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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라는 말에 갇힌 사랑의 기쁨

로맨스만이 사랑인가요

by 헤일리

젊은 미혼 여성으로 살다보니 연애와 관련한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다.


연애할 생각은 없어? 마지막 연애는 언제야?
이상형이 어떻게 돼? 어떤 조건의 남자를 원해?


그런 질문의 답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성실하게 대답을 이어나가면서 나의 대답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자기검열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연애의 환상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알아가면서, 또 여러 사람을 경험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면서, 그런 질문에 명확히 대답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짐을 느끼고 있다. 일반적인 연애 관련 스몰토크에서 나오는 레퍼토리가 정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외모는 어떤 스타일, 성격은 어땠으면 좋겠고, 연애를 안 한지는 좀 됐지만 나이가 들면서 만날 사람이 적어지는 걸 느끼고..."

우리가 연애와 관련해 하는 이야기라는게 사실 고만고만한 경우가 많다. 대화는 특정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연애 관련 이야기의 끝엔 그저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관음하는 데서 오는 말초적인 기쁨만 남을 뿐이라는 생각도 한다.


그런 고만고만함, 별 것 없음은 연애라는 단어 자체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연애'와 연관짓는 이미지,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라는 단어, 데이트 코스와 커플링, ㅇㅇ데이로 상업화되어 버린 연인끼리의 시간 등이 생각의 범위를 좁게 만들고 있다. 나 역시 한때는 연애라는 환상의 이미지를 동경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자동으로 행복해질거라는 메시지가 간편하고 달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실제 연애에는 역할놀이, 정해진 코스의 답습, 상대방에 대한 구속이라는 부작용도 있었다. 그래도 내가 여자친구인데 이런걸 바랄 수 있는거 아니야. 그래도 내가 남자친군데 이정도는 해줘야 하는거 아니야. 그래도 너만은 내가 먼저여야 하는거 아니야? 너는 내가 이렇게 슬퍼할 동안 어디 있었던거야? 돌이켜보면 나는 서로를 향한 소유욕이 싫었던 것 같다. 꼭 상대방이나 내가 나빠서 그랬다기보다, 연애라는 관계가 만들어낸 역할놀이에 서로 충실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요즘 연애가 아니라 어떤 신뢰할 만한 사람과의 관계가 먼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냥 아침에 눈 떠서 눈마주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뿐인데. 힘이 들때 서로 꽉 껴안고 품속으로 한없이 파고들어갈만한 사람이 필요한 거라 생각하는데. 서로의 인생에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고, 각자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갈 에너지를 주는 사람. 그게 과연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낭만적 연애와 결혼에서 가능한 일일까? 내가 본 커플과 파트너들은 신뢰보다는 의심을, 응원보다는 독점을, 서로에 대한 따뜻한 포옹보다는 섹슈얼한 터치만을 원하는 것 같았다. 서로의 인생을 제한하지 않고 끝없이 신뢰해 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남자일까.


미디어와 사회는 '좋은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계속 주입한다. Someone should be out there. He should be the ONE. 그러나 동시에 그와는 모순된 메시지 역시 계속해서 노출된다. 바로 '로맨틱한 관계로 발전하기 전, 상대방의 특정 조건을 봐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이는 주로 여성에게는 재력, 남성에게는 외모가 된다. 매력적인 이성(돈이 많고 외모가 출중하며 성격이 좋은)은 하나의 희소 자원처럼 여겨지고, 로맨스를 향한 여정은 그를 쟁취하는 하나의 경쟁이 된다. 세상이 상품처럼 진열된 젊은 남녀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반박하기조차 힘들어진 지금, 나는 사랑에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고 느낀다.



반면, 동성간의 사랑은 상당히 평가절하되어 있는 면이 있다. 동성간의 사랑은 우선 '우정'이라는 다른 이름을 부여받으며, 일반적으로 로맨스 관계보다 덜 중요한 관계로 비춰진다. 그러나 연애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사랑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성적 흥분을 주지 않더라도 서로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양껏 안겨주는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나 역시 지금 친구들에게 조건없는 지지와 응원, 신뢰와 사랑을 얻고 있다.


가끔 친구들을 생각하며서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내 주위 사람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한없이 애틋해질때가 있다. 나는 이런 데서 사랑을 하면 안된다고 배웠는데, 혼란스럽다. 친구를 이렇게 사랑하기보단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고 동화 속 공주님이 말해준 것 같은데. 유리관 속에서 얌전히 기다리면 백마 탄 왕자님이 키스해줄테니, 그전까지는 그냥 얌전히 있으면 된다고 얘기해줬던 것 같은데. 자꾸만 내 곁을 지켜준 난장이같은 친구들이 애틋해서 그냥 관을 박차고 나와 숲 속으로 들어가버리고 싶어진다.


나는 친구들과 실없고 꿈에 가득찬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리 모두 성공해서 대궐 같은 집을 짓고 살자, 인생에서 한번은 모로코와 페루에 가보자, 우리가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 제네바에서 마주쳐보자. 부모와 직장 상사에게는 감히 꺼내지 못하는 마음속 가장 내밀한 꿈들이지만, 서로를 향한 조건없는 애정이 있기에 꺼낼 수 있는 말들일 것이다.


반면 연애와 결혼은 내게 현실적인 관문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연애, 혹은 결혼을 위해 내가 갖춰야 할 조건들을 자꾸만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몸매와 상대방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시간, 여성으로서의 역할놀이를 수행하기 위해 갖춰야 할 성격적인 덕목. 결혼의 경우 갖춰놔야 할 적금이나 부동산과 관련한 지식 등이 그 관문을 어려워 보이게 만든다.


철부지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러는 것일지 몰라도, 아직은 현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친구들과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욱 사랑에 가깝다고 느끼게 된다. 연애와 결혼이라는 그 시스템 아래 역할놀이에 지쳐서, 사랑하는 기쁨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여 그랬는지도 모른다. 사실 사적인 관계란 서로의 멍청함을 한없이 긍정해주고, 다시 공적인 관계로 돌아갈 때 사랑을 가득 안고 마주할 수 있도록 기운을 복돋아 주는 것이어야 하지 않는가.


왜 우린 개인의 가장 내밀한 관계에서까지 현실과 조건을 따지도록 내면화해 버린 것일까? 결혼을 해서 몇 평짜리 집을 사고, 이정도 회사에 다니니 나는 이정도 직업을 가진 배우자를 원하고, 강아지상과 고양이상, 55사이즈와 초콜릿 복근만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사람을 고기처럼 댕강댕강 잘라서 등급을 매기는 이 짓은 학교와 회사에서 충분히 해오지 않았나. 나의 작은 공간과 나의 조각난 여유로운 시간에, 소중한 사람들과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로 내 삶의 쓸모를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다. 품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사랑의 기쁨을 한없이 느낄 수 있도록. 서로에게 보내는 신뢰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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