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 사장님이 되고 싶었다.
하얀 밀가루를 정성스레 치댄다. 둥근 반죽을 밀대로 죽죽 밀어 평평하게 만든 다음 주전자 뚜껑으로 동그랗게 도려낸다. 엄마는 도넛을 만들고 계셨다. 그 모습이 신기해 마냥 쳐다보았다. 반죽이 끝나면 커다란 솥에 기름을 콸콸 쏟아붓고 가스렌지에 불을 켠다. 달구어진 기름에 반죽을 넣는다. 그 순간 들리는 경쾌한 소리는 이미 그 자체로 나를 행복하게 했다. 설탕이 잔뜩 뿌려진 엄마의 도넛은 특별했다. 그렇게 빵을 사랑하게 되었다.
시골 동네에 살았던 나는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갈 때면 빵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빵집을 지날 때 풍기는 그 향기가 너무 좋았다. 특히나 슈크림 빵을 좋아했다. 노랗고 쫀쫀한 그 크림이 왜 그리도 맛있던지. 꼭 쥔 주먹처럼 생긴 그 모양도 마음에 들었다. 엄마가 슈크림 빵을 사 주실 때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내가 크면 빵집 사장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다. 무료한 학교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졸업한 선배를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과제빵 강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좋은 기회가 있어 과 실습실에서 평일 야간에 강좌를 열게 되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빵순이가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당장 수업을 신청했다. 이토록 좋아하는 빵을 직접 만들 수 있다니. 너무 설렜다. 제과제빵 수업은 인기가 좋았다. 깜깜한 밤이 되면 실습실에 불이 환하게 켜진다. 창문 너머로 부드럽고 향긋한 버터향이 복도를 가득 채운다. 설레는 마음으로 하얀 색 앞치마를 두르고 진지하게 수업에 임한다. 반죽이 울퉁불퉁해도, 빵 모양이 못 생겨도, 빵을 태워도 마냥 즐겁다. 수업이 끝나면 그날 만든 빵을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행복했다. 자취를 하고 있던 터라 친구들에게 간식을 제공하는 기쁨도 쏠쏠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매일매일 먹으니 언제부턴가 빵이 질리기 시작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던 처음과는 달리 손에 들려 있는 빵 봉지가 부담스러워졌다. 이런 내 모습이 낯설고 어색했다. 오늘은 또 어떻게 처리를 할까. 좋은 것도 하루 이틀이라는 말을 절감했다. 시간이 지나 두 번의 도전 끝에 자격증 합격의 영광을 누렸지만 시간이 지난 만큼 빵에 대한 내 사랑도 식어버렸다.
영원할 줄 알았는데.
빵 없으면 못 살 줄 알았는데.
그렇게 빵집 사장님이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꿈도 희미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