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경보기가 울린 날

by 헤일리 데일리

새벽 5시 반.

갑자기 아파트에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화재입니다.
화재입니다.
신속하게 밖으로 대피하세요.


유난히 큰 사이렌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평상시에 오작동이 있었을 땐 금방 꺼지던 화재경보기는 꺼질 줄 모르고 연신 울려댔다.


나는 일단 아이를 방에서 데리고 나와 남편 옆에 두고 상황을 파악하러 복도로 나갔다. 우리가 사는 곳은 복도식 아파트여서, 불이 나도 복도에 연기가 가득 차는 구조가 아니기에 가능한 선택지였다.


아무리 봐도 양옆, 위/아래에 연기나 불꽃은 보이지 않았다. 차츰 우리 층에 사시는 주민분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외투를 입고 나오셨고, 하나 둘 계단으로 내려가시기 시작했다.


불이 났건, 안 났든 간에 나도 아이와 빨리 1층으로 대피해야겠다는 생각에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남편은 전혀 위기의식 없이 아이를 안고 이불 속에 들어가 있었다. 마치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걸 몸소 보여주듯이... 그 안일한 대처 방식에 기가 찼다.


내가 아이에게 외투를 입히고 대피하려 하자 남편은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연기가 들어와야 어쩌고 저쩌고 @#^~%**^?!! 기가 안 들어오는 걸 보면 불이 안 났다는 말 같은데, 근데 연기가 들어왔으면 벌써 죽을 위기에 처한 것 아닌가? 이미 대피하기에도 늦은 상황일 텐데?!


아이에게 화재 시 대처법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대피해야 했다. 아이가 무척 놀라고 긴장된 표정이어서 나라도 애써 괜찮은 척, 침착한 자세를 취하면서.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 쉴 새 없이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고 있었다. 불이 났을 때 엘리베이터는 절대 타서는 안되는데 말이다. 전력 공급이 끊어지면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멈추어서 안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태도에 이어 엘리베이터에 또 한 번 경악하며 계단을 밟는 순간, 사이렌 소리가 멈췄다. 어떤 가구에서 실수로 경보기가 작동됐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리며 아이와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을 때 남편의 표정이란...


내 이럴 줄 알았지.


그 안일함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할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아이를 안심시키며 다시 침대에 눕히고 한참 동안을 토닥여줘야 했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나마 다시 눈을 붙였다.




국가적으로 크고 작은 일들을 (간접적으로) 겪으며, 나는 안전불감증을 가장 경계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제일이다. 강박이 된 나머지, 너무 그래서도 안되는데, 아이에게도 항상 조심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오늘 화재경보기로 아찔했던 상황을 떠올리면서 다시 대응 매뉴얼을 머릿속에 상기해 본다. 일단 밖으로 대피해야 하는지, 아닌지가 가장 관건일 듯하다. 연기가 복도나 통로, 계단에 가득 차면 대피하는 과정에서 유해 가스를 흡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아파트에서 불이 났을 때, 밖으로 대피하지 않고 집 안 화장실에서 구조되길 기다리며 목숨을 구한 사례를 본 적이 있다. 단, 화장실 문틈과 환기구 등을 모두 막고 물을 틀어놓아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대피가 용이한 1~2층에 사는 게 답인 것 같다. 남들은 로열층을 선호한다지만 나는 그다지 그런 곳에 살고 싶지 않은 이유다. 그냥 안전한 곳에서 마음 편히 지내고 싶다. 아무튼 오늘도 이렇게 나는 쫄보 인증을 했고, 안전 불감증에 또다시 놀란 날이기도 했다. 그저 무탈히,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개인과 정부, 사회 모두가 다각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더 이상의 참사는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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