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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 Dec 20. 2022

아이의 쓸모.

필통이 갖고 싶어요.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는 아이.

조그마한 물건은 질색하는 엄마.

길가다 예쁜 게 있으면 다 사고 싶은 아이.

하나를 사더라도 여러 번 고민하고 구매하는 엄마.

이렇게 다르다.


  아이가 원하는 걸 기분 좋게 오케이 해주면 좋으련만 그게 잘 안된다. 안 되는 이유도 참 많다. 아이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을 해준다고는 하지만 통할 리가 없다.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엄마가 밉겠지. 차라리 돈이 없어서 안 사준다고 하면 포기가 빠르려나. 한 달에도 몇 번씩 이런 실랑이를 한다. 이번에는 필통이다. 곰돌이 푸 필통이 너무나도 갖고 싶단다. 아이는 여름 즈음 새 필통을 샀다. 그전에 쓰던 필통이 낡아서가 아니라 너무 유아틱 하다는 게 아이의 설명. 초등 4학년인 아이의 말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필통 사는 것을 허락했더랬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필통을 산다고 하니 좋은 말이 나올 리가 없다.  


  어리다면 어리고 크다면 좀 컸다고도 볼 수 있는 나이 11살 우리 집 소비 요정. 유독 사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라 고민 고민하다 한 달에 한 번씩 용돈을 주고 그 안에서는 필요한 것이던, 갖고 싶은 것이던 용돈 관리를 직접 해보라고 했었다. 용돈은 만원. 너무 적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친척들과의 왕래가 많은 우리 집은 내가 용돈을 주지 않더라도 다른 가족들에게서 받는 용돈이 꽤나 쏠쏠하다. 그러나 규칙적인 용돈은 아니기에 내가 주는 용돈을 최소한으로 설정했다. 아이는 당연히 기뻐했다.


" 엄마 이제부턴 정말 제 마음대로 하는 거죠? 엄마 아무 말씀하시지 마세요"


  난 그러마 하고 약속했다. 대신 용돈 기입장은 철저하게 쓸 것. 한 달의 마지막 날 용돈 기입장의 금액과 남아있는 잔액이 일치하면 다음 달 용돈을 주고, 금액이 맞지 않으면 다음 달 용돈은 없다. 내가 내세운 조건은 그것 한 가지였다. 엄마가 너무하다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조건이 없으면 아이들은 어느 순간 귀찮은 일들은 소홀히 하게 된다. 용돈기입장을 쓰는 일은 여간 귀찮은 일이지 않은가. 우리가 가계부를 쓰겠다 다짐하고 금세 손을 놓는 것처럼.


  아이는 열심히도 썼다. 용돈 기입장도, 용돈도.

어떤 달은 금액이 맞지 않아 다음 달 용돈을 받지 못해 울기도 했고, 어떤 달은 금액이 착착 맞아 기분 좋게 용돈을 받아가기도 했다. 아이에게 용돈관리를 맡긴 것은 나름의 소비습관을 갖길 바랬기 때문이다. 그런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아이는 5만 원이 넘는 돈도 있는 대로 다 썼다. 자기 돈이니 알아서 잘 썼다는 것. 쇼핑 목록을 보니 다이소나 아트박스에서 구매한 포장 용품이 대부분이었다. 스티커, 메모지, 포장지, 테이프 등등. 집에는 그런 종류의 비슷한 물건들이 하나하나 늘어갔고, 정리가 서툰 아이의 방은 점점 지저분해졌다. 모두 필요해서 산 것들이라고 하니 할 말이 없다. 아이고야. 머리 아파.


  두 번째 작전을 실행한다.

"엄마가 몇 달을 지켜보니 네가 용돈을 전부 관리하기엔 아직 무리가 있어보여. 그러니 가족들이 주는 용돈 중 일부는 너에게 주고 나머지는 엄마가 저축을 해줄게." 아이는 불만이 있었지만 단호하게 결정했다. 그리고는 아이의 용돈 일부를 통장에 저축하고 있다. 원하는 것을 다 사주자니 경제관념이 너무 없어질 것 같고, 그때 그때 설득을 하자니 매번 힘이 든다. 현명한 소비를 가르치고 싶다. 아이와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그 중간쯤은 어디일까?


아참! 아이는 아빠와 둘만 있는 시간을 틈타 필통을 주문했다.

아빠가 반을 보태주고 절반은 자신의 용돈에서 내는 걸로. 하하하. 웃음이 절로 나는구나.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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