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의견,
즉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민음사, p.10)
실면적 27평에 방 3개짜리 집에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았다. 하나는 안방으로, 하나는 오빠 방으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언니와 내가 사용했다. 같은 집에서 15년째 사는 동안 안방과 오빠 방을 바꾸기도 했고 무려 거실과 오빠 방을 바꾸는 과감한 시도도 이루어지던 가운데 우리방은 들어온 모습 그대로 유지되었다. 퀸사이즈 침대 하나, 이사 올 때 챙겨 온 거대한 장롱 2개, 벽 붙박이 책장 2개, 책상 2세트. 화장대 놓을 공간이 없어 애매하게 책꽂이 하나의 맨 위칸을 화장대 대용으로 사용했다.
수납공간은 터지기 직전이었지만,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에 꾸역꾸역 눌러 담았다. 책상 서랍에, 장롱 서랍에, 침대 아래에. 도대체 몇 년이나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책상 의자는 불편해서 의자로써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옷걸이로 전락했다가, 빨래 바구니의 역할마저 감당해야 했다. 책상 위는 책들과 각종 서류, 상대방의 옷 주머니에서 나온 립밤, 영수증, 카페 휴지 등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는 전시장이었다. 한 달에 3~4일 꼴로 청소를 하더라도 책상 위의 물건들이 책상 서랍 안으로 공간이동을 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좁은 방은 아니었지만 테트리스처럼 여러 가구들을 배치한 탓에 매일 아침마다 한 명이 침대에 걸터앉아 양말을 신고 있으면 다른 한 명은 “다리 좀.”이라 말하거나 침대 위를 겅중겅중 넘어 다녀야 했다. 그나마 둘 다 깨어있으면 다행이지, 가장 불편한 점은 언니와 나의 생활패턴이 완전히 달랐다는 것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나는 이르면 5시 반, 아무리 늦어도 7시 전에는 일어났다. 반대로 언니는 밤 10시 정도에만 들어와도 식구들이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퇴근했냐고 물을 정도였다. 언니의 퇴근 루틴 시간에는 내가 잠들어 있고, 나의 출근 루틴 시간에는 언니가 잠들어 있는 식이라 평일에는 자고 있는 룸메이트를 깨우지 않기 위해 출근 준비도 암흑 속에서, 퇴근 후 잘 준비도 암흑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던 중에 갑작스럽게 언니가 해외로 떠났다. 짧으면 2년, 길면 3년을 머무른다고 한다.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평생을 언니와 같은 방을 쓰다가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다. 둘이 살던 구조에서 이제는 나만을 위한 방을 만들 기회가 생겼다.
시작은 버리기였다. 이십여 년간 공유한 옷장에서 언니의 지분율이 80% 이상인 옷들이 캐리어에 실려 떠나가고, 내 옷이거나, 혹은 안 입는 옷들만 남았다. 옷장을 털어 상태가 괜찮지만 안 입는 옷들은 헌 옷 수거함에, 나도 못 입고 너도 못 입을 옷은 과감하게 쓰레기 봉지에 담았다. 다음 날은 책상 위와 서랍을 오가며 공간이동만 하던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털었다. 그 다음 날은 책꽂이를 털어 헌책방에 팔고, 그 다음은 장롱 서랍에 10년을 넘게 모은 제 기능을 상실한 물건들을 버렸다. 그리고 장롱 깊숙이 보관된 이불들을 버렸다. 100L 봉지에 담긴 이불 사이사이로 이리저리 눌린 병아리의 얼굴과 낡은 분홍 토끼 인형의 접힌 귀가 애처로웠지만, 막연한 죄책감에 버리지 못하던 인형들을 힘겹게 놓아주었다. 이때 버린 물건의 부피가 못해도 200L는 되지 않을까 싶다.
아, 200L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방 바꾸기 과정에서 버린 물건 중 가장 덩치가 큰 두 친구를 깜빡했다. 침대 프레임과 장롱 한 채. 기존의 프레임은 아무런 수납 기능 없이 공간이 낭비되고 아래에 먼지만 쌓여서 대안이 필요했다. 그리고 공간 활용을 위해 늘 거대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서서 시선을 붙잡던 장롱 두 채 중 하나를 버렸다. 현관문을 통과하려면 장롱을 기울여야 하는데, 아무리 시도해도 각도가 안 나와 결국 복도의 전등을 떼어내고서야 통과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엘리베이터에 싣고 밖으로 내보내기까지 세 사람이 달라붙어 용을 썼다. 방 바꾸기에서 물리적인 힘을 가장 많이 쓴 부분이다.
물건을 정리하다 추억에 잠기는 것도 초반 한두 번이지, 나중에 가서는 무자비하고 맹렬하게 버렸다. 추억? 좋지. 그런데 지난 십여 년간 생각한 적도 없고, 버릴 목적이 아니고서야 들여다본 적도 없는 물건들이 과연 나에게 가치가 있을까, 생각하며 말이다. 뭐 이렇게 아등바등 끌어모으며 살았는지 모르겠다. 모래알들이 먼저 들어와 큰 돌멩이가 들어가지 못하는 항아리처럼, 작고 소소한 것들이 내 공간을 너무 많이 채우고 있었다.
버리는 것도 좋지만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애써 만든 빈자리에 다시 가치 없는 것들로 가득 찰 것이다. 더 이상 호환이 되지 않는 케이블에서부터 담고 있으면 독이 퍼져나가는 감정까지. 이제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무려 15년 만에 온 기회니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기회니까.
문득, 정리되지 않고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지난날의 기록들이 두서없이 자리하던 물건들과 겹쳐진다.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장, 중 고등학교 시절의 스터디 플래너, 대학생 시절 손바닥만 한 공책에 빼곡히 적은 일기들, 4박 5일 일정에도 매일 밤새워가며 적은 여행기, 일을 시작하고 매일 적은 하루 반성 기록들…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기록들을 모아 한 상자에 담았다. 이제 어디에 일기들을 모아 놓았는지 알고 있으니 언제든 꺼내볼 수 있다. 그렇게 시스템 만들기에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