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톤병 말기의 회고록
지독히도 완치가 어려운 병이 하나 있다.
바로 쿨톤병.
내게는 ‘퍼스널 컬러’에 심히 집착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 퍼스널 컬러는 쿨톤이었는데, 이에 맞춰 화장품과 옷을 따라 샀다. 내 옷장은 점차 보라색과 하늘색으로 채워져 갔다.
사실 나는 빨간색도 주황색도 모두 입고 싶었다.
하지만 내 퍼스널 컬러와는 정반대, 워스트 컬러라며 애써 외면했다.
내 쿨톤병은 나날이 심해져 갔다. 머리도 퍼스널 컬러 헤어 전문점에서 했다. 그날은 아예 검정색으로 머리를 덮기 위해 미용실에 갔다. 선생님은 단호하게 완전 검정색은 내 퍼스널 컬러에 맞지 않을 거라 했다. 뒤이어 초코 브라운과 같은 흑갈색을 추천해 주셨다. 흑갈색으로 염색하면, 또 이 보기 싫은 노란기가 올라올까 고민이 됐다.
톤그로가 두려웠던 난 결국 흑갈색으로 머리를 덮었다. 겨우 일주일이 지났을까, 다시 보기 싫은 노란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노란기를 박멸해 버리겠다는마음가짐으로 다른 미용실에서 검정색으로 머리를 덮었다. 생각보다, 아니 그 이상으로 괜찮았다. 주변에서는 검정 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칭찬해 줬다.
이 와중에도 나는 속으로
‘여름 쿨톤, 겨울 쿨톤 둘 다 나오니까 검정색 머리가 잘 받나 보다.’
라는… 쿨톤병 말기스러운 생각을 했다.
이런 쿨톤병이 조금씩 치유된 건 남자친구인 성현이덕분이었다. 성현과 옷을 고르러 갈 때면, 항상 그는갈색 옷을 추천해 줬다.
“나는 쿨톤이라서 갈색은 안 어울린다니까”
“아냐, 내가 봤을 땐 갈색이 잘 어울려. 한 번 입어나 봐”
그의 성화에 못 이겨 갈색 옷을 집어 탈의실로 향했다. 막상 입어보니 나쁘지 않았다. 성현이도 잘 어울린다고 해 줬다. 귀가 얇은 난 그날 처음으로 갈색 옷을 샀다. 그거 하나 샀을 뿐인데 이유 모를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때부터 내 옷장에는 갈색, 노란색 등 다른 색깔들이 하나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여름쿨톤의 추구미는 청순룩이라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게 꼭 내 몸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아메카지룩이 더 좋았다. 그동안 애써 부정해 왔지만, 나는 사실 베이지색과 초록색, 주황색, 밤색이 너무 좋다.
연예인들만 봐도 그런 것 같다. 최근에 연예인들의 퍼스널 컬러를 비교하는 콘텐츠가 많아졌는데, 이를 보면서도 긴가민가 할 때가 많다. 쿨이든 웜이든 둘 다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얼굴 때문인가 싶었는데, 그 사람의 태도가 관건이었던 것 같다. 당당한 태도 덕분에 계속 눈길이 갔다.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으면 꼭 말려있던 어깨가 올곧게 펴지는 것 같다.
왜? 좋아하니까. 당당하니까.
좋아하는 옷을 입는만큼 신나는 일도 없으니까.
날이 갈수록 ‘퍼스널 컬러’, ‘체형 분석’ 등 개인에게 맞춤화된 스타일링 서비스가 많아지고 있다. 이는 분명 자기관리에 큰 도움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도하게 집착할수록 오히려 본인을 잃어간다. 때때로 엄청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색깔은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래서 색깔에 따라 이미지가 확 달라지기도 한다. 색깔에 본인을 맞추기 보다, 본인에게 색깔을 맞추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정리하자면,
그냥 좋아하는 거 입자.
이렇게 말하는 나도
아직까지 옷을 살 때마다 색상만 수십번을 고민한다. 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장바구니에 보라색과 파란색보다 갈색과 초록색이 많아지고 있다.그리고 그게 조금 더 재밌다. 아무래도 선택지가 2-3개인 것보단, 무한대인 게 힘들어도 흥미롭다.
틀을 깨는 순간 우리의 색은 더 풍요로워진다.
앞으로 퍼스널 컬러는 내가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것을 입고 좋아하는 것을 따르자.
이상 쿨톤병 말기 환자(였던) 사람의
회고록 마침.
p.s.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제 옷장을 소개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