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을 향한 한걸음
2021년 6월 14일,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국민청원이 10만 동의를 넘어섰다. 뒤이어 정의당의 장혜원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의 김한길 의원이 차례로 차별금지법과 평등법을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인간을 구성하는 23가지의 요건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아래 사진의 네가지 영역에서 금지하는 것이다.
사실 이 법이 제정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발의에서 시작되어 2011 민주노동당 발의, 2012년 통합진보당 발의를 거쳐 2013년에는 김한길 의원이 대표로 51인의 국회의원과 공동발의를 추진하였다. (공동발의 의원 명단에는 여당 주요 정치인인 박영선, 이낙연, 문재인 등 인물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차별 금지 항목에 포함된 성적 지향 및 성적 정체성과 관련하여 보수 기독교계가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명함에 따라 번번히 무산되었다.
유력 정치인들은 계속해서 차별 금지라는 대 원칙에는 공감하지만, 차별금지법의 제정과 관련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는 주장을 해왔다. 2021년 장혜원 의원 및 김한길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대해서도 이낙연, 이준석 당대표의 입에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차별금지법 관련 가장 문제되는 점은 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차별금지법에 따르면 고용, 재화/용역, 교육, 행정 서비스 등에서 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을 바탕으로 (합리적 이유없이) 불이익을 준다면, 해당 단체는 인권위의 시정 권고를 받을 수 있다.
기독교계 및 인터넷 커뮤니티는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하는 법', '동성애에 대한 정당한 비판도 금지시키는 법'이라 주장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후 교회 안에서 동성애 관련 이야기를 했을 때 처벌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나온 반대 의견이라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안타깝게도 차별금지법은 혐오표현규제와는 달라 어떤 기관의 표현 혹은 행동을 처벌할 수는 없다. 그러니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어도 기독교 연단에서 나타나는 동성애 관련 잘못된 정보 유포 혹은 근거없는 비난을 규제할 길은 없다.
* 이성애/동성애는 자연스러운 성적 지향에 기반한 행위이고, 소아성애/시체성애와 같은 법적으로 규제된 이상성애와는 다르다. 성적 지향은 개인이 선택할 수 없으며, 교정될 수 있는 것 역시 아니다.
여기서 기독교계가 계속해서 사용하는 '동성애 반대', '동성애 비판', 혹은 '동성애 조장' 등의 단어를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보수 기독교계에서 흔히 위의 단어를 사용하지만, 동성애는 사실 반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반대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사상/행동/현상에 국한된다. 예를 들어 나는 자본주의를 반대할 수는 있으나(사상), 돈을 반대할 수는 없다. 나는 세계화(현상)를 반대할 수는 있지만, 세계 그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다. 마치 우리가 돈, 세계, 사과, 아이스크림, 흑인, 백인, 여자를 반대할 수 없는 것처럼,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기독교는 차별금지법 통과에 반대하거나, 동성혼 법제화에 반대하거나, 혹은 퀴어 퍼레이드(행동)에 반대할 수는 있어도 '동성애'를 반대할 수는 없다.
동성애를 비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비판은 국어 사전에 따르면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이성애자들을 옳으니 그르니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당신이 동성애자에게 '너는 틀렸어'라고 말한다고 해서 동성애자들이 갑자기 '난 틀렸으니 이제부터 이성애자로 둔갑해야겠군'이라고 다짐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성소수자들에게 '너는 틀렸어'라고 말하는 것은 적대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행동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우리는 이런 행동을 비판이 아닌 혐오라 부른다.
동성애 조장 이라는 말도 어폐가 있다. 조장이란 잘못된 방향으로 키우는 것을 의미한다.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하려면 차별금지법이 통과된 후 한국에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생겨나야(!) 한다. 그러나 성적 지향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만일 차별금지법으로 인해 한국에 커밍아웃하는 성소수자가 많아진다면, 그것은 법안이 사람들을 성소수자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법안이 사람들로 하여금 커밍아웃해도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주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구구절절 설명해왔지만 결론은 하나, 우리가 어떤 사람을 반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트럼프의 사상에 반대하지만, 트럼프라는 한 인간에 반대할 수는 없다. 나는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지만, 인종차별주의자들 개개인의 존재를 반대할 수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이 세계 안에서 존재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부정하고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행위를 제한하는 것을 우리는 차별이라 부른다.
법은 항상 윤리의 일부분만을 규정한다. 차별금지법은 말 그대로 차별의 '금지'를 규정할 뿐, 더 나은 민주시민이 되기 위한 노력을 강제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차별금지법이 통과된 후에도 우리는 여러 사람과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차별하지 않는다고 훌륭한 시민인 것이 아니다. 모순으로 가득찬 이 사회가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을 배제하지 않을 수 있을지, 2021년은 그 문제를 고민하고 있어야 할 시기라고 본다. 그럼에도 한국의 정치는 여전히 2007년 발의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 조차 처리하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다.
청명한 일요일 여름밤, 신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진실되게 질문해보고자 한다. 세상에서 유일하신 그는 우리가 서로를 배제하고 차별하고 서로를 미워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낯선 이를 따뜻하게 환대하고 포용하여 사랑하기를 원하는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 신명기 -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 로마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