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이 들려주는 90년생 이야기 #4 -데스빠씨또

by 헤일리
'88만원 세대'를 쓴 경제학자 우석훈 교수는 현재 밀레니얼 세대를 두고 '선진국 국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선진국 청소년들이 자라나면서 얻는 혜택을 거의 다 받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밀레니얼 세대의 풍부한 해외경험이다. 90년대생들의 유년시절에는 조기 유학 열풍이 불어 굳이 부잣집 학생이 아니라도 해외 연수를 다녀오고는 했다. 대학 진학 이후에도 밀레니얼들은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데 주저함이 없다. 외국에서 생활하는 경험은 밀레니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여기 10년간 낯선 나라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한 밀레니얼이 있다. 스페인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그는 자신의 닉네임을 '데스빠씨또'라 소개했다.




네번째 인터뷰이: 데스빠씨또 군


- 싸움짱. 어떤 누가 뭐라도 말을 해도 "너 싸움 잘하니?"라는 말 한마디로 대화를 종료시킬 수 있다. 진짜로 싸움을 잘하는지, 아니면 입만 살아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취직한 후 부서별 도장깨기 술자리를 주선할 정도로 술자리와 술 모두를 사랑하는 애주가이기도 하다. 그의 회사 동기 S와(1편의 그 S가 맞다) H가 동석해주기로 하였다.

(가기 전에 소주도 한잔..)





헤일리 :인터뷰는 자기소개부터 시작하는거 알죠?

데스빠씨또:자기소개라고 하면 자기의 유별난 점을 이야기해주는게 좋나요?


헤일리 :그렇죠, 데스빠시또는 자기의 어떤 부분이 유별나다고 생각하는지, 이것저것 섞어서 얘기해주면 돼요.

데스빠씨또:안녕하세요, 저는 28살의 평범한 직장인 데스빠씨또라고 합니다. 특별한 점을 꼽자면 코스타리카라는 아무도 모르는 나라에서 11년간 산 경험이 있어요.


열심히 살긴 하지만, 그래도 무료한 건 어쩔 수가 없어요.
저만의 탈출구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데스빠씨또:코스타리카는 아버지 일 때문에 처음 가게 됐어요.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한국으로 들어오셨구요. 저는 그래도 고등학교까지는 여기에서 마치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코스타리카에 남았어요. 외삼촌도 거기 계셨어서 고등학교때는 외삼촌 집에서 살았구요.


헤일리 : 본인이 코스타리카에 남기를 희망한 거에요?

데스빠씨또: 그럼요. 학교 생활이 되게 재밌었거든요.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헤일리 : 요즘은 어떤 나날을 보내고 있나요?

데스빠씨또: 열심히 회사 생활하고 있죠. 그런데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열심히 살면서도 무료한 게 있어요. 그래서 나만의 삶을 병행하려고 하고 있어요. 최근엔 잘 안되고 있긴 해요. 요즘 제가 회사에서 2인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거든요. 이런 특수한 상황이 되기 전에는 여자친구를 만나거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하면서 제 삶을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헤일리 :의외네요. 주변에는 일 열심히 하는 열정맨 스타일으로 알려져 있던데요.

데스빠씨또: 글쎄요. 저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했어요. 제가 다니는 회사는 열정이 많고 패기로운 사원들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저는 그런 열정맨은 못되는 것 같아요.


헤일리 : 입사하기 전에는 본인이 어떤 타입이라고 생각했나요?

데스빠시또: 흠 ... 잘 모르겠어요. 얼떨결에 취직한 타입이거든요 ㅎㅎㅎ


헤일리: 바쁘지 않을 때는 일상을 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 편이에요?

데스빠씨또: 그냥 친구들 만나면서 술 마셨던 것 같아요. 요즘은 다른 유형의 탈출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저희 회사가 술을 많이 마시는 회사거든요? 회사에서도 술을 마시고,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까지 술로 풀면 안 좋은 것 같아요. 아직 다른 유형의 탈출구가 뭐가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찾고 있어요.


헤일리: 최근에 재밌게 본 영화나 드라마가 있나요?

데스빠씨또: 메멘토라는 영화가 있어요. 예전부터 좋아했던 영화인데, 저는 그 영화를 한 3개월에 한번씩은 보는 것 같아요. 뭐 어떤 룰이 있어서라기보다는 3개월에 한번씩 생각나더라구요. 전개 방식도 독특하고, 뭐랄까 개성이 넘치잖아요. 요즘 개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다른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점이 저에겐 너무 좋아요. 저는 저 스스로가 개성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어떻게 보면 아무 생각없이 산 면도 있어요. 그걸 자각하고 보니까 요즘따라 개성에 대한 강박이 생기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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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고향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외국어를 잘하는 걸까요?


헤일리: 회사 생활에서 벗어나 다른 질문 하나 할게요. '나에게 코스타리카란?' 어때요.

데스빠씨또: 너무 좋은 추억이죠. 저는 한국 학생들과 다르게 고등학교 시절에는 매일 놀았거든요. 맨날 농구하고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외국에서는 그런 학창시절이 가능했어요.


S: 그럼 코스타리카가 집이라고 할 수 있나요?

데스빠씨또: 음.. 사실 '집이 어디냐' 이 질문은 저한테 굉장히 심오한 질문이에요. 고1부터 부모님과 떨어져서 외삼촌과 코스타리카에서 살았고, 졸업 후에는 한국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서 학교 앞에서 혼자 살았어요. 거기에서 반수해서 한국외대에 입학했고, 또 혼자 살았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따뜻한 집'이나 '가족의 품' 이런게 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곳을 꼽으라면 대학 시절 살았던 학교 앞 이문동일 것 같기는 해요. 거기가 제일 그리워요. 제일 그리운 곳이 고향이지 않을까요?

헤일리: 저도 비슷해요.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한 곳이 학교 앞이라 모든 추억이 다 그곳에 있거든요.


헤일리: 데스빠씨또는 스페인어 능통자로도 유명하더라구요. 그건 다 코스타리카에서 배운 거죠? 스페인어로 수업을 했나요?

데스빠씨또: 국제학교에 다녔어서 수업은 거의 영어로 들었어요. 스페인어 과목을 제외하면. 그래서 영어가 더 자신있어요. 스페인어는.. 11년 살다온 사람 치고는 못하는 편이에요. (but 그는 스페인어 고급 자격증 보유자)


H: 에이 스페인어 잘해 (동료의 증언, 참고로 그도 스페인어를 잘한다)

데스빠씨또: 아 웬만한 사람보다야 당연히 잘하죠 하하하하 (멋쩍)


헤일리: 스페인어랑 한국어랑 어떻게 달라요?

데스빠씨또: 음 스페인어를 한국어랑 비교하기는 좀 그래요. 영어랑 좀 더 유사하구요. 저한테는 스페인어가 영어보다 더 어렵긴 했어요. 동사변화가 영어보다 더 다양하니까.


미끄: 흔히 외국어를 쓸 때는 다른 인격이 나온다고 하잖아요, 그건 맞는 것 같아요?

데스빠씨또: 네, 맞는 것 같아요. 스페인어를 쓸때는 좀 더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에요. 내가 하고 있는 말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를 좀 더 신경쓰긴 해요. 영어랑 한국어에서는 그런 걱정을 좀 덜하구요. 다른 면에서 말하자면, 영어를 쓸때는 좀 더 개방적인 성격이 나오는 것 같고, 한국어를 쓸때는 좀 더 공손한 것 같아요.



S: 데스빠씨또 한번 혼났었거든요. 회사에서 what's up? 이러고 통화한다고.

데스빠씨또: 맞아요ㅋㅋㅋㅋ 좀 말투가 그랬나봐요. 영어를 쓸때는 좀 더 개방적인 면이 나오다 보니까 비즈니스적인 대화가 잘 안되더라구요.


헤일리: 그럼 한국어로 할때 비즈니스적인 대화하는게 더 편해요?

데스빠씨또: 말하자면 그렇죠. 영어로 대화하는 사람이 주로 제 또래인 현지 사람이다보니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구요. 한국어를 쓸때는 대화하는 상대는 주로 저보다 손윗사람인 경우가 많으니까 더 공손한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프로페셔널한 면을 영어로 보여준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항상 영어를 쓸때는 또래랑만 썼거든요.


S: 오 전 반대인데. 전 영어를 쓸때 좀더 프로페셔널하다고 느껴요. 영어가 좀 더 수평적인 언어라서 내 의견을 좀더 깔끔하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게 가능한데, 한국어로 할때는 존댓말이라 특히 손윗사람에게 이야기할때 내가 작아지면서도 내가 하는 말을 다 못하는 느낌인 것 같아요.

H: 난 다 잘해. (술에 취한게 분명)


옥땅으로 따라와,
인종차별에 대응하는 방법


헤일리: 언어별로 그렇게 다른 성격이 나올 수 있다는게 신기하네요. 그런가하면 공적인 언어와 사적인 언어도 다르겠죠? 데스빠씨또가 또 싸움 잘하기로 유명하잖아요. 익명 질문 중에 '정말 싸움을 잘하나요?' 라는 질문이 많았어요.

데스빠씨또: 이건 군대에서 얻은 말버릇이에요. 제가 일병이었을 때 우리 부대의 실세가 그 말을 매번 썼었거든요. 뭐만 하면 장난식으로 '싸움 잘해?'라고 해서 그게 부대 유행어가 됐었죠. 그러다보니 저도 그 말에 익숙해져서 전역하고도 그 버릇이 안고쳐지는 거에요. 그래서 학교 복학한 후에도 '싸움 잘해?' 를 달고 살아서 학교에서도 유행시키고, 어쩌다보니 회사에서도 유행시키고 있네요.


헤일리:그러니까 실제로 싸움을 잘하냐구요.

데스빠씨또:아 저 싸워본 적 없어요.


미끄:코스타리카에서도?

H:왜 없겠니

데스빠씨또:다대다 싸움은 있었던 것 같아요 (웃음)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농구도 잘하고 해서 다른 학교로 시합도 갔었는데, 그럴 땐 제가 동양인이라 야유나 비하를 받았거든요. 그러면 뭐 .... 싸움나는거죠. 그땐 사춘기였으니까.


그는 이제 맥주 한잔을 즐기는 어른이 되었다

미끄:생각해보니까 코스타리카에 동양인 진짜 없었을 것 같아요. 적응하는데 힘들었겠다.

데스빠씨또:아뇨 딱히 그렇진 않았어요. 저는 워낙 어릴 때부터 외국에 살았거든요.

헤일리:그런 것 때문인가. '평소 감정 기복이 없는 편인 것 같다' 는 말이 있던데요.

데스빠씨또: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은 아닌데, 화 낼땐 화 내는 성격이에요. 매사에 침착하지는 않아요. 질문 던진 사람이 제가 화낼때 모습을 못봐서 그런가(웃음)


S:침착한 편은 맞는 것 같아요. 감정이 많이 드러나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아요.

데스빠씨또:저 재택근무 할때는 엄청 화내고 욕하고 그랬어요. 사무실이라서 아직까지는 눈치보여서 제 감정을 표출할 여유가 없는 것 같기도 하구요. 신입사원이 자기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게 좋은 그림은 아닌 것 같아요. 꼰대스러울 수도 있지만... 신입사원은 신입사원답게 행동하는 것도 어느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신입사원도 화날 때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팀장님, 그룹장님 있으신데 욕하거나 그럴 수는 없잖아요.


S:데스빠씨또는 외국에서 오래 살았는데, 흔히들 외국에서 살다온 사람들은 그런걸 모를 거라는 편견이 있잖아요. 데스빠씨또는 별로 그렇지 않아서 전 처음에 좀 놀랐어요.

데스빠씨또:대학 학생회에서 배운 것 같아요. 제가 입학할 당시 학생회가 좀 수직적인 분위기였거든요. 그런 데서 배우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군생활 하다보면 그런 수직적인 문화를 습득할 수밖에 없어요. (씁쓸)


태어난 김에 살더라도 죽을 때 후회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긴장했지만 잘 마친 오늘 인터뷰처럼


헤일리 : 제가 준비한 질문 목록인데요, 혹시 이중에 혹시 마음에 드는 거 있어요?

데스빠씨또: 저는 '데스빠씨또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주세요'랑, '나에게 자신감이란?' 이 질문이 좋네요. 어떻게 보면 두 질문이 중복되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휘둘리지 않고 제가 맞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고 싶어요. 그렇게 사는 태도가 제 자신감의 원천이 될 거라고 기대하구요.


헤일리: 그건 한문장이 아니잖아요.

데스빠씨또: 아! 그러면.. '휘둘리지 말자'로 하고 싶어요. 휘둘리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헤일리:데스빠씨또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데스빠씨또: 잘은 모르겠지만 죽기 5초 전에 후회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대단한 버킷리스트나 인생의 목표같은건 딱히 없어요. 롤모델도 딱히 없구요. 태어난 김에 사는 걸까요.





S:담백하네요.

데스빠씨또:그냥 후회하고 싶지는 않아요. 뭘 할지는 아직 고민하고 있다, 이렇게 써주세요.

헤일리:네 좋아요. 데스빠씨또 다운 대답이네요. 마지막으로 할 말 있어요?

데스빠씨또: 저 굉장히 긴장했거든요

S:ㅋㅋㅋㅋㅋㅋㅋ

데스빠씨또: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즐거웠어요. 좋은 프로젝트를 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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