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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지롭다 Apr 10. 2020

나의 읽기 쓰기 연대기

<보통 직장인의 위대한 글쓰기> 첫 번째 과제: 나의 글쓰기 역사 

쓰기야말로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글쓰기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면 도움이 될까 고민하던 중에 <보통 직장인의 위대한 글쓰기>라는 강의를 발견했다. 강의 제목도 매력적이고, 기간 안에 8개의 과제를 모두 완수하면 반절 이상 환급해 준다는 말에 혹해 바로 신청을 했다. (여담이지만 과제 완수를 굉장히 쉽게 봤는데, 꽤 품이 많이 든다. 수강한 지 10일 만에 첫 과제라니 갈 길이 멀다) 앞으로 강의 과제를 브런치에 올리려고 한다. 첫 번째 과제는 ‘나의 글쓰기 역사’이다.




쓰기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읽기의 역사와 같이 갈 수밖에 없다. 읽기는 쓰기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쓰기와 읽기 역사의 굵직한 사건을 간단한 도표로 정리했다.

읽기는 뿌리와 같아서 아래 칸에, 쓰기는 이파리와 비슷해서 위 칸에 배치했다.

어린 시절, 읽기에 대한 호감도는 늘 높았다. 어렸을 적에는 집에 있는 활자란 활자는 거의 다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이 창작동화 전집, 옛날이야기, 과학 앨범 시리즈, 잡지 등 닥치는 대로 읽었다. (사족; 어렸을 때, 스마트폰이 없었던 것이 정말 다행이다)


그에 반해 쓰기는 언제나 버겁고 귀찮았다. 한글 해득도 늦은 편이었고, 연필을 쥐는 힘이 약해 글씨가 엉망이었다. 쓰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괴로웠다. 방학이 끝나기 전 이틀쯤은 울면서 밀린 일기를 쓰곤 했다.

쓰기에 대한 호감도가 마이너스를 찍던 중, 전환점이 하나 있었다. 5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숙제를 하나 내주셨다. 내 똥을 관찰하고 글을 쓰라는 숙제였다. 십수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기억날 정도이니, 당시에는 얼마나 경악스러웠을까? 그런데 이 냄새 나는 주제 덕분에 힘들거나 싫다는 느낌 없이 (당시라면 부인했겠지만) 즐겁게 글을 썼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무협이나 판타지 소설, 인터넷 소설 등 통속소설에 빠지면서 양서를 멀리하고 쓰기도 멀리했다. 입시를 위해 논술 특강을 받고 글을 썼지만, 내 생각은 전혀 담기지 않아 생동감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다. 논술과 자소서를 떠올리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던 나날이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silviarita)

입시 준비 때문에 스트레스를 잔뜩 받던 고3의 어느 날, 꾹꾹 눌린 열등감이 터졌다. 우연히 옛 친구의 소식을 들었는데, 중학교 시절 적당히 쉬어가며 설렁설렁 공부하던 친구가 고3이 되니 공부에 집중해 전교권을 날린단다. 나는 그 아이가 놀 때 독서실에 가서 벽만 보며 공부했는데, 왜 지금 내 성적이 더 낮지? 나도 잘나가고 싶었는데, 왜 나는 못하고 그 아이는 되지? 성적에 대한 질투, 교우관계에 대한 열패감 등이 쌓여 누구를 향하는지도 모를 분노가 솟구쳤다.


바로 그때, 나는 공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펜을 들고 한 페이지에 한두 문장씩 미친 듯이 휘갈겨 썼다. 억울함, 분노, 부러움, 질투, 자괴감, 걱정… 온갖 감정을 다 쏟아붓고 나니 공책의 맨 뒷장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의 원인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얽힌 감정의 실타래가 풀렸다. 감정이 정화된 것이었다.

글을 씀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StockSnap)




이후 대학교에서 작문 강의를 들으며 글쓰기 소질을 발견했다. 어느 정도 틀을 갖추어 글을 쓰는 법을 처음으로 배웠는데, 밑받침을 깔고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으면 뚝딱! 하고 글이 완성됐다. 강의의 일환으로 참가한 민족문화 백일장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던 시기였다.


비록 과제를 위한 글쓰기가 주된 시기였지만, 통학하던 지하철 안에서 손바닥만 한 수첩에 일기를 쓰기도 했다. 내가 경험한 일들, 발견한 세상, 그리고 내가 느낀 일들을 빼곡하게 적었다. 다시 펼쳐보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쓰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여러 스트레스가 풀렸다.


과제가 아니고서야 거의 책을 읽지 않던 대학생 시절을 졸업한 뒤 일터에서 한 선배를 만났다. 그 선배는 알*딘 굿즈의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이벤트 도서를 포함해서 일정 금액 이상 구매하면 Born to Read라고 적힌(얼마나 있어 보이는가) 빨간 에코백을 준다. 이 에코백을 받기 위해 5만 원 어치의 책을 담았다. 주객이 전도되어 에코백을 사고 덤으로 온(!) 책이긴 하다만 그래도 간만에 내 돈 주고 책을 샀는데, 어디에라도 책 읽는 티를 내고 싶었다. 그때부터 책을 읽고 간단하게 평을 써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세 문장으로 간단하게 썼는데, 좋은 책을 만나면 할 말이 많아져 글이 조금씩 길어졌다. 피드에서 작성할 수 있는 2,000자를 넘겨 글이 중간에 잘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책을 읽고 내 생각을 쓰는 데 익숙해져 꾸준하게 리뷰를 올리던 어느 날, 문학동네의 톨스토이 서평단 광고를 보았다.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주면 받아서 읽고 서평을 올리면 된다니! 운 좋게도 서평단에 선정되었고 <전쟁과 평화>를 받았다. 푹 빠져서 책을 읽고 리뷰를 쓰려는데, 아뿔싸,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이 다시 슬금슬금 다가왔다. 책을 받은 만큼의 값어치를 해내야 하지 않겠는가. 마감일은 다가오고, 머리를 아무리 쥐어 짜내도 첫 문장이 나오지 않고 멍하니 노트북 앞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결국 엉망진창인 글을 제출했다. 그렇지만 서평단에 참가하면서 가치를 창출해내는 글쓰기의 힘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이후 서평단을 모집하는 글이 있으면 활발하게 참여한다. 처음이 어려웠지, 이후로는 꽤 수월하게 글을 쓰고 있다.



최근의 나는 질 높은 읽기와 쓰기를 추구한다. 더 잘 쓰고 싶다. 세상에 나를 표현하고 싶다. 좋은 책을 읽고 생각한 내용을 글로 담고 싶다. 글을 쓰고 잘 다듬어서 다른 이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독서 모임에서 만난 사람의 추천으로 브런치를 시작했다. 나름대로 심사를 거쳐 작가로 선정되었다 보니 완벽하게 쓰려는 욕심이 생겨 정작 브런치 작가로 선정된 후에는 글을 몇 편 못 썼다. 압박감을 덜어낼 필요가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쓰자. 경험이 있어야 실력이 생긴다. 죽도 쒀 보고 밥도 지어 봐야 밥 짓기의 달인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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