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스타 셰프의 보급형 레스토랑 Cornerstone
요즘 넷플릭스가 새로운 맛집의 지표가 되고 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음식과 셰프 관련 다큐멘터리가 나오다 보니 예전 미슐랭이 그러했듯, 넷플릭스에 나왔던 레스토랑은 얼추 신뢰가 보장되는 것이다.
매번 외식 때마다 어떤 레스토랑을 가야 잘 갔다고 소문이 나나~ 하고 검색만 두 시간씩 하다가 결국엔 배고픔에 지쳐서 집 앞 차찬탱(홍콩 로컬 음식점)을 가는 우리에게는 아주 반가운 지표이다. 미식의 나라 홍콩에는 정말 맛있고 훌륭한 레스토랑이 너~무 많지만 너무 많은 바람에 고르는 것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니.
오늘 방문했던 레스토랑은, 넷플릭스의 가장 비싼 요리 프로그램이라는 The Final Table의 스타 셰프 Shane Osborn이 홍콩 센트럴에 오픈한 Cornerstone이다. 아주 고급진 스타 셰프님이시지만 놀랍게도 우리 같은 소시민도 쉽게 고메 요리를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가격의 레스토랑이었다.
셧다운 기간 중 매일 홈메이드 생존 음식에 지친 우리는 오래간만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유명 셰프님의 요리로 혓바닥 호사를 누릴 수 있어 아주 신이 났다.
런치에는 오지 셰프님답게 남편의 소울 푸드인 오픈 샌드위치 몇 가지와 파스타, 그리고 블랙 트러플 리조또 정도로 간단하고 알찬 구성이었다. 나에게 샌드위치는 요리가 아닌 간식이라 패스, 파스타는 너무 고기 하나 없이 초록색이라 패스.. 남은 선택은 블랙 트러플 리조또.. 그러나 리조또에 이불 덮이듯 올라간 트러플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트러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어떤 음식이든 트러플이 들어가기만 하면 약간 그 쇠맛이 나는 오일리함이 모든 향과 맛을 가려서 오직 트러플 맛 나는 재료를 우적우적 씹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러플 세 글자만 들어가면 같이 비싸지는 가격은 어떻고? 하지만 웨이터분이 블랙 트러플 리조또를 아주 강추하셨고, 또 이 트러플이 호주산이라는 말에 앞에 앉은 호주애가 부추겨서 모험을 시도했다.
결과는?
OH MY TRUFFLE GOD!!
여태껏 내가 먹어왔던 모든 트러플은 트러플이 아니었다!!
꽃등심 같은 예쁜 무늬의 트러플 슬라이스는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웠으며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치즈처럼 사르르 녹았고, 분명 내가 알고 있던 트러플의 풍미가 과하지 않지만 입안 한 가득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약간의 치즈와 크림으로 코팅된 블랙 라이스, 촉촉한 터닙(Turnip)이 트러플과 잘 어우러져 입안에서 파파팡! 하고 폭죽이 터졌다.
세상에..
트러플 슬라이스 한 조각을 먹었는데도 내가 알던 그 특유의 쇠맛이 아니라 좀 더 크리미하고 가벼운.. 마치 트러플 맛이 나는 구름을 먹는 듯한.. 어쩜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지?
웨이터님은 아주 흐뭇해하시며 (역시 그럴 줄 알았어의 눈빛) 이 호주산 트러플이 상급의 고급 트러플이며 채집된 지 얼마 안 된 아주 신선한 트러플이라고 했다. 그러고 다시 보니 정말 이 어두운 꽃등심 무늬가 아주 선명한 것이 신선해 보이기도 했다. (트러블 잘알못)
보통 여느 음식에 들어가는 트러플들은 대부분 진짜 트러플이 아닌 트러플 향을 첨가한 합성 오일이거나, 아니면 아주 쥐똥만큼의 트러플을 쥐어짜고 짜내 오일에 향을 입힌 것이라고 한다. 내가 싫어했던 그 맛이 사실은 진짜 트러플이 아닌 트러플 오일 맛이었던 것!
한 그릇을 거의 울면서 싹싹 먹고 나니 나는 굉장히 슬퍼졌다. 이제야 진짜 트러플을 알게 되어 사랑에 빠졌는데, 이는 나와는 레벨이 다른 아주 높은 몸 값의 고귀한 신분... 매일 만날 수 없어...
"나는 이제부터 돼지를 키워볼까 봐.. 돼지랑 같이 산에 가서 트러플을 찾을 거야!!"하고 슬픈 눈으로 접시를 핥는 나를 남편은 애잔한 눈빛으로 대꾸했다. "먹는 고기의 동물은 절대 안 키운다며?"
그렇다... 이제 나는 여태 애써 눌러오던 돼지고기에 대한 죄책감까지 들기 시작했다.. 돼지는 도대체 모자람이 없는 동물이다. 정말 살아서는 트러플을 캐고, 잔반도 먹어주며, 게다가 죽어서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버릴 것이 하나 없는 최고의 올라운드 플레이어 (동의어: 대리급) 그에 비해 나는 정말 돼지만도 못한 인간이지 않은가...
언젠가 돼지와 함께 트러플 찾기 산책을 하게 되는 날이 오길... 돼지야 고마워 항상 사랑한다!!!
Cornerstone
49 Hollywood road, Central, Hong 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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