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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Hailey Dec 24. 2021

다들 그러고 사는 거야.

"대기업에 입사해야지. 언제까지 그렇게 아르바이트하면서 일할 거야?"

"지금 일하는 게 재미있어서 그래도 좀 더 해보려고요."

"다들 그냥 재미로 일하는 게 아니라 돈 벌려고 일하는 거야. 다들 그러고 사는 거야."



현실에 맞춰 사는 거라고, 일은 그냥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고민이 많아졌다. 내가 너무 이상적인 걸까? 당장 안정적이지 않더라도 현재 20대라는 무기를 이용해 내가 그동안 궁금했던 분야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다. 경영학과 졸업 후 입사한 회사를 그만두고 영어 학원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계약직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대기업 입사, 공무원 시험 합격 등 다들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후진하는 기분이었다.



다들 그러고 사는 거라는데, 왜 나는 다른 길은 택하고 싶은지 생각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찾을 수 없었다. 취업이 잘 된다고 하니까 경영학과를 택했고, 남들이 다 취업 준비하니 나도 취업 준비를 하고 내가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모르지만 일을 해야 하니 입사했다. 평범한 직장을 가져야 좋다고 하니 취업을 했지만 이대로 안주하며 직장인으로 6개월, 1년, 3년 계속 살아가다 보면 그냥 난 흘러가는 대로 살아갈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다니던 회사를 6개월도 채 다니지 않은 채 퇴사했다. 



"선생님"



선생님의 일을 해본 적도 없지만 그냥 막연히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래도 영어를 좋아하니까 영어 선생님이 되어보는 게 어떨까? 당장 학교 선생님을 하기엔 준비 기간도 길고 어려울 것 같으니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은 학원 선생님은 어떨까? 경력이 없는데 어떡하지? 그럼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끝에 퇴사 후 입사 지원서가 아닌 집 근처 학원 아르바이트 지원서를 냈다. 학원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계약직 강사, 정규직 강사가 되었다.



새 출발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느껴지지만 내 인생 처음 주체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에 드디어 어른이 되는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처음부터 새로 배우니 이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구나라고 뿌듯함도 느꼈지만 내 통장에 찍히는 금액을 보고 좌절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이대로 안주한다면 이도 저도 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내가 부족한 만큼 더 공부했고, 노력했다. 좋아하니까 즐길 수 있었고 당장 큰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나에 대한 믿음이 커졌다. 지금은 바닥부터 시작하지만, 언젠가 나도 더 멋진 강사가 될 수 있겠다는 믿음으로.



그런 믿음을 가지며 매일매일 꿈을 키워갔지만, 집에 돌아와 부모님과 대화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이제 정신 차리고 대기업 공채를 준비하라는 잔소리를 들었다. 다들 현실에 맞게 사는데 나만 너무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좋아하는 일이어서 재미있다고,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나도 대기업만큼은 아니더라도 돈을 벌 수 있다고 부모님께 말해도 현재 눈에 보이는 성과가 거창하게 보이지 않다 보니 당당하게 말할 수 없었다. 부모님조차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것 같지 않아서 속상했지만 현재 이룬 게 없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보일 때까지 말을 아끼고 노력해서 내가 직접 이루고 부모님께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티칭 자격증도 취득하고, 진심으로 가르친 덕에 소개로 개인 과외 투잡을 시작하게 되었고, 노력했던 과정을 남기고자 시작한  블로그 덕에 구독자의 응원을 받으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그 모습을 3년간 지켜보신 부모님은 더 이상 대기업에 취업하라고,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라고 매일 같이 잔소리하지 않으신다. (여전히 가끔 잔소리를 하신다ㅎㅎ 어쩌면 종종.) 그 대신 엄마, 아빠 친구를 만날 때 "내 딸이 유학도 안 다녀오고 영어를 그렇게 잘해~" 자랑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한 편으로는 내가 그래도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시름 놓인다. 



그때 부모님이 했던 한 마디, 

"다들 그러고 사는 거야."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다들 도전하고 실패하고 배우면서 그러고 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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