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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 Dec 01. 2022

크렌베리 깜빠뉴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마음씨 좋은 그녀


            ‘이름 000 전화번호 000 0000 0000

                  크렌베리 깜빠뉴 1개  오후 1시’

  

  출근을 하니 어제 들어온 예약 주문 메모가 보였다. 매일 12시쯤 남 사장이 빵 배송을 오니 오전 9시쯤 전화를 걸어 내용을 전달만 하면 되었다. 초보 알바생은 이런 것쯤 식은 죽 먹기라 생각하며 남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크렌베리 깜빠뉴 주문 있습니다. 1시쯤 오신다고 했어요"

"네? 그걸 왜 지금 얘길 해요? 오늘은 깜빠뉴 배송이 없어요."

알바생은 당황했다.

"깜빠뉴는 다른 빵들과 달리 발효하는데만 하루가 걸려요. 그래서 이틀 전 주문을 받는 게 원칙입니다. 대체 누가 주문을 받은 거예요?"

남 사장의 목소리는 크고 날카로웠다. 전날 근무자가 받은 주문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괜히 피해가 갈까 말을 아꼈다. 알바생은 전날 근무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깜빠뉴는 당일 생산이 안된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하지요?"

안절부절 못하는 알바생과는 달리 전날 근무자는 태연하게 말했다.

"손님에게 전화해봐요"

  예약 주문을 받을 때는 남 사장의 오케이를 받고 주문을 확정하는 게 기본이다. 알바생은 책임감 없는 전날 근무자의 태도에 화가 났다. 그리고 이 사태를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되었다.


  일단 심호흡을 길게 하고 전화를 걸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건 알바의 걱정과는 다르게 손님의 목소리는 친절하고 차분했다. 알바생은 주문하신 빵을 오늘 드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손님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깜빠뉴 속에 박힌 크렌베리 빼먹는 걸 좋아한다는 설명과 함께 난감함을 표했지만 초보 알바생의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주문을 하루 더 미루어 주었다. 알바생은 감사하다는 말을 연거푸 내뱉으며 안도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남 사장에게 주문이 하루 미루어졌음을 알렸다.


  주문을 늦춰 준 손님이 고마워 알바생은 아침부터 남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잊지 않기를 당부했다. 한 번 더 실수하는 것은 정말 민폐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남 사장은 잊지 않고 깜빠뉴를 가져왔다. 그것도 세 개씩이나. 알바생은 그 중 가장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깜빠뉴를 따로 빼놓았다. 손님이 오면 정말 고맙다고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도 할 참이었다. 하지만 손님이 오기로 한 시간이 알바생의 퇴근 시간과 맞물려 직접 전해줄 수 없었다. 대신 다음 알바생에게 따로 빼놓은 깜빠뉴를 드리라며 신신당부를 하고 퇴근을 했다.


  퇴근 후 한 시간쯤 지났을까. 빵집에서 전화가 왔다. 깜빠뉴를 사간 손님이 자기가 주문한 빵이 아니라며 어떻게 또 실수를 하느냐며 노발대발했다고 했다. 교환을 해준다고 했지만 아이가 있어 다시 나갈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며 전화를 끊었단다. 그도 그럴 것이 밖엔 비가 오고 있었다. 실수를 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초보 알바생은 그 길로 빵집으로 갔다. 확인을 해보니 아뿔싸. 그 날 들어온 깜빠뉴는 한 종류가 아니었다. 남 사장은 크렌베리 깜빠뉴와 신제품인 올리브 깜빠뉴 두 가지를 두고 갔던 것이다. 초보였던 알바는 올리브 깜빠뉴를 보고 빵을 오래 구워 크렌베리의 색이 조금 어둡다 생각했을 뿐,  깜빠뉴가 두 종류일 거라고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 전에는 없던 올리브 깜빠뉴를 왜 하필 오늘 가져왔을까. 후회해도 일은 이미 벌어졌다.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 하는데 정말이지 난감했다.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에 손님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가져다 드리겠다며 주소를 물었다. 불편했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크렌베리 깜빠뉴와 함께 아이가 좋아할 만한 소시지빵도 같이 담았다. 우산을 쓰고 비 오는 거리를 힘 없이 걸었다. 알바생은 스스로가 참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문 앞에 빵을 가지런히 놓아두며 손님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주문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겪었을 불편에 대해 미안했고, 아이가 좋아하는 빵을 제 때 먹지 못했을 상황이 생각나서 미안했다. 알바생의 마음을 읽었던 것일까. 손님에게서 답장이 왔다.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집까지 빵을 가져다주어 고맙다고, 서비스로 준 소시지빵도 아이와 맛있게 먹겠다고.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인사는 덤이었다. 무거웠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감사합니다.

손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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