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시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피터 T. 콜먼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루먼, 그곳에 입사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바로 ‘세브란스’라 하는 기억 단절 수술을 받는 것. 머릿속에 작은 칩을 이식하여 보안이 요구되는 회사 내부로 들어가게 되면 외부의 자아와 모든 기억은 사라지고 새로운 자아가 깨어난다. 바깥의 자아는 아우티, 안 쪽의 자아는 이니라 불린다.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어 하는 많은 직장인들에게 희소식처럼 들리겠지만, 이니의 입장에서는 퇴근을 하자마자 다시 출근을 하게 되며 조금의 휴식 시간도 갖지 못하는 스스로의 상태가 노예가 다름없다고 느낀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법한 설정이지만, 현실에도 드라마 속 단절 수술을 받은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다중인격이라고도 불리는 해리성 장애를 앓는 사람들이다. 해리성 장애는 통합되어 있던 개인의 기억, 의식, 정체감, 지각 기능 등이 단절되어 와해된 행동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단절로 인해 나타나는 장애는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 피터 T. 콜먼은 현재 극심하게 양극화되고 분열된 미국 사회가 국가적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진단한다.
『분열의 시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미국 사회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나온 책이지만,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고질적으로는 지역감정의 문제가 있겠고, 성별 갈등, 세대 갈등, 정치 갈등, 종교 갈등 등 곳곳에서 사람들은 양극화되고 분열되었다. 인터넷 뉴스의 댓글란을 보면 성별에 따라 정치 진영에 따라 완전히 갈라서서 서로를 맹비난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피부로 체감하는 것뿐 아니라 2020년에 조사된 킹스칼리지 보고서, 2016년에 조사된 국가 갈등지수 OECD 글로벌 비교는 우리나라의 갈등 문제가 전 세계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상황임을 알려준다.
이러한 갈등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어트랙터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어트랙터는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니 주의 깊게 읽어주기를 바란다.
어트랙터는 ‘시스템이 시간 경과에 따라 만들어내는 상태나 패턴이자 시스템이 불안정할 경우에 되돌아가려는 상태나 패턴’이다. (p. 87) 어트랙터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여러 요소가 서로 영향을 끼쳐 일관된 흐름, 패턴을 만드는 방식으로 생겨난다. 예를 들면 이렇다. 편향된 뉴스 시청, 불안감 증폭,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 조회수를 추구하는 자극적인 기사, 두뇌의 신경회로 재설정, 복잡한 이슈에 압도당하여 비슷한 뉴스만 계속 소비하는 등의 요소는 서로 결합하고 다른 요소를 강화시키기도 한다. 그 결과 해결하기 어려운 정치적 양극화와 분열의 어트랙터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어트랙터는 본질적으로 저에너지 상태라는 설명이 매우 명료하게 다가왔다. 한번 갈등 상황에 빠지면 그곳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사람은 대개 복잡하고 이성적으로 노력을 들여 생각하기보다, 노력이 거의 필요 없이 자동적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대니얼 카너먼의 시스템 1을 떠올리면 되겠다.) 때문에 한번 어트랙터가 형성되면 사람들은 깊은 갈등의 계곡으로 굴러 떨어진다. 그곳에서 탈출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치고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줄이게 된다.
저자는 마치 시계를 고치듯 기계적으로 고치려는 접근을 통해서는 갈등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희망적인 사실은 이러한 분열과 양극화에 출구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돕는 다섯 가지 방법이 제시되는데 이는 재설정하기, 강화하고 부수기, 복잡도 높이기, 움직이기, 유연하게 적응하기이다. 이 중 복잡도 높이기와 유연하게 적응하기 두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복잡도 높이기는 일관된 복잡성과 모순된 복잡성 중 후자를 강화하는 방법이다. 앞서 여러 요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어트랙터가 형성된다고 설명하였다. 모순된 복잡성은 부정적인 어트랙터 형성을 음의 효과를 주는데,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와 다른 정보를 접하거나, 자신과 견해가 다른 현명한 사람과 대화하면서, 혹은 정치 성향이 다른 언론사를 구독하거나 쟁점이 되는 사안에 어떤 요소들이 얽혀 있는지 찾아보면서 높일 수 있다. 이를 통해 개인이 확증편향에 빠지는 것을 방지한다.
그러나 갈등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복잡도를 높이더라도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선의의 해결책이 최악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원칙이 유연하게 적응하기다. 우리는 즉각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하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긴 시간에 걸쳐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오늘 나의 행동이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과, 의도치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미칠 결과를 동시에 고려하며 갈등을 풀어가야 한다.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있더라도 실패를 통해 배우는 태도가 중요하다. 작은 시도를 통해 현명하게 실패하며 배우는 것도 도움이 된다.
분열되고 양극화된 우리 사회에는 상대를 적으로, 악마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나는 정의롭고 너는 불의하다.’는 생각에 빠지면 만사가 참 명쾌하고 쉬워 보인다. 그러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누군가 역시 사람이다. 내가 틀리고 너가 맞을 수 있고, 나도 너도 모두 맞거나 틀렸을 수도 있다. 갈등의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고 그곳에 편히 머무르고 싶을 때 재설정, 강화하고 부수기, 복잡도, 움직임, 유연한 적응을 기억해야겠다. 물론 인지적 부하와 정서적인 소진이 많이 일어나겠지만 말이다.
분열의 시대에서 출구를 찾는 방법뿐 아니라 삶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어려움을 해결해가는 과정에도 적용할 수 있는 가르침을 주는 책이었다. 처방전에 따라 약을 받더라도 그 약을 복용하는 것은 환자의 몫이다. 이제 약 봉투를 뜯어 꿀꺽 삼킬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