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팟캐스트를 시작하게 되었나?

세계를 확장하고, 서로 연결되기 위해서

by 헤일리
KakaoTalk_Photo_2026-01-24-17-37-50.png

팟캐스트를 시작하고, 막 4화까지 녹음을 마쳤다. 이쯤에서 내가 왜 팟캐스트를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기록해보려고 한다.


나는 학생 시절부터 라디오 리스너였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김태욱의 기분 좋은 밤> 이나 ebs의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었다. 저녁에 잠들기 전 샤워하고 나와서 라디오를 들으며 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내 생각을 적는 게 평안한 밤의 조건이었다. 기숙사 고등학교에 다녔던 것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3년 내내 두 명의 친구들과 방을 쓰다 보니 프라이버시가 절실했다. 저녁이 되면 항상 이어폰을 꽂고 뭐라도 들을 걸 찾아야 했다. 음악을 들을 수도 있었지만 난 줄곧 누군가가 나에게 말해줬으면 하고 바랬던 것 같다. 음악을 듣고 그 뒤에 dj가 나에게 안부인사를 건네는 게 좋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대학에도 붙지 못한 채 재수를 시작했을 때 본격적으로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에게 필요한 건 루틴이었다. 아침에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 학원으로 가고, 저녁에 아무 생각 없이 들어와 자는 것. 그런 아무 생각 없는 시간에 어떤 작지만 규칙적인 변화를 준 것이 팟캐스트였다. 그때 난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많았고, 주로 당시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어떤 정부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팟캐스트 위주로 들으며 내 안의 반동분자를 달랬다.


대학에 입학하고 내가 접한 팟캐스트는 <서늘한 마음썰>이었다. 취업 준비를 할 때나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할 때 비슷한 키워드를 애플 팟캐스트 창에 검색하고는 했다. 우울해요, 외로워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렇게 검색했을 때 심리 관련 팟캐스트가 눈에 띄었다. 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낙산공원이나 이화동거리를 많이 산책했다. 집안일이나 이삿짐 정리 등 육체 노동을 해야 할때는 <송은이와 김숙의 비밀 보장>이나 <씨네 마운틴>을 들었다. 무료한 노동을 할때 잠깐씩 들으며 웃을 일이 필요했다. 특히 <씨네 마운틴>의 경우 영화의 비하인드나 영화인들의 의견을 바로 들을 수 있어 애청했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난 후에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 황선우, 김하나 작가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와 김혜리 기자의 <필름 클럽>을 들었다. 생각이 깊어지고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갸아 할지를 정해야 하는 시기였다. 그때 나보다 성숙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게 마음의 안정을 주었다. 나는 결혼을 하게 될까, 아니면 결혼을 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와 살림을 꾸릴 수도 있을까? 여러가지 예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고, 비평가들은 예술 작품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까? 이제 팟캐스트는 단순히 외로워서, 아니면 무료해서 듣는 그 무언가가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을 얻는 데 참고할 만한 콘텐츠가 되었다. 팟캐스트에서 책을 추천하면 독서모임의 도서로 선정하기도 했고, 영화를 추천하면 그 영화를 따라 보기도 했다. <더 퍼스트 슬램 덩크>를 보고 나서는 팟캐스트 검색창에 "슬램 덩크"를 검색했다.


그렇게 오랜 기간 팟캐스트를 들으며 나만의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싶은 욕심은 계속 커졌다. 내가 받은 만큼, 나도 누군가에게 말을 걸 수 있을까?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대학원에 간 이야기, 부산에서 상경해서 서울로 올라와 나의 삶을 꾸려간 이야기, 민사고에서 꼴지를 하다시피 하고 재수시절을 거쳐 대학을 간 이야기..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에겐 별게 아닐지 모르나, 인생의 큰 산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내가 누군가의 말으로 위로를 얻었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서로 연결되고 서로의 말을 들어준다면, 이 자체로 세상에서 살아갈 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대학생활 중 만난 친구들과 모인 단톡방에서였다. 친구 중 하나가 '우리 이렇게 맨날 떠드는거 팟캐스트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던졌다. 이에 나는 갑자기 감격하여 고백했다. '사실 나.. 팟캐스트 하는게 평생 꿈이었어.'


그래? 별로 어려운 꿈 아니잖아.


생각해보니 그랬다. 별로 어려운 꿈도 아니었어. 그냥 우리끼리 녹음하고 올려버리면 내 꿈은 달성되는 거였다! 이 간단한 걸 왜 할 생각을 못했을까? 그렇게 우리는 바로 녹음실을 예약하고, 1화 주제를 휘리릭 정했다. 1화 주제는 "삼십대가 되면서 느낀 것들" 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2화 지피티로 사주 보다가 욕 먹은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