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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진 Mar 29. 2018

하늘의 계시를 받은 아이를 기억하며..

몇 달 전 전철 손잡이에 치킨(닭다리)을 만들어 장식해 놓은 경우가 있었다. 아마 광고였던 것 같다.  

   

어느 날 퇴근길 전철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초등학교 1, 2학년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전철을 타다가 치킨 손잡이를 보고 눈이 왕방울 만해져서는 아빠 바지를 당기며 말했다. “저것 좀 보세요!”

이어진 다음 말이 걸작이었다.


저보고 치킨을 먹으라고 하늘이 계시를 내려 주었나 봐요! 계시를 봤으니 오늘 꼭 먹어야 할 것 같아요! 그렇죠?
   


와~, 치킨 먹고 싶다는 표현을 이렇게 귀엽고 기발하게 할 수도 있구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을 만큼 예쁘고 기특했다.  


곧 내려야 해서 다음 상황은 보지 못했다. 웃으며 아이를 한 번 더 보는 것으로 혼자 인사를 했다. 뒤돌아보니 아이는 간절한 눈빛으로 아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문득 생각이 난다.  
1) 아이는 그날 밤 치킨을 먹었을까? 
- 그랬으면 좋겠다. 바람대로 맛있는 치킨을 먹은 행복한 저녁이었기를 바란다.


2) 그 아이는 자라서 어떤 일을 하는 어떤 사람이 될까?   
-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발하고 멋지게 표현해 낸 아이의 창의력이 부디 잘 자라날 수 있으면 좋겠다. 성적 위주의 학교 교육 속에서 빛난 재능이 무뎌지지 않기를 바란다. 수학 문제 풀고, 영어단어 외우고, 여기저기 학원 다니느라 지쳐서 귀한 표현력을 경쟁력으로 키우지 못하고 그저 평범한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과 같아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느라 자신의 고유한 장점을 키우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힘들게 공부해 대학에 들어가도 비슷한 시간을 거쳐 온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고 그들과 또다시 비슷한 목표를 놓고 경쟁을 해야 한다. 이런 시간 속에서 삶이 재미없고 힘들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한 번 사는 인생의 목표가 남들과 비슷한 능력을 갖춘 개성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개인의 고유한 장점과 특성을 잘 키우고 발휘하며 사는 게 좋은 인생이다.  




어릴 때는 부모의 역할과 도움이 중요하다.  

그 날 아이의 아빠는 대략 세 가지 중 하나의 태도를 보일 수 있었다.   

하나 - "우리 아들이 정말 멋진 말을 했구나! 오늘 밤 계시대로 맛있는 치킨을 먹어보자!"

둘 - "조용히 해! 치킨은 무슨.."  

셋 - "........" (무관심과 무응답)


만일 평소에 부모가 아이의 말과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자주 칭찬해준다면 아이는 "아, 내가 한 말이 특별하고 좋은 거구나!"라고 자부심을 느끼며 다음에는 어떤 멋진 표현을 해볼까 궁리를 하게 된다. 새로운 표현을 만드는 재미를 느끼고 장점을 키우며 성장해 나간다. 하지만 만일 부모가 두 번째와 세 번째 반응을 보인다면 아이는 민망해하고 기가 죽는다. 자신의 재능과 특성을 '쓸데없고' '부끄러운' 것, 그래서 남들 앞에서 드러내고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버린다. 칭찬을 받기 위한 방법은 좋은 성적을 내는 것뿐이라고 여기며 당장 해야 하는 영어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를 풀며 중학교를 준비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그런데, 그렇게 성인이 되고 나면 혼란스럽다.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왠지 내 것은 없는 것 같은, 삶에 중심이 없는 것 같은 안 좋은 기분, '나는 뭐지?' 하는 안 좋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그동안 당신의 부모와 선생님이 해 준 충고와 조언은 틀렸을 수 있다.

당신의 고유한 특성과 잠재력도 잘 모른 채, 크게 일어나고 있는 세상의 변화도 잘 모른 채 이전에 알고 있던, 그래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고 있는 안전한 방식만 강조했을 수 있다. 한 고등학생과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학생 - 저는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엄마 아빠가 절대 하지 말래요.
나 - 왜요?
학생 - 심리학 공부하면 돈 못 번대요.
나 - 그럼 무얼 공부해야 한다고 하시던가요?
학생 - 경영학이요... 경영학이 최고래요. 그래야 취업도 하고 돈도 번대요. 정말 그런가요?


부모님 말씀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실제로 부모님 세대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하면 취업 선택의 폭이 매우 넓었다. 경영학을 공부하고 은행에 취업하면 최고인 때도 있었다. 그런데, 과거와 지금은 많이 다르다. 많이 변해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몇 가지만 생각해보자.    


1) 요즘 경영학을 전공하면 "누구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가?

2) 심리학을 공부하면 "모두가" 가난하게 살아갈까?

3) 무엇보다, 공부를 하는 가장 큰 목적이 돈을 벌고 성공하기 위한 것인가?

4)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은 학생이 경영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잘할 수 있을까? 학교 생활이 즐거울까? 행복할까? 취업도 쑥쑥 되고 돈도 많이 벌게 될까?


모두 아닌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불안하다. 스무 살, 서른 살이 넘으면 나만의 특성과 장점을 발견하고 내 길을 찾기는 이미 늦 건 아닐까? 이제 시작해도 될까?

당연히 그렇다. 이제 시작하면 된다. 인생은 그렇게 짧지 않다. 스무 살, 서른 살이 되어 중요한 동시에 다행스러운 점은 어릴 때보다 부모의 도움과 조언, 영향을 덜 받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제 본인의 몫이다. 

사람마다 고유의 개성과 장점이 있고 자신의 속도가 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면 된다. 남의 것을 보며, 나보다 빨리 뛰어가고 있는 타인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전에 우선 내 안에 있는 좋은 것을 찾아보고 키워가며 내 속도대로 살아가는 것.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조금 느려도 괜찮다. 꾸준히 가면 되니까. 중요한 건 "내 길"을 "꾸준히" 가는 것이다. 인생의 승부는 시간과 경험이 쌓인 후에 결정된다. 맞지도 않는 옷과 신발로 뛰다가는 넘어지고 다친다. 나에게 맞는 것을 입고, 내 것을 쥐고 꾸준히 가는 자가 결국 이긴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직업의 세계가 다양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좋은 것이라 믿었던 직업이 사라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일이 생겨난다. 이전에는 유튜브 등 인터넷을 활용해 돈을 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지만 지금은 가능하다. 많은 이들이 관심 영역과 개성을 표현하며 인터넷 매체를 이용해 자신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앞으로는 또 새로운 수단과 영역이 생겨날 것이다. 분명히 흐름이 바뀌고 있다. 앞으로는 더더욱 '이것저것 골고루 적당하게 잘'이 아니라, 하나라도 분명하게 자기 색깔을 내며 성장하는 사람이 주목받는 시대가 될 것이다. 어쩌면 길은 더 다양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궁금하다.

지하철 손잡이 장식을 보고 "아빠, 치킨 사주세요"라는 평범한 말이 아닌 "저에게 치킨을 먹으라고 하늘이 계시를 내려 주었나 봐요! 꼭 먹어야 할 것 같아요!"라고 멋지게 표현한 아이는 그 날 바람대로 치킨을 먹었을까? 꿈은 무얼까? 어떤 어른으로 자라나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까?


부디, 전철 손잡이 닭다리 장식을 '하늘의 계시'로 승격시킨 아이가 그날 밤 맛있는 치킨을 먹었기를 바란다. 부모님께 치킨과 칭찬을 듬뿍 받은 행복한 날이었기를 바란다.

멋진 감수성과 표현력을 신나게 활용하며 사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남들과 같아지려 애쓰느라 자신이 가진 보물을 묻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진 것을 발휘하며 자신의 속도로 나아가기 

이는 인생 한 순간의 노력으로 끝나지 않는다. 학생 때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살아오며 고비 때마다 깊게 고민하고, 아픈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고, 방향 수정도 하며 내 길을 찾아왔다.

인생과 진로에 대해 고민이 있다면 자신이 가진 귀한 것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상담실에서든, 강의실에서든, 글을 통해서든 내가 만나는 모든 이에게 바라고 권하는 점이다.  




*Home - 하유진심리과학연구소

*Mail - grace@hainstitu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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