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으니까
마침내 첫 출근을 했다.
캐나다에 미처 적응도 못한 채 일부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싶었지만 되려 행운으로 여기기로 했다.
내가 다니게 된 회사는 부동산 에이전시로 주요 고객층은 부동산 임대인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맡게 된 업무는 포토 에디팅이었다. 클라이언트의 집을 최대한 실물에 가깝도록 깔끔히 보정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었다. 가끔 자연광이나 조명에 의해서 사진에 노란끼가 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 자체는 굉장히 흥미로웠으나 트레이닝 기간은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소통하는 동료라고는 단 한 명뿐이라 하루에 열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살다가는 한국이랑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한국보다 더 힘든 삶이 될 것 같았다.
캐나다에 오면서 한국과는 180도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굳이 떠나온 만큼 변화하고 싶은 의지가 확고했다. 친구에게 전화해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며 서럽게 울었다. 위층에서 들려오는 화목한 웃음소리가 내 처지와 대비돼 더 울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울 일인가 싶다가도 먼 타국에 홀로 남겨졌으니 예민했을 법도 하다.
사실 캐나다에는 워낙 이민자들이 많기에 직업을 구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래서 당장 회사를 관두자니 고민이 더 많았다. 무엇보다 포토 에디터로 계속 일할 경우 추후 영주권 지원까지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고민, 또 고민.
수천 번의 망설임을 거듭한 끝에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나름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하고 무모한 결심을 했다. 한국이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일상은 매일 취업 사이트를 들여다보는 것이 됐다.
맥도널드에서 꾸역꾸역 햄버거를 먹고 있었을 때였나, 마침내 한 스튜디오에서 면접 제안이 왔다. 메시지를 보자마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채용 담당자는 내일 오전에 전화가 가능한지 물었다. 그렇게 다음 날까지 그녀의 전화를 기다리며 하나님만 몇 번 찾았는지 모른다. 그동안 이 회사에 대한 정보들도 찾아보고 영어 인사도 연습했다. 불행히도 직원 만족도는 거의 최저에 가까웠으나 장기적으로 일할 생각이 없었기에 흐린 눈을 했다. (그게 레드 플래그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전화 인터뷰 생각에 잠까지 설쳤던 난, 전화 인터뷰를 하는 꿈까지 꿔버렸다.
그리고 그 꿈을 방해한 건 다름 아닌 통화 진동 소리였다.
진동이 지잉- 지잉- 두 번쯤 울렸을 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서 온 전화라는 걸. 헐레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고 15분간 짧은 대화를 나눴다. 꿈속에서 열심히 연습한 덕분이었을까? 전화 인터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무사히 줌 인터뷰 일정까지 따냈다. 20개가 넘는 예상 질문들을 뽑아 계속 연습했다. 영어 면접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
바로 다음 날 진행된 면접. 다행히도 내가 준비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질문들이 나왔다. 서투르지만 내 생각과 의견을 차분히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당시 녹화본은 아직도 휴대폰이 남아있다. 어떻게 그리도 무모할 수 있었던지. 과거의 나 자신이 존경스럽다.
3시간이 지났을까, 채용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헤일리 우리는 너랑 같이 일하고 싶어"
면접 결과는 합격이었다. 캐나다 사진관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년 전, 처음 사진을 배울 때만 하더라도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 상상조차 못 했다. 아마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은 실타래처럼 서로 엮여 있다는 것을 한번 더 깨달았다.
짧았던 주말이 지나가고 새로운 날이 또 시작됐다. 낯선 출근길과 낯선 얼굴들, 낯선 언어까지. 무엇 하나 익숙한 것이 없는 사진관에서의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동료들과 간단히 자기소개를 나눴다.
"Hello, I'm Hailey. I'm from Korea."
이제 진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