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연수 」『계간 창작과비평 겨울2019』中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곳으로 결혼식에 다녀왔다. 2호선을 타고 한참 가다가 왕십리에서 분당선으로 갈아탄다. 또 한참 내려가고 수서역에서 버스로 5 정거장을 간 후 10분을 걸어가면 적막한 공원 너머로 반짝이는 예식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동차로 가면 40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거의 두 배쯤 더 걸리는 셈이다.
나는 아직 운전면허가 없다. 이제 내 또래에서는 면허가 없는 사람이 더 희소하다.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다가 돌아오는 여름에는 꼭 면허를 따서 운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운전면허 취득을 2020년의 첫 목표로 세웠다. 요즘 머릿속에 면허에 대한 생각이 가득하다 보니 결혼식을 가기 직전까지도 사람들과 운전면허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따야 하나 평행주차는 어떻게 하나, 실내 운전 연습장에서 연습하면 면허를 딸 수 있을까 쫑알쫑알 이야기했다.
이렇게 1월에는 반드시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며 긴 지하철 길의 동무로 창작과 비평 계간지를 챙겨 들었다. 마침 읽을 차례가 장류진 작가의 「연수」였다. 운전 연수와 관련된 내용이라니, 이런 우연은 늘 반갑고 즐겁다. 덕분에 읽기도 전부터 작품에 대한 마음이 이미 한껏 열렸다.
인생에서 별다른 실패 없이 승승장구하며 살아온 30대 여성 ‘주연’에게 운전은 유일한 실패 경험이다. 가까스로 운전면허를 따긴 했지만, 그마저도 9년 전의 일이던 터에 회사의 출근지가 바뀐다. 대중교통으로는 버스로 아홉 정거장에 도보 20분, 자동차로 가면 도어투도어 25분. (결혼식에 가는 교통편을 보며 한숨을 쉬던 내 모습과 오버랩되는 문장이었다.) 고민하던 차에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수입차 프로모션 행사 글을 보고 덜컥 계약서에 사인한다. 그리고 운전 연수를 검색한다. 광고로 보이는 글을 걸러내고 맘카페에 가입해 ‘주연맘’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정회원이 되기까지 노력을 기울여가며 연수 강사를 구해 연수를 받는다.
장류진 작가는 최근에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여성’은 장류진 소설의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이다. ‘진짜 주연맘’은 결혼은 언제 할 것인지 주연을 들볶더니 수백만 원짜리 결혼정보회사의 서류를 내밀었다. 그 후로 주연은 두 달째 ‘진짜 주연맘’과 냉전 중이다.
결혼정보회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20대 중 후반 여성 중에 결혼 언제 할 거냐는 질문을 안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어디까지 진심 어린 인사말인지 주제넘은 오지랖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가볍게 묻는 인사말이라고 하기에는 결혼은 사적이고 내밀한 영역인 것이 사실이다. 뭐, 이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어쩌면 이미 넘치도록 이야기가 이루어져 왔으니 넘어가자.
이밖에도 연수 강사가 주연의 회사에 그녀와 같은 여직원들도 많은지, 오십 대 여성도 있는지 물어보는 장면이나 ‘그전에도 엄마의 삼십 평생, 사십 평생에 가장 기쁜 순간들은 나로 인해 만들어졌다.(p.165)’는 문장에서도 작가의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다.
장류진은 2030의 손익계산 확실하고 인간관계에서 적정선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모습을 잘 담아낸다고 평가받는다. 「연수」에서도 그런 면이 드러난다. ‘필요할 때 원하는 정보만 얻어 갈 생각(p.147)’으로 맘카페에 가입하는 모습이나 새벽에 연수를 받으면 남편 밥은 안 차려줘도 되냐는 물음과 아이를 낳기 전에 ‘미리’ 연수를 받는 것은 잘한 일이라고 칭찬하는 강사를 향해 주연은 ‘만난 지 두 시간밖에 안 됐는데 멋대로 내 자녀 계획까지 세우는 무례함에 초반에 가졌던 신뢰와 호감이 급격히 하락했다.(p.155)’고 생각하는 부분이 그러하다.
아무래도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인물에 대한 평가도 주인공의 마음을 그대로 따라가기 마련이다. 아무렇지 않게 경계를 스윽 넘어오는 ‘그녀’에 대한 반발심이 들었는데, 뒤로 가며 그런 평가가 반전되었다.
이제 어느 정도 운전을 하니 5시간의 추가 연수는 필요 없다며 뚝심 있게 말하는 모습이나 잘못 들어선 길에서 차선을 변경할 수 있도록 ‘그 차갑고 신경질적인 경적’을 다 본인에게로 향하게 하며 뒤에서 막아주는 모습은 어찌나 따뜻한지.
뭐, 사람이 다 그런 것 같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디 있나. 으레 하는 가벼운 인사말로 선을 넘기도 하지만 일에 대한 나름의 가치관도 뚜렷하고 주인공이 홀로 해낼 수 있도록 격려를 해주는 모습에서 인간미가 느껴진다. 가끔 선을 넘는 농담을 하지만 옆에서 늘 엄마처럼 든든하게 챙겨주시는 우리 부장님이 생각난다.
이 소설, 참 따뜻하다.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p.170)
주연은 단순히 운전 연수만 받은 것이 아니라 아닌 앞으로 홀로 헤쳐나갈 삶에 대한 격려를 받았기에 제목이 「연수」인 게 아닐까.
Dec 22nd,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