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뭐길래
아들의 1학년 여름. 두 번째 영어학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우리 집과는 조금 떨어진 아파트 내의 공부방이었다. 그 수업을 들으려면 대기를 해야 하는, 그 이름도 유명한 클라라 영어. 운 좋게 남은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클라라 영어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 공부방은 소수정예 4명이 한 팀이고, 팀의 한 사람이라도 그만두게 되면 나머지 아이들도 수업을 이어나갈 수가 없다. 학생 수가 적어지면 선생님의 시간당 수입이 줄어드니 만들어진 규칙이다. 이런 규칙만 봐도 이 동네에서 얼마나 잘 나가는 공부방인지 알 수가 있다.
클라라 선생님은 이름만큼이나 밝고 에너지 넘치는 분이었다. 첫 상담에서 선생님은 자신의 커리큘럼을 쭉 훑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우리 아이의 영어 미래가 그려졌다. 선생님만 믿으면 머지않아 아이는 영어 천재가 될 것 같았다. 학원에서는 미국 교과서와 파닉스 교재로 수업을 진행한다 했다. 집에서는 하루 20분씩 영어 음원 듣기, 미국 교과서 다섯 번씩 읽어오기라는 과제를 주었다. 이후로 나는 아침에 눈 뜨면 자동으로 영어 CD 트는 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디오를 듣고, 책을 읽어가는 것은 부담이 없었다. 다행히 아이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단어 쓰기 시험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세 단어, 그다음은 다섯 단어, 평가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아이는 힘들어했다. 평가를 보고 틀린 단어는 열 번씩 써가는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힘들어하니 학원을 계속 보내는 게 맞나 하는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고민을 시작으로 도서관에 가서 관련 도서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중 눈에 띄는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잠수네 영어' 이거다 싶었다. 단어 시험을 보지 않아도, 문법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영어 공부라니. 이제야 알게 된 나를 원망했다. 책을 읽을수록 확신이 들었고, 하루빨리 시작하고 싶었다. 마침 같은 그룹에 다니는 아이의 엄마인 C는 큰 아이를 잠수네 영어를 통해 키웠다고 했다. 다만 끝까지 진행하지 못하고 중학생이 되어 영어학원에 보냈다고 했다. 학원 테스트를 보러 갔을 때 아이에게 영국에서 살다왔냐고 발음이 너무 좋다고 했단다. 책에서 수없이 읽었던, 잠수네 아이들이 학원 테스트에서 무수히 들었던 그 말. 바로 앞에 산 증인이 있으니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학원을 그만두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내일이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난 그룹수업에 묶여 있었다. 한 사람이라도 그만두면 그룹 전체가 수업을 들을 수 없다. 이 일을 어쩌나. 매일같이 고민했다. 민폐를 끼칠 수도 없었지만 아이가 싫어하는 학원을 억지로 보내는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하늘이 도운 걸까? 그룹 내 한 친구가 급하게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단다. 한두 달 후면 수업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고. 그 말을 듣고 내심 기뻤다. 하지만 어디 세상 일이 그리 쉽던가.
우리는 그룹으로 묶여있다. 이사를 가게 된 A, 수업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은 B와 C, 그리고 잠수네 영어를 하고 싶은 나. 이사를 가게 된 A는 모임을 주선했다. 모두가 자리에 모였으면 좋았을 테지만 C는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A는 본인 때문에 그룹이 깨진 것에 미안해했다. 나는 그 전에도 잠수네에 관심이 있단 뜻을 조금씩 비추었던 터라 집에서 영어를 해보겠노라고 이야기했고, B는 아쉽다고 했다. 모임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난 C에게 내 결정을 말하겠다 했고, C와 친했던 B는 C도 대충 너의 생각을 알고 있으니 따로 연락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본인이 전달하겠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우리의 클라라 영어는 순조롭게 마무리가 되는 듯했다.
며칠 후 B에게서 전화가 왔다. 클라라 선생님이 우리 팀은 수업료만 맞춰주면 셋이어도 수업을 진행해주겠다고 했단다. 실력 있는 클라라 선생님인지라 수업료를 더 주고라도 아이를 맡기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하지만 난 이미 결심을 굳힌 상태였던 터라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날 저녁 B에게서 카톡이 왔다. 어디 좋은 학원을 가냐며, 좋은데 있으면 같이 옮기자는 메시지였다. 1분이나 지났을까? C에게서도 비슷한 내용의 카톡이 왔다. 아마도 둘이서 날 회유하기로 작전을 짰었나 보다. 그날 모임에서 끝을 맺었고 내 향후 계획을 분명히 말했는데 왜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걸까. 난 불편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을 그들에게 구구절절 미안한 마음을 담아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왜 말을 바꾸는가. 왜 예외의 상황을 만드는가.
다음 날 C의 전화를 받았다. C는 다짜고짜 말을 쏟아냈다. 나는 너를 좋은 사람으로 생각했었는데 네가 영어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왜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어야 하냐며. C에게 나는 나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전날 밤 친절하게 메시지를 보내던 C는 없었다. 속상했다. 이미 난 그들에게 영어 수업 파탄의 주범이 되어 있었고, 그 원망의 화살을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그토록 이어가고 싶었던 수업이 깨지게 되니 원망할 누군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나중에 지인을 통해 들어보니 B는 나와 나눴던 그날의 이야기를 일부러 전하지 않았다고 했다. 자기가 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대변해주냐며. 처음으로 사람이 무서워졌다. 다행이다. 그 사람의 민낯을 보게 돼서. 그리고 그 인연이 그때 끝이 나서. 그렇게 마음 속 전쟁을 한 바탕 치르고, 아이의 엄마표 영어는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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