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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지롭다 Jan 25. 2024

개똥밭에 굴러도 '이 삶'이 낫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인플루엔셜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자정의 도서관.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과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지인이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 위로가 되었던 책이라고 소개를 하며 책을 빌려주었다. 이 책의 주인공 ‘노라’ 역시 고통스러운 삶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이한 인물이다.


내게는 멋진 삶을 살 기회가 있었지만 난 그 기회를 모두 날려버렸어요. 내 부주의한 행동과 불운 때문에 세상은 내게서 멀어졌죠. 그러니 이제는 내가 세상에서 멀어지는 게 도리예요. p.41


이 책의 주인공 노라는 수영 선수로, 밴드 가수로, 혹은 행복한 아내 등이 될 수 있었지만, 자신은 그 모든 기회를 잃어버리고 최악의 선택을 거듭해 왔다고 믿는다. 사회적 관계가 거의 단절된 때에 기르던 고양이가 집 밖에서 세상을 떠나고,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다. 간간이 도와드리던 이웃집 할아버지마저도 이제 노라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순간, 노라는 이제 아무도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뒤 자살을 시도한다.


노라는 삶과 죽음 사이의 회색 지대에서 눈을 뜬다. 그곳은 사방이 책으로 가득했는데, 고등학생 시절 그녀의 삶에 친절을 베풀었던 도서관 사서 엘름 부인이 기억 속 모습 그대로 나타나 이 공간에 대해 설명해 준다. 이곳은 노라가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자정의 도서관’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책들은 모두 그녀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펼쳐질 수 있었던 삶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책을 펼치고 읽는 순간 그녀는 그 삶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 그곳에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다시 자정의 도서관으로 돌아오게 된다.


노라는 그녀의 삶에서 후회가 되는 부분들을 하나씩 찾아 다른 삶을 경험해 본다. 만약 약혼자 댄과 파혼하지 않고 결혼해서 펍을 운영했더라면, 계속해서 수영에 매진했더라면, 밴드로 계속 활동했더라면, 기후 위기에 관한 연구를 택했더라면, 가장 친한 친구를 따라 호주로 떠났더라면.. 등


수만 권 혹은 그 이상의 삶 앞에서 선 노라는 과연 그녀를 행복하게 할 단 하나의 삶을 찾아낼 수 있을까?




노라가 도서관의 책을 읽고 삶에 들어갈 때 한계가 있다. 그 삶에 대한 이전의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눈치껏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행동해야 어색하지 않게 그 삶에 녹아들 수 있다. 또, 선택은 결정할 수 있지만, 원하는 결과까지 결정할 수는 없다.


이 제약 때문에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노라가 ‘다른 노라’의 삶에 민폐를 끼치며, 조금 심하게 말하면, 다른 삶을 도둑질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을 계속하여 올림픽에서 메달도 따며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마친 삶으로 들어갔을 때, 노라는 그녀의 강연을 들으러 온 천 명도 넘는 관중 앞에서 횡설수설하다 도서관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삶의 어떠한 순간의 선택이 바뀌었기를 바라기만 했을 뿐, 그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에는 조금도 기여하지 않았다. ‘다른 노라’가 일구어낸 삶을 일시적으로 체험하며 때로는 그 삶에 흙탕물을 튀긴 채 자정의 도서관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작가는 노라의 체험을 처음 몇 가지 에피소드는 길게, 수십 페이지에 걸쳐 묘사하지만, 체험이 거듭될수록 짧게 묘사한다. (실제로 노라가 단 몇 분만에 도서관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도대체 노라의 이 수많은 체험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나 의구심이 들고 지루한 감정이 올라올 무렵에, 노라가 이렇게 말한다.

“더는 못 하겠어요.”
“삶이 다 바닥났어요. 전 온갖 일을 다 해봤어요. 그런데도 늘 여기로 돌아오죠. 늘 무언가가 내 즐거움을 가로막는 기분이에요. 늘. 전 배은망덕한 사람이 된 기분이고요.” p.311

그렇다. 더 이상 다른 삶을 체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어느 삶을 살아도 스스로가 일구어 낸 것 없이 편승하기만 하는데 어떤 진정한 기쁨이 있었으랴.


이제부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상관없는 이만 뒤의 내용을 읽으면 되겠다.

* 스포일러 주의 *



노라가 도서관에서 마지막으로 택한 삶은 안정적이고 아름답고 사랑으로 가득해 보인다. 본인은 철학과 교수에 남편은 의사, 사랑스러운 딸과 깔끔하고 단정한 마을에서 살고 있다. 이전의 어떤 삶보다 긴 몇 주를 머무르지만, 노라는 점점 위화감을 느낀다.  원래 살던 동네에 갔을 때 동네는 묘하게 그녀의 원래 삶과 달라져 있었다. 그녀가 원래의 삶에서 몇 년째 피아노를 가르치던 아이는 노라와 같이 저렴한 레슨비를 받는 음악 선생님을 만나지 못해 거친 세계에 발을 디뎠는지, 노라의 눈앞에서 경찰에 연행된다. 이웃집 할아버지는 요양원에 들어간 지 오래라는 소식도 듣는다.


무엇이 변화를 만들었는가? 답이 없어 보이는 그녀의 원래 삶에서 그녀가 했던 아주 사소하고 친절한 행동들은 분명 누군가의 삶에 희망을 주고 있었다.


노라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를 두고 떠나고 싶지 않지만, 결국 인정한다. 이 삶은 그녀의 삶이 아니다. 다급하게 딸에게 사랑을 전하며 노라는 다시 도서관에 돌아온다.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고 절규하는 노라에게 엘름 부인은 조금 냉정하게 말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넌 그 삶을 원하지 않았어.” p.376

그때 자정의 도서관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녀의 현재 삶에서의 육신에 어떤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연기가 나면서 책들이 불탔다. 도서관을 빠져나가려는 노라에게 엘름 부인은 절대 불타지 않는 책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여느 책과 달리 백지로 가득한, 진짜 그녀의 삶이었다. 살고 싶다, 살기로 결심했다, 살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을 휘갈겨 써 보지만 탈출할 수 없었다. 마침내 “나는 살아 있다. (p.384)”라 쓰는 순간, 노라는 그녀의 삶에서 눈을 뜬다.



노라와 함께 수많은, 기나긴 삶을 함께 지나온 것은 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였다.

노라는 죽고 싶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것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삶은 엉망진창에 고군분투일지라도 그녀의 것이었다. 그조차 아름다웠다. p.381

어쩌면 노라를 보면서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이 들거나, 자신이면서도 다른 존재인 노라의 삶을 강탈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모두 작가의 의도에 충실하게 반응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사람은 후회의 동물이라고들 한다. 후회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당장 하루만 살아도 후회스러운 일이 생겨나는 것이 인간이다. 가끔은 그 후회가 너무 치명적인 것 같아, 삶을 통째로 바꿔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났다는 속담이 있다. 이를 이렇게 바꾸고 싶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 삶이 낫다.” 내가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삶. 실제의 삶에서 과거를 바꾸고 다른 삶으로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미래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앞으로 우리가 내릴 선택은 수백만, 혹은 수백억 그 이상일 것이고 매 선택마다 분기점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갈라지고 또 갈라지고 또 갈라진다. 때로는 자신의 삶에서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후회되는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삶을 계속 살아가다 보면 이를 만회할 순간들은 계속 찾아올 것이다. 그러니, 살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 내자.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붙들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며, 내 미래를 향해 걸어가자. 각자의 삶을 피하지 않고 걸어가는 모든 인생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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