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희생

by 헤일리 데일리

등원이 끝난 아침부터 기분이 급격히 다운됐다.


"빨리 가자. 지각이야!"


언제나처럼 늦게 일어난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며 간 어린이집. 선생님은 기어코 내게 한 말씀하셨다.


"이제는 무조건, 시간 되면 깨워주세요. 울어도 그렇게 해야 해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순간 발작버튼이 눌렸다. 내 게으름 탓에 아이가 지각을 하고, 그래서 선생님의 꾸중이 나를 향한 비난의 화살인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평소에 내가 게을러서 아이도 지각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나를 자책한 적이 많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소심하게 내 변명을 중얼중얼... 아무도 못 알아듣는 랩처럼 뱉어냈다. (절대 선생님 말씀에 토를 단 것이 아니었음을 명확히 해둔다.)


"저도 계속 깨운 거거든요ㅠㅠ 안 그러면 10시 넘어서 일어나는데..."


이건 정말 곪고 곪았던 내 감정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쓰기에 앞서 먼저 상황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아이는 4세인데, 낮잠을 건너뛰고도 밤 11시가 되어야 잠이 든다. 그만큼 잠을 무던히 버티는 스타일이고, 늦게 자는 만큼 아침 9~10시 사이에 일어난다. 나는 등원을 위해 늦어도 8시 반부터는 아이를 깨운다. 평균적으로 등원시간은 (어린이집 도착 기준) 9시 40분이다. 어린이집은 늦어도 9시 50분까지는 오라고 하셨다. (오늘은 9시 45분에 도착했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아이 때문에 아침마다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등원 전쟁. 너무 버거웠던 참이었다. 올 가을 들어 본격적으로 그 지난한 싸움이 시작됐는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는 누구한테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까? 그건 바라지도 않고... 그간 우리 아이의 성향과 낮잠, 밤잠 히스토리를 들어보면 누가 공감을 좀 해줄까?



- 성향: 예민한 편이고 잠을 자기 싫어함. 낮잠을 안 자려고 버티는 편.

- 밤잠: 통잠을 18개월 지나서야 자기 시작. 그전까지는 밤에 일어나 우유를 찾았고, 자다가 중간중간 일어나서 엄마를 끊임없이 불렀음. 지금도 나는 새벽에 한 번씩 아이에게 소환되어, 아이 침대로 가야 함.

- 낮잠: 어린이집에서 낮잠 거부. 현재 낮잠이 자기 싫어서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버티는 중.



요즘 어린이집 낮잠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서는 아이를 타이르며, 이렇게 저렇게 자는 쪽으로 유도해 주고 계시는 중이다. 선생님 입장에서 생각하면 얼마나 힘드실지 이해가 된다. 애들이 자야 선생님께서 비로소 쉬실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우리 아이의 행동이 너무나 죄송스럽다. 선생님께서도 스트레스를 받으셔서 아무래도 오늘 한 말씀을 하신 것 같다. 충분히 그 마음을 안다. (가정보육을 할 때도 아이가 낮잠을 안 자면 으레 엄마도 화가 나기 마련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답은 딱 한 가지뿐이다. 그냥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지 않고 하원하는 것. 그래야 아이도 스트레스 안 받고 선생님도 편하시고... 나만 일정을 조율해서 아이가 빨리 나올 수 있게 하면 된다. 그럼 하원을 하고 나는 아이와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또는 책을 읽거나 놀이터에서 시간을 때우면 된다. 이상적인 플랜이다. 다만, 내가 운전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장롱면허 뚜벅이라서 제약이 조금 있다. 한 달만 어린이집 생활을 하며 엄마 운전 연수받을 시간을 확보해 주면 딱 좋을 텐데. 내 욕심이 너무 큰가?


그런데 이렇게 결정 내리면,
나는? 나 자신은?
내게도 괜찮은 옵션인 건가?



답은 다 나왔는데 나는 섣불리 결단을 내릴 수가 없다. 왜냐면 나도 내 시간이 필요하고 하고 싶은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엄마라서 희생이 필요하지만, 왜 나는 평범한 어린이집 생활을 기대하면 안 되는 걸까? 내가 애를 유별나게 키웠나?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도도리표처럼 원인은 늘 내 탓이요, 내가 죄인이다.


그냥 엄마니까.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내가 풀타임 근무를 하는 엄마가 아니니까. 아이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을 하는 편이 낫...겠..지. 지금 심정은 그냥 자포자기다. 부디 오늘은 무난히 낮잠 시간을 버티고 와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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