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일때, 우린 모두 조금씩 미친다.
'신의 직장'이라는 말이 있다. 연봉도 세고, 업무강도도 높지 않으며, 조직문화도 그럭저럭 괜찮은 곳을 지칭한다. 취업 준비생들은 '그 회사는 그냥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어도 돈을 준다더라', '그 회사는 나인 투 식스만 하면 칼퇴할 수 있다더라'는 말을 심심찮게 해 가면서 신의 직장으로 입사하기를 꿈꾼다.
한국 청년들은 취업 준비를 대학 입시 준비하듯이 한다. 이 직장에 간 사람이 저 직장에 간 사람보다 더 성공한 것으로 여겨진다. 대학 입시 시절 학교 서열을 노래로 만들어 불렀듯, 회사도 일직선으로 줄세워 줄임말을 만들어낸다. '삼 현 슼 엘 롯 금 동'이라는 말이 있다. 학벌 높은 청년들이 갈 수 있는 '마지노선'(마지노선이라는 말도 웃기지만) 대기업의 줄임말으로, 대학을 줄세웠던 그시절 그 마인드가 어디 가지 않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이 서열화되어있는 것도 웃기지만, 직장이 서열화되어있는 분위기는 더욱 웃기는 짬뽕이다. 회사의 가치가 곧 직원의 가치는 아닌데, 많은 사람이 그 둘을 혼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표를 만들고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그 지표에 맞춰서 줄세우는데 익숙한 사회다.
줄세우기 문화는 개인이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끔 눈을 가린다. 대학 입시를 앞두 청소년들은 간판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고려하지 않은 '사회가 생각하기에 더 좋은' 선택을 한다. 취업준비생들 역시 자신이 몸담을 업계나 직군을 고려하기보다는 회사의 간판에 더 목을 메게 된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에서 중요한 선택을 앞둔 사람들은 조금씩 미쳐있다.
신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천사처럼 행복할까?
나에게도 그런 미친 시절이 있었다. 한순간에 취업 준비생이라는 신분이 되고, 내가 이제까지 해왔던 모든 경험이 다 취업 준비라는 이름 하에 평가되었다. 연극 동아리를 했던 일은 '팀워크를 쌓아나갔던 경험'이 되었다. 4학년 2학기 학회장으로 활동했던 나날들은 '리더십 배양의 과정'이었다. 내 인생을 조각조각 잘라내서 회사가 보기에 좋으신 렌즈를 갖다대는 일은 꽤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힘들었던 것은 취업 준비생이라는 타이틀이었다. 이제까지 어디든 한 집단, 한 조직의 일원이었던 나에게 소속 없음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불안이었다. 나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이제 대학을 졸업했으니 나의 관심사를 충분히 알아보고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탐색해봐야지, 따위 없었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그 순간 나는 면세점, 맥주, 보험회사, 석유회사 어디에든 꼭 맞는 사람으로 빙의했다. 마치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 화장품과 맥주와 보험과 석유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지금껏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회사라도 서류 결과가 발표나는 날이면 간절히 그 회사의 입사를 원하게 되었다. 이 상태가 미친 상태가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당시 나와 백수생활을 함께했던 친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절실히 취업을 원했고, 6개월 후 각자 자신에게 꼭 맞는 직장으로 모두 취업했다. 12월의 어느 날 서로의 취업을 축하한다며 시청 앞 스타벅스에서 껴안고 기뻐하던 그 날을 잊지 못한다. 나는 현 직장을 절실히 원했고, 그래서 다니게 되었다. 월급은 섭섭치 않고, 업무량은 많으나 할만 하고, 조직문화도 답답한 점이 있지만 괜찮은 편이다. 내 지인들도 '과연 내가 갈 수 있을까' 하며 쫄아있었던 직장에 모두 취업해 괜찮은 삶을 보장받고 있다. 신의 직장까지는 아니더라도, 괜찮은 직장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나와 내 친구들은 이곳을 하루라도 빨리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참으며 사는 중이다. 나는 말할 것 없고, 밖에서 봤을 때 나보다 더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친구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겪는 삶의 고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원래 직장이란 다 그렇게 거지같은 것 아니겠냐고, 그러나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내가 지금 고통받는 것은 내가 취업을 준비할 당시 미쳐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소속감을 너무 가지고 싶었던 나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꾸며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해 봤어야 했다. 내가 사랑하는 것, 내가 지향하는 것,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이 무엇인지를 면밀히 살펴봤어야 했다. 사실 취업을 준비할 때가 아니라 그냥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그랬어야 한다.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꼼꼼히 듣고 필기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터와 학교 뒷마당을 다니면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했어야 한다. 재능이 없어서 예쁘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무엇이든 그냥 하려고 해봤어야 한다. 나는 지금 본능이 억눌려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에너지를 쏟을 곳을 잃어버려서 답답해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신의 직장'은 환상이다. 우리는 동물이 아니기에 적당한 먹을거리와 적절한 노동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특히 당신이 젊다면,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일주일 내내 누르면서 사는 것은 고통의 연속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직장엘 다녀도 자신이 그 직장을 원하지 않는다면 다닐 수 없다. 객관적으로 좋은 직장은 없다. 나에게 맞는 일과 일자리가 있을 뿐이다.
결국 하나의 인간으로 살다 갈텐데
오늘 아침 조깅을 하면서 어린 시절 그 어떤 것에도 반항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그럼 내 인생은 조금 달라졌을까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수많은 취업 준비생과 입시 준비생들이 나와 똑같은 실수를 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환상에 빠져 있을지 모른다. 세상에는 어떤 '객관적인 기준/서열'이 존재해서, 그 기준 안에 나를 끼워맞추는 일이 중요하다는 착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법칙과 시선과 계급이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는 결국 하나의 인간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세상 모든 것은 결국 내 눈과 내 마음으로 느낄 수 밖에 없다. 태어난 것은 내 인생이고, 앞으로 사라질 것도 내 삶이다. 그러니 삶에 후회나 미련이 없도록 만드는 일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그냥 우린 하나의 인간으로 살다가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