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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 Nov 29. 2022

사장님은 복이 참 많으시네요.

어부지리

  새로 일하게 된 빵집은 동네에선 맛집으로 제법 소문이 난 곳이다. 이사를 오고 나서 우연히 들렀었는데 빵이 맛있어서 단골로 점찍어 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일하게 된 것이 기분이 좋았다.

  이곳 알바는 오픈/미들/마감 이렇게 세 타임으로 나누어진다. 그중 난 오픈 조다. 출근을 하면 제일 먼저 빵을 굽고 있는 셰프들과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눈다. 버터향 가득한 공간에서 음악을 들으며 시작하는 하루가 마음에 든다.  앞치마와 두건을 두르고 행주를 빨아 쇼케이스와 빵 쟁반을 깨끗하게 닦는다. 어제 팔고 난 빵 중에서 세일을 할 빵과 하루 더 팔 빵을 구분하고 오늘 새로 나온 빵을 진열한다. 이렇게 오픈 조의 일과는 시작된다.

  출근한 지 며칠 안 된 초보 알바생은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며 발에 땀이 나도록 일을 하고 있다. 빵집 규모가 작으니 일이 편할 거라 생각했던 알바생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나름 제과제빵 자격증도 있고, 대학 시절 빵집 알바 경험이 있어 만만하게 봤었는데. 어라 왜 이리 일이 많은가.  그도 그럴 것이 이곳 사장은 빵 집을 세 군데 운영하고 있다. 1호점에서는 케이크와 샌드위치를 생산해서 2호점, 3호점으로 보낸다. 2호점에서는 빵과 쿠키를 생산해서 1호점과 3호점에 납품을 한다. 남 사장은 2호점에서 메인 셰프로 빵을 만들어 배송을 다니고, 여 사장은 카페를 겸하는 3호점에서 일을 한다. 그래서 초보 알바생이 근무하는 1호점에는 사장이 없다. 사장과 마주치는 순간은 남 사장이 배송을 올 때 하루 10분 남짓이다. 사장이 없는 빵집이 잘 돌아갈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 궁금증을 해결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빵 포장을 하고 있었다. 크림을 가득 넣은 빵을 투명 봉투에 묻히지 않고 넣어야 한다. 그런 다음 입구부터 돌돌돌 말아서 나비모양으로 만들어 테이핑을 한 후 빵집 이름이 들어간 스티커로 마무리. 빵 하나 포장하는데 족히 10분은 걸리는 듯하다. 초보 테가 팍팍 난다. 드디어 하나를 완성했다. 순간 빵집 문이 열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낯선 중년 여성이 매장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사장 포스가 났다. 그전에 여 사장의 얼굴을 확인할 길이 없었던 알바생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중년 여성이 혼잣말을 하는 것이 들렸다. ‘이건 이렇게 놔야 하는데. 이건 이렇게 해놨구나.’ 누구지? 사장인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 알바생을 향해 그녀는 할만하냐며 말을 걸어왔다. 알바생은 공손히 대답하며 “혹시 사장님이세요?” 하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본인도 알바생이라는 것. 지나가다 일을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들어와 봤다고 했다. 헉. 오지랖도 넓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



  그러나  빵집에는 오지랖 여사가  사람이 아니었다. 평균 알바 경력 1 이상인 터줏대감들이  주인공이다. 월화수 오픈 근무 1 여사, 오늘 방문한 수요일 미들  2 여사, 그리고 평일 마감을 책임지는 3 여사.  셋이 사장을 대신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겉으로 보기엔 모두 친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겪어보니 서로에 대한 불만들이 가득했다. 빵집에 대한 애정도는 넘치지만 본인의 근무 시간에 일이 조금이라도 많아지는 것은 극도로 싫어하는 모습. 그리고 본인이 가장 바쁘다는 착각. 이것이 초보 알바생이  관찰한 그들의 특징이다.

  오픈 멤버는 빵 진열과 식은 빵들을 포장하는 일을 한다. 그런데 그 빵 포장을 어디까지 하느냐가 관건이다. 바쁜 날은 소시지 빵 포장을 안 해도 되고, 안 바쁜 날은 소시지빵까지 포장을 해두는 것. 아주 단순하지만 이 곳에서는 예민한 문제가 된다. 미들 타임은 주로 빵 포장을 한다. 이미 만들어져 있지만 오픈 때 하지 못한 일들을 이어서 한다. 또 중간에 배송이 오면 그것들을 정리하고 포장한다. 그러니 오전에 포장을 많이 해놓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마감 타임은 주로 판매만 하면 된다.



  그들의 불만은 이런 식이다. 미들 여사는 소시지빵 포장이 안되어 있으면 오픈 여사가 일을 하지 않고   마냥  말을 포장한다. 마감 여사는 빵집을 들어서면서부터 매장을 스캔하고, 진열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표정으로 말을 한다. 마감 여사의 표정과 말투 때문에 그만둔 신입 알바가 그간 여럿 있었다는 사실은 사장과 마감 알바만 모르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오픈 알바는 열심히   본인을 그저 시간만 때우다 가는 사람으로 만드는 미들 여사에게 불만이 쌓였다. 그들은 서로의 흉을 보면서도  그들에게 흉을 잡히지 않기 위해 자기가 맡은 일은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이것이 1호점의 생태계다. 그간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던지 그들은 초보 알바생에게 이야기를 풀어내곤 했다. 초보 알바생이 보기에는  똑같은데 말이다. 어찌 됐건 사장은 편하겠다.  오지랖 여사들이 서로를 감시하는 덕분에 1호점은 알아서  돌아가니 말이다.

사장님 참 복이 많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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