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캐나다라면 더더욱
이란에서 온 파리사, 멕시코에서 온 곤잘로
이 둘과 함께 본격적인 사진관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곤잘로는 스튜디오 매니저로 인수인계를 도와주었다. 파리사와 나는 그의 트레이닝을 바쁘게 따라갔다. A부터 Z까지 모든 것이 영어였기에 쉽지 않았지만 재밌고 설렜다. 비로소 캐나다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며 앞으로의 날들을 더욱 기대하게 됐다.
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세일즈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스튜디오는 촬영뿐만 아니라 홍보, 세일즈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해야 했다. 살면서 '영업'이라는 분야를 접해 본 적 없었기에 더욱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세일즈는 크게 전화와 대면으로 나눌 수 있다. 전화 영업은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무료 야외 스냅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무료라고 하는 데 마다하는 사람은 딱히 없었다.) 하지만 진짜 관건은 대면 영업에 있었다.
우리 사진관은 월마트 안에 있었는데, 손님이 없을 때마다 월마트에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스튜디오를 홍보해야 했다. 그때 했던 영어 대사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안녕, 나는 여기 앞에 있는 스튜디오 작가야. 여기서 일한 지 얼마 안 돼서 포트폴리오와 연습이 필요해. 물론 사진은 무료야!"
나를 수상스럽게 바라보는 눈동자들. 맘 같아선 '신천지 X'라 티셔츠에 적어두고 싶었다. 영어도 서툰데 모르는 사람들한테 다가가서 말을 걸고 영업을 하라니! 심지어는 매일 최소 3팀을 고객으로 모셔와야 했다. 이는 즉슨 최대 6-7팀에게는 말을 붙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첫날은 당장이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었지만, 트레이닝 기간 내내 연습하다 보니 1주일 후에는 동태눈을 장착한 채 말을 거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트레이닝 기간도 점차 끝나가던 어느 날, 늦잠을 자는 바람에 스튜디오에 허겁지겁 뛰어간 날이었다. 겨우 트레이닝을 받는데 갑자기 숨이 제대로 안 쉬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머리가 하얘질 때쯤 파리사가 날 발견했다. 그녀는 하얗게 질린 나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물을 구하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처음으로 이곳에서 공포를 느꼈다. "나 여기서 쓰러지면, 누가 날 구하러 와 주지?" 생각해 보니 아예 없었다. 그때는 친구도 없고 홈스테이 가족만 있을 때였는데, 그마저도 2주가 지나지 않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보기에 어려웠다. 정신이 번뜩 들었다. 결국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해야만 한다. 그렇게 가까스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파리사가 물을 건네주었다. 한 모금을 마시니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그날부로 사진관과 가까운 역 근처로 집을 옮기기로 했다. 지금 살고 있는 홈스테이 집은 다 좋지만 접근성이 너무 떨어져 불편한 점이 많았다. 주말 동안 Craglist라는 사이트를 이용해 집을 구했다. 이는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사이트다. 아주 마음에 쏙 드는 집이 하나 있어 바로 계약하기로 마음먹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역 근처가 제일 치안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또 하나 발생해 버리고 만다. 분명 주 4일 출근으로 알고 갔는데, 겨우 이틀만 출근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높은 월세를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기에 다시 한번 일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제대로 열이 받았다. 그제야 흐린 눈 하고 지나쳤던 회사 평점이 뇌리를 스쳤다. 모든 평점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이미 이사도 결정한 상황에서 이런 일이 펼쳐지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다시 인디드에 레쥬메를 급히 넣어 봐도 잡을 구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직접 레쥬메를 돌려 보기도 했지만 서비스 경험이 많지 않은 내게 관심을 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가만히 앉아있는데 눈물이 주룩, 부모님과 전화하면서 또 주룩, 남자친구랑 얘기하면서는 주루륵. 잘하고 싶은데 왜 마음처럼 쉽지 않은 건지. 처음 캐나다로 올 때 품었던 기대와 패기는 어디 가고 우울만 남았다. 그렇게 짧은 며칠 동안 무기력하게 누워 있으니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뭐라도 해야겠다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을 때쯤 저 구석에 묵혀둔 한국어 교원 자격증이 떠올랐다.
저걸로 한번 돈을 벌어 볼까?
또 예상치 못하게 내 인생에 새로운 페이지가 쓰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