가가 "한남동에 괜찮은 가게 자리가 났는데 가서 한번 보라"고 했다. 돈 한 푼이 없으니 봐야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래도 한번 가게를 구경이나 해보겠다는 심정으로 찾아갔다고 했다. 쓱 둘러보고 나오는데 어떤 중년 여성이 말을 걸었다.

"어떻게 왔수?"

"가게 보러 왔는데요."

"뭐할 건데."

"빵 가게요. 근데 돈이 없어서 못 해요." 

그 여성이 대뜸 이렇게 물었다. "얼마가 모자라는데?" 

정웅은 짜증이 났다. "한 푼도 없어요." 

"그럼 내가 빌려주면 되나?" 그 여성은 인근 부동산 주인이었다.

5000만 원을 그 자리에서 빌려 가게를 얻었다. 몇 년 뒤 정웅이 그녀에게 "대체 뭘 보고 처음 만난 내게 돈을 빌려줬느냐"고 묻자 부동산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내가 여기서 몇십 년을 살아서 얼굴만 봐도 이 사람이 몇 년 일할지 알거든. 근데 당신은 앞이 안 보이더라고. 답이 영 안 보였어. 그래서 도와줬어."


미련하게 빚고 무모하게 굽고

기적처럼 얻은 가게인 만큼 보통 사람이면 '이번엔 장사에 꼭 성공하겠다'고 생각했을 텐데 정웅은 반대였다. 그는 "이번 가게가 또 언제 망할지 모르니, 이번엔 정말 원 없이 하고 싶은 것만 하자고 결심했다"고 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매일 천연 발효종을 기르고 밀가루를 반죽해 빵을 빚었다. 바게트, 캉파뉴, 사워도우 빵처럼 사람들이 '딱딱하고 심심해서 안 먹는다'고 말하는 빵일수록 빚고 또 빚었다.


빵의 시작, 빵의 기본을 알고 싶었다. 손님은 뒷전이었다. 때론 손님이 찾아와서 말을 걸면 빵 만드는 데 방해가 된다고 가게 문을 걸어 잠근 적도 있었다. 육신이 너덜거릴 때까지 빵을 만들고, 가끔 빵에 지쳐 쳐다보기도 싫은 날이 생기면 가게 문을 닫고 고수부지에 앉아 온종일 하늘만 봤다. 그렇게 꼬박 삼 년이 흘렀다.

정웅은 "아직도 처음으로 빵이 모두 팔린 날을 기억한다"고 했다. "매일 빵을 내다 버리는 게 일과였는데, 어느 날인가 빵이 다 팔렸어요. '오늘 대체 무슨 일이 있나' 했는데 그다음 날도 빵이 다 팔리더군요. 그날이 시작이었어요. 빵이 매일 오후만 되면 다 팔려나가는 게."
 

"그렇게 안 팔리던 빵이 대체 왜 갑자기 팔려나가기 시작했을까요"라고 묻자 정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저도 여러 번 생각해봤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삼 년 동안 한두 명씩 찾아오던 손님이 그 시간을 버티니 축적돼서 그렇게 많아진 것일 수도 있고, 입소문의 힘일 수도 있죠. 어찌 됐건 줄을 한 번 서니 다들 '저 집 빵이 뭐가 다른가' 하고 더 찾아왔고요.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 덕을 봤다는 생각도 합니다."


궁극의 빵, 극한의 빵

정웅의 일과는 2004년 처음 가게를 열 때와 거의 달라진 게 없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반죽을 시작하고,

가게 문을 닫고도 밤 12시까지 다음 날 영업을 위한 재료를 준비한다. 다른 빵집들이 오전 8시~오전 9시에 문을 열고 출근길 손님을 맞는 것과 달리 오전 11시에 문을 여는 건 그때 비로소 바게트가 구워지기 때문이다. 정웅은 "새벽 4시부터 반죽해서 구우면 11시에야 바게트가 완성된다. 그전에 문을 열려면 밤을 새워야 하는데, 그렇게 일해선 가게를 꾸준히 운영할 수가 없다"고 했다.

다른 빵집들이 최고급 수입 밀가루와 버터를 쓴다고 홍보하는 것과 달리, 정웅은 여전히 어디서나 살 수 있는 국산 밀가루로만 빵을 만든다. '오월의 종' 빵이 2000~3000원 정도로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료가 좋으면 당연히 맛이 좋겠죠. 그렇지만 빵은 별식이 아니라 주식이니 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드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사람이 얼마나 공을 들여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겠죠." 잘 팔리는 빵은 더 많이 만들고, 안 팔리는 빵을 적게 내놓는 식의 계산도 여전히 하지 않는다. 정웅은 "전날 밤에 내일 어떤 빵을 만들지를 정하는데, 보통은 남은 재료와 그다음 날의 날씨를 보면서 어떤 빵을 구워낼지 종류를 정한다. 효모가 워낙 날씨에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웅은 "남이 어떻게 빵을 먹느냐보단 내가 어떤 빵을 만들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면서 "유행을 거스르는 빵, 남들이 관심 없는 빵에 여전히 목마르다"고 했다. 그는 '오월의 종'에 취직하는 직원에게 늘 똑같은 숙제를 내준다. '왜 빵은 밀가루에 물을 붓고 반죽해서 만들까?'를 생각해서 답을 하라는 것이다.

그는 "왜 사람이 밀을 빻고 물을 붓고 발효종을 넣어 빵을 굽기 시작했는지부터  알아야 진짜 제빵사'라면서 "제대로 된 제빵사라면 밀가루의 분자식도 쓸 줄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손님이 줄 서는 가게, 뜨는 가게를 운영하고 싶진 않아요. 한결같은 빵, 질리지 않는 빵을 파는 가게를 하고 싶을 뿐이죠."


인터뷰를 마치고 정웅이 구워낸 바게트를 하나 샀다. 그의 말투처럼 딱딱한 빵의 껍질을 깨물자 뜻밖에도 폭신한 속살이 씹혔다.


* 출처-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7/15/2016071501884.html
 



기사 내용과 관련해 몇 가지 생각.

1) "제빵사"라고 적힌 명함을 주며 그가 한 말.

"네, 그게 저예요." 

- 멋지다. 자신감과 자부심과 신념이 느껴진다. 꾸밈이나 장황한 설명 없이 간단하게 "그게 나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그만큼 삶이 명확하다는 뜻이다. 중심이 잡혀 있다는 의미다. 우리도 답을 찾아보자.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누구인가.


2) "저 창문 밖에 뭐가 있는지 보지도 않고 살았구나"

- 제빵 인생은 이 깨달음과 함께 시작되었다. 세상을 넓게 멀리 바라보고 내면의 끌림에 귀를 기울였다.


3) "어떻게 왔수?" "가게 보러 왔는데요"

"뭐할 건데" "빵 가게요. 근데 돈이 없어서 못 해요."

"얼마가 모자라는데?" "한 푼도 없어요."

"그럼 내가 빌려주면 되나?"

- 실제로 있었던 일일까 싶을 만큼 극적인 대화다. 부동산 사장님은 오랫동안 빵을 제대로 만드는 것에만 몰입한 한 사람의 진심을 보았을 것이다. 눈빛과 말투, 표정, 손짓에 배어 나오는 진짜 모습. 제빵사 정웅이 스스로 만들어 낸 행운이자 운명이다.   


4) "이번 가게가 또 언제 망할지 모르니, 이번엔 정말 원 없이 하고 싶은 것만 하자"

- 기적처럼 얻은 가게를 시작하며 하게 된 결심이라고 한다. 그는 유행을 좇는 대신 제대로 된 빵을 만들기 위해 육신이 너덜거릴 때까지 쏟아부었고, 지금까지 왔다.

우리 삶에 적용해보아도 좋을 듯하다.  

"한 번 사는 인생, 언제 죽을지 모르니 정말 원 없이 하고 싶은 것만 하자."

여기서 '하고 싶은 것'은 실컷 놀고, 실컷 쓰는 쾌락과 소비가 아닌 평생 의미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말한다. 신념을 담아 완성도를 높여가는 자신만의 의미 있는 일이다.  


5) "왜 밀을 빻고 물을 붓고 발표종을 넣어 빵을 굽기 시작했는지부터 알아야 진짜 제빵사"

- 역시 일이건 공부건 기본을 익히는 일 가장 중요하다. 단단하고 지속적인 성장과 결실은 그 후에 온다.

 

6) "그날이 시작이었어요."

- 빵을 시작하고 15년. 팔리지 않은 빵을 내다 버리는 게 일과였고, 내다 버리기가 아까워 쌓아둔 빵이 크리스마스트리만 한 높이가 되고.... 그런 시간을 버틴 그에게 다가온 전환점을 표현하는 말. "그날이 시작이었어요." 짜릿하고 뭉클하다.


7) "결국은 사람이 얼마나 공을 들여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겠죠."

- 자신의 일을 대하는 '제빵사 정웅'의 신념이다. 의미를 부여하며 정성껏 공을 들인 작업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나도 알고 남도 안다.




기사를 읽고 얼마 후 오월의 종을 방문해봤다. 1호점 2호점 모두 소박하다. 제빵사들이 빵을 굽고 손님들은 완성된 제품을 잘 볼 수 있도록 한 것에만 충실한 모양새다. 매장 한쪽에 액자가 하나 있다. "Keep Calm and Bake Bread"라고 쓰여 있다. 영국에서 처음 사용된 "Keep Calm and Carry On(평정심을 유지하며 하던 일을 계속하라)."을 응용한 다양한 표현 중 하나인 듯싶다. 주인장의 마음가짐이 느껴졌다. 빵에 집중, 또 집중.


몇 가지 빵을 구입하고 나오다가 양손 가득 재료를 들고 들어오는 '제빵사 정웅'과 마주쳤다. 옅게 미지으며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하는데 문득 알 것 같았다. 부동산 사장님이 어째서 잘 알지도 못하는 그를 처음 보고도 마음을 열었는지.  




마부작침() 매거진을 만들면서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어떤 것이든 잘하고 싶다면 우선 기본을 익히는 일에 충실해보자. 힘들고 지루해도 요행이나 지름길은 생각하지 말자. 기본을 단단히 갖추고 의미 있는 일, 가치 있는 일에  공을 들여보자.


그 날이 시작이었어요!


우리 모두 해 볼 수 있는 말이다. 우리 모두 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제빵사 정웅의 예에서 볼 때 자신의 '그 날'을 갖기까지는 내면의 끌림에 대한 이해일의 의미, 거절과 무관심, 외로움을 버티며 공들인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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