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계의 교과서적 상황 목격담

by 헤일리 데일리

내 책상에 있는 결혼반지를 가지고 놀던 아이. 나는 반지를 잃어버릴까 봐 급격히 불안해졌고, 바로 아이를 조심시켰다.


"호두야. 그건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 돼. 엄마한테 하나밖에 없는 반지라서 다시 그 자리에 둬야 해."


그러고 나서 잠시 다른 일을 하다 다시 책상으로 돌아왔는데, 제자리에 있어야 할 반지가 없었다. 아이는 이미 다른 곳에서 노는 중. 내 유일한 명품 반지를 잃어버릴까 노심초사 한 마음에 아이를 소환했다.

- 엄마 반지 어디다 뒀어?

- 모른다고? 잘 생각해 봐!

- 네가 얘기를 해줘야 엄마가 찾을 수 있지!!


요즘 흔한 말로 잡도리. 아이를 잡도리했다. 불과 5분 전에 경고한 일이 현실로 된 점에 분노하고, 다시는 그 반지를 끼지 못할 것 같은 공포감에 온 방을 전부 뒤엎었다. 책도 전부 꺼내서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도 반지가 나오질 않았다. 아이가 잠시 가지고 놀았던 걸 감안하면, 이렇게까지 깊은 곳으로 사라질 리가 없는데 말이다.


결국 분노를 추스르고 자포자기한 나. 엄마의 화와 자기 잘못에 대한 죄책감으로 눈물 찔끔한 아이. 우리는 물 좀 마시면 쉬자고 식탁으로 갔다. 그리고 컵에 물을 따르는데 식탁 위 반지가 보였다.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식탁에 반지를 놓고 다른 장난감을 가지러 갔었나 보다.




잠시 뒤 남편이 퇴근을 했고, 이 혼란스러운 현장의 사건 전말을 알게 됐다. 물론 아이에게 별 내색 않고 상황 인지 정도만 한 상태로 남편은 아이에게 안부를 물었다.


"호두, 오늘 뭐 했어?"


그러자 아이는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아빠한테 위로를 받고 싶었나 보다.


"나 아까 울었어."


나는 남편이 이 상황을 알고 있기에 아이를 따뜻하게 위로해 줄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 왈,


"울고 나서 뭐 했어?"


(나와 아이:???)


아이는 답을 못한 채 말 끝을 흐렸고, 대화를 듣던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다. 이 대화는 한창 유행하던 대문자 T 구별법과 똑같았다.


F 감성: 나 우울해서 빵 샀어.
T 이성: 빵 사고 뭐 했어?


완전히 이 대화 구조와 일치했다. 예상하셨겠지만 역시 남편은 ESTJ다. 내가 내 MBTI는 기억하지 못해도, 남편 것은 아주 잘 알고 있는 이유다.


이 MBTI계의 교과서적 상황을 직면한 나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 양육자와 피양육자 간 기질 차이를 직시하고 양육법을 제대로 선택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리고 앞으로의 내 역할에도 큰 무게가 실렸다. 나는 아빠와 딸 사이의 간극을 잘 메워줘야 할 운명인 것이다.


내 MBTI는 테스트를 할 때마다 바뀌었다. 극단이 아닌 중간에 성향이 몰려있기 때문인지 상황에 따라 결과가 그때그때 다르다. 이제 그걸 장점으로 여겨 집에서는 남편과 딸의 가운데에서 스탠스를 잘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자적 성향으로 물 흐르듯이 유하게. 그런데 오늘 반지 사건에 유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화를 내서 미안하다. 엄마가 아직 인성이 못나서 아이 앞에서 부끄러운 행동을 보였다. 이제는 그러지 않도록 내 마음 수련부터 해야겠다. MBTI라는 결과론적 성향분석보다는 독서와 명상으로 마음을 형성하는 것이 먼저인 이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