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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 Dec 08. 2022

그때의 마이콜 선생님이 생각나.

이제와 한없이 부끄럽다.

  유치원에서 영어 수업이 진행되고는 있었지만 성에 찰리 없는 나였다. 아이가 7살이 된 이상 더는 영어를 미룰 수 없었다.  어느 동네나 마찬가지지만 우리 놀이터에도 엄마 그룹이 있었다.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는 놀이터 죽순이 엄마들이 곧 그 그룹의 멤버가 된다. 우리의 관심은 언제나 같았다.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니 그랬으리라. 고민은 나누라고 했던가. 아이의 영어로 고심하던 그때 동네의 작은 영어 학원에서 영어로만 수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원어민 수업은 엄두도 못내고 있던 찰나에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당장 말 잘하는 언니를 앞세워 상담 신청을 했다. 아이들 수업은 보통 그룹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는 단체 상담을 받았다.




  선생님의 첫인상은 조금 우스꽝스러웠다. 안경을 쓰고, 악성 곱슬인 탓에 풍선처럼 부푼 머리카락. 선생님은 마치 만화영화 둘리에 나오는 마이콜을 연상케 했다. 목소리는 밝았고, 때 묻지 않은 듯한 편안한 미소가 좋았다. 푸근한 인상에 아이들도 좋아할 것 같았다. 일단 외모는 합격.

  우리는  준비해왔던 말들을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십 수년간 영어를 배웠지만 단 한 마디도 못하는 나는 우리 아이는 다르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하는 영어. 그것이 내가 원하는 영어다.


“선생님, 저희는 학습적인걸 바라지는 않아요. 아이들이 벌써부터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니까요.”

“선생님, 아이들이 영어랑 친해지면 좋겠어요."

“선생님, 수업을 영어로만 해주세요. 놀이영어요.”


  한 사람이 한 마디씩만 해도 선생님은 정신이 없었을 터. 하지만 우리의 요구에 선생님은 흔쾌히 오케이를 하셨다.

‘그래. 가능한 일이었어.’

  상담만 했을 뿐인데 난 이미 김칫국 한 사발을 드링킹 한 상태였다.

‘머지않아 우리 아이도 영어로 말하는 날이 오겠구나'




  아이가 영어학원을 다닌 지 여러 달이 지났다. 아이는 학원을 좋아했다. 더 정확히는 선생님을 좋아했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하기도 하고, 요리 수업도 진행해 주셨다. 그리고 핼러윈 데이 때는 조그만 플리마켓도 열어주셨다. 아이들과 선생님의 행복한 추억이 쌓여갈수록 나의 의구심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이쯤 되면 아웃풋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한 두 마디 정도는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정말 영어로만 수업을 하고 계실까? 그 무렵 다른 엄마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었나 보다. 여기저기서 하나둘씩 볼멘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는 것이 인지상정. 엄마들은 선생님을 만났다. 그런 엄마들을 보며 선생님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셨다.


“어머니.. 아이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은 제가 한국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옳은 말씀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한 말씀이지만 김칫국 한 사발에 취해 있었던 그때의 영알못 엄마는 이해하지 못했다. 마이콜 선생님은 우리가 했던 그 요구들이 무리한 것임을 처음부터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저 최선을 다하겠다 긍정의 오케이를 보내 주신 그 마음을 온전히 응원해드려야 마땅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우리의 무지함을 자각하지 못한 채 선생님과의 이별을 선택했다. 그리고 '영어는 놀이로 습득할 수 없겠구나' 하는 얼토당토않은 깨달음을 얻었다.(잘못짚어도 한참 잘못짚었다.)

  초보 엄마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번째 영어학원을 찾기 위해 또다시 레이더망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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