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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라진 Jan 29. 2021

위험해, 그거 하지 마

남편에게는 7살 위의 형 요한과 10분 간격으로 태어난 쌍둥이 누나가 있다. 


형은 중학생이 된 아들이 있고, 누나 사라에겐 곧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첫째 딸과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 딸이 있다.


워낙 시댁 가족들과 잘 지내서 문화 차이나 사고방식의 차이에 대해 느낄 때가 별로 없다. 


하지만 유일하게 남편을 포함해 시댁 식구들과 내가 '생각이 이렇게 다르구나!'라고 느낄 땐 바로 육아할 때다.


아직 우리 부부에게 아기가 없어서인지, 시댁 식구들이 육아할 때, 남편이 조카를 대하는 모습들을 나도 모르게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4년 전, 크리스마스 때 어머님 댁에서 다 같이 저녁을 먹는데 귀여운 사라의 첫째 딸 앨리스도 내 옆에 딱 한자리를 차지했다.


2살 앨리스는 유아용 의자에 앉아 혼자 밥을 먹는데, 음식이 입으로 가는 게 아니라 절반 이상이 얼굴에 범벅이 됐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사라는 어른들과 계속 대화를 나누며, 앨리스가 수저 사용법을 익힐 수 있도록 혼자 먹게 내버려(?) 두었다. 


그날 저녁 자기 전, 남편의 공감을 기대하며 말했다. 

'자기야, 저렇게 밥 먹을 때마다 다 치우고, 애기도 씻겨야 되고. 그냥 먹여주면 편할 텐데 그렇지?'


그러자 남편은 '어른 편하려고 자꾸 먹여주면 당사자는 수저 사용법을 언제 배우겠어. 당장은 조금 귀찮아도 저렇게 배우는 거라고 생각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짧고 강한 첫 번째 현타를 경험하고, 그다음 해 시댁 식구들과 여름휴가를 다 같이 보내게 됐다. 


앨리스가 다 먹은 접시와 유리컵을 들고 조심스레 부엌으로 가는 걸 목격했다.


그때 사라에게 '사라, 앨리스가 접시랑 컵 깨뜨리면 위험하지 않을까? 다음번 식사 때 유아용 식기로 찾아볼까?'라고 난 오지랖을 부렸다.


사라는 이런 질문이 신선하다는 듯 '진, 아냐 괜찮아! 깨지는 소재라는 걸 앨리스도 알고 있기 때문에 조심하게 다루는 법을 배우면 돼'라고 답했다.


앗. 두 번째 현타가 왔다. 그렇다. 평생 플라스틱, 실리콘 용기만 쓸 순 없지 않나.


그리고 얼마 전에 사라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가족 모두 주말 캠핑을 떠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보내온 많은 사진들 중 눈에 띄는 이 사진. 그리고 난 단박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특한 앨리스! 이렇게 혼자 칼 사용하는 법도 배우고 너무 대단하다'라고 말이다. (더 이상 맹목적인 '위험해'가 아니었다.) 

장작불에 구울 마시맬로를 꽂기 위해 열심히 칼로 깎는 앨리스


세상 모든 것이 위험해! 하지 마!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비단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등산로, 무릎까지 오는데도 경계선을 둔 해수욕장 경계선 등 우리가 할 수 있고 또한 마땅히 누려야 할 영역을 인위적으로 침해받기도 한다.


모든 게 '위험해, 하지 마'가 아닌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을 쌓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보자마자 내 마음을 사로잡은 Davide Bonazzi의 'Expand your comfort zone'

얼마 전 예술의 전당 아트샵에서 보고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한치의 고민도 없이 그림을 사 왔다.


익숙하지 않은 것, 위험한 것, 불편한 것들로부터 한 발짝만 나서면 그 이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지고 어느새 그것들에 또 편해진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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