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돌아온 지 어느덧 3개월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의 난 외국병 말기다.
사실 외국병이라는 건 대개 애매하게 살다 들어온 이에게 발병한다. 고작 5개월을 살아 놓고 고향 마냥 밴쿠버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다.
가끔 캐나다에 있는 친구들의 SNS를 통해, 그곳을 보곤 한다. 미칠 듯이 뜨거웠던 여름을 지나 점차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는 가을의 풍경. 나도 단풍국의 진면모를 보고 싶었는데, 아쉬움에 괜히 배가 아파온다. 같이 놀았던 친구들이 함께 모여 사진을 올릴 때면 더 배가 아프다. 이 배탈의 원인은 아무래도 부러움인가 보다.
부러움은 쉴 틈 없이 불어나 또 다른 열등감이 되었다.
“한국은 재미없어. 나 캐나다에 다시 가고 싶어”
“너는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해? 좋은 면도 보려고 노력해 봐”
계속된 투정에 참다못한 아빠가 한 마디를 던졌다.
그때는 오히려 날 이해하지 못하는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그 일로 토라져 하루종일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메타의 알고리즘뿐이었다.
인스타에 들어갈 때마다, 유학 박람회 광고가 떴다 오기 반, 설렘 반으로 주저 없이 신청칸을 눌렀다.
마침내 유학 박람회 당일이 왔다. 성현과 함께 코엑스에 도착했다. 유학이라는 거대한 꿈을 안고서 말이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건 이상 아닌 현실이었다. 어마어마한 학비에 시작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결국 두 곳만 둘러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내 나이 스물다섯. 부모님한테 손 벌리기 아주 애매한 나이. 이미 캐나다에서 금전적인 지원을 여럿 받았던 터라 또 손을 벌리기에 민망했다. 그렇게 아주 현실적인 이유로 ‘유학’이라는 단꿈 앞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번호표를 뽑기도 전에 이미 뒤로 밀린 느낌이었다.
내가 직시한 현실은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을 만큼 매우 냉정했다. 흐린 눈으로 보고 싶었던 현실은 지나치게도 선명했다. 외국병이 자연 치유됐다.
그때부터 자기 합리화를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 밴쿠버에는 엽떡이 없는데, 한국에는 있음.
- 집값도 한국이 더 쌈.
- 물가도 한국이 더 쌈.
(인간적으로 외식할 때 너무 비쌈)
- 내가 원하는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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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적다 보면 위안을 받다가도 다음날 지옥철을 경험할 때면 외국병이 다시 도질 것만 같다. 그럴 때면 혼자서 땡처리닷컴에 들어가 비행기표를 찾아보며 위안을 얻곤 한다. ‘그래 언제든 떠나고 싶을 땐 떠나는 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그러자 유튜브에 뜨는 ‘해외여행 떠나는 MZ세대, 과소비 부추긴다’라는 타이틀의 뉴스들. 내 통장 잔고를 보며 또다시 기분은 우울해진다.
이제 돈도 모아야 하고, 집도 사야 하고, 언젠가 결혼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이러고 있는 게 맞냐며 없는 잠도 깨는 기분이 든다.
“성은아, 넌 외국에 다시 나갈 거야?”
“응. 언젠간 다시 나가고 싶어.”
실은 잘 모르겠다.
현실과 이상 속 좀처럼 맥을 못 추는 외국병 말기.
영원히 나가 살기는 두렵지만, 한국보단 왠지 외국이 좋을 것 같으면서도 —— 확신은 없는. (방금 문장 마치 이상의 날개 같다.)
완치 없고 답도 없는 외국병 말기.
외국병을 치료해 보려 한국에서 작은 이벤트들을 심어 놓는다. 그리고 인스타에 업로드한다.
나 한국에서도 엄청 잘 살고 재밌어.
남에게 보여주기
나에게 보여주기, 한국에서도 그럭저럭 잘 살고 재미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그러다 보면 언젠간 이 외국병도 나아지겠지,
라는 약간의 기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