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약 1년간 부산에서 재수를 한 경험이 있다. 대입에 실패하고 재수학원에 처음 들어갈 때까지 별다른 기억이 없다. 스스로가 너무 창피해서 네이트온에는 접속하지 않았고,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부산으로 내려간 뒤 첫 기억은 하얀색 강의실과 빼곡이 앉아있는 학생들이었다. 주변엔 전부 재수생 아니면 삼수생이었다. 간혹 장수생도 있었다. 외고나 자사고처럼 특목고를 졸업한 학생들도 많았다. 우리는 서로 ‘넌 왜 재수해?’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예의있는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업은 오전 9시에 시작되어 오후 6시 정도에 끝났다.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은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자율학습을 하고 집에 돌아갔고, 다시 다음날 다시 8시까지 재수학원에 도착했다. 학원과 집 밖에 오가지 않는 생활. 서로가 서로에게 고등학교 시절이 어땠는지 묻지 않는 매일매일. 그곳에서는 재수생인 게 정상이었다. 우리 모두 같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항상 공부를 잘해서 질투나던 대상에 대해 마음껏 얘기할 수 있었고, 공부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는데도 하지 않았던 미련한 시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공부를 잘 못한다는 사실을 항상 부끄러워하며 좀처럼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나 재수학원에서는 얼마나 공부를 못했는지를 두고 계속 나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었다. 얼마나 한심했는지, 얼마나 주변의 말을 듣지 않았는지, 얼마나 규율을 자주 어겼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이전의 나 자신을 용서했다. 그곳 친구들 모두 나와 비슷한 기억이 있었다. 모범생이 되어 사랑받고 싶었던 욕망. 너무 높은 기준에 나를 끼워맞춰야 한다고 자만하다 나무에서 떨어졌던 기억. 내가 항상 성공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작아졌던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땐 그럴 수 밖에 없었다며 나를 용서한 지금까지, 우린 어렴풋이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나는 재수학원에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대학에서 스무살을 맞은 친구들이 경험할 수 없는 해방감이었다. 정확하게는 '실패하여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고 있음'에서 오는 해방감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다. 한국 고등학생들은 3년간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세상이 멸망하는 줄 알고 산다. 그러나 재수학원에서는 어차피 다같이 멸망한 신세라 오히려 멸망할 일이 없다. 멸망은 의외로 달콤했다. 멸망하고 나니 더 이상 멸망이 두렵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아무 대학에도 붙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달고 살았다. 그러나 그 걱정은 실현되지 않았을 때 나를 가장 괴롭혔을 뿐, 실제로 그 일이 닥쳤을 때에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막상 걱정하던 일이 현실로 닥치자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학생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비정상이 아니었고, 실패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불안은 힘이 없었고, 나에게 힘을 주는 건 오로지 내가 새로이 얻는 지식 뿐이었다. 나는 주 6일 하루 10시간동안 입시를 위해 각종 문제집을 뒤적거렸다. 문제집 하나를 열어 샤프로 줄을 죽죽 긋고 맞다고 생각하는 정답에 체크 표시를 한 뒤 다음 문제로 넘어가는 행위를 반복했다. 불안이 문득 올라올 때면 익숙한 반복 행위를 하면서 머릿 속의 불안을 잠재웠다. 대학에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올라올 땐 현재 공부하고 있는 과목을 생각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입시 교육을 받는 건 처음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모의고사를 보기는 했지만 공부를 하고 본 적은 없었다. 기반 없이 시작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내 성적은 빠르게 올랐다. 내 강점은 텍스트를 굉장히 빨리 읽고 주제를 자연스럽게 파악한다는 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사고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나는 3년 내내 영어와 국어 텍스트를 끊임없이 읽었다. 국어 시간에만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사회 시간에도, 과학 시간에도, IR(Individual Research) 시간에도 원서나 두꺼운 한국어 책 원문을 읽었다. 수능 지문에 나오는 조각난 텍스트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가 의도한 바를 그대로 따라갔다. 그렇게 텍스트를 읽는 연습을 해왔으니 다른 학생들보다 읽는 속도가 빠르고 주제를 파악하는 능력이 발전할 여지가 많았다. 국어 비문학 텍스트를 읽을 때에는 고등학교 때 배운 여러 분야의 수업이 도움이 됐다. 민사고에서는 일반적인 사회나 과학 수업 뿐 아니라 세분화된 심리학이나 정치학 수업도 들을 수 있었다. 문과 학생도 이과 수업인 화학이나 물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성적이 처참할 것을 예상하고 들어야 했다. 나는 문과를 선택했음에도 2학년에 오기를 부려 화학 수업을 수강했었다. 그런 수업에서 배운 내용이 수능 언어영역 비문학 지문에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익숙한 내용이 나오니 문제 풀이가 더 쉬웠다.
재수학원에 있었던 아이들은 부산에서 공부를 꽤나 한다는 친구들이었다. 부산외고 출신이 많았고, 상산고, 하나고, 국제고에서 온 친구들도 있었다. 그 중 몇몇은 자기들이 학교 생활 내내 수능 공부 범위 외의 공부는 하지 못했고, 텍스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연습 같은 건 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교과과정인 국, 영, 수, 사, 과 이외의 과목에 흥미가 있어도 별도의 시간을 내서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2학년부터 수능 공부에 돌입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정말 머리가 좋았다. 그러나 수능 공부를 계속 해왔기 때문에 익숙함에 속아 얼토당토않는 실수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들은 내가 입시와 상관없는 (학생부 종합전형과는 상관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수학능력시험과는 상관없는) 공부를 3년 내내 해왔다는 사실을 굉장히 부러워했다. 순간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고등학교 시절이 누군가에겐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장수생 오빠들은 성적이 오르는 경우가 드물었다. 우리 반에는 4수, 5수, 6수를 하는 학생이 있었다. 대부분 남자였고, 그들의 목표는 대부분 SKY에 가는 거였다. 왜 가야 하느냐고 물으면 SKY 출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과 달지 않고 있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맥킨지 같은 컨설팅 회사에 가고 싶으면 서울대 타이틀이 있어야 된다고 했다. 서울대 타이틀이 없으면 서류에서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맥킨지에 가고 싶은게 맞냐고 물으니 딱히 가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지금은 가고 싶지 않지만, 훗날 가고 싶을 수도 있으니 일단 SKY라는 이름값을 따 놓는게 중요하다는 거였다. 그 논리는 굉장히 설득력이 있을 뿐 아니라 전염성이 강하기도 했다.
재수학원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러 온 사람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실패를 최소화하여 완벽을 추구한 후 들어갈 수 있는 대학 중 가장 높은 곳에 가려고 했다. 그러면 자신의 인생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대학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인생과 없는 인생 사이에는 크나큰 간극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타이틀을 얻는 쪽으로 인생을 설계해야만 했다. 그렇게 대다수의 재수생들은 공부가 아닌 수련을 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몇 번이고 점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하여 틀린 문제가 있으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인고의 시기를 거치면 성공한 인생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어느날 4수생 오빠 한명이 자기는 여기에서는 도무지 공부를 할 수 없다며, 복도에서 공부하겠다며 책을 들고 나선 기억이 있다. 나는 화장실을 가는 척 그를 관찰하러 일부러 복도를 지나갔다. 4수생의 심정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잘생긴 그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그와 한마디 할 수 있을까 지나다니다 보니 그가 무얼 하고 있는지가 보였다. 그는 입시 공부를 하고 있지 않았다. 대신 소설을 읽고 있었다. 그는 소설을 읽다 문득 창문을 열었다. 여름 날의 따뜻한 바람이 복도에 훅 하고 들어왔다. 평일 오후 자습시간은 무서우리만치 조용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동그란 까만 눈이 문득 슬퍼 보였다. 멀리 뒤에서 몰래 지켜보던 나는 그가 꼭 맥킨지에 입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