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주식투자 이야기가 불편하다면

특히 밥 먹는 자리에서

by 헤일리

금요일에는 어여쁜 친구와 화상 회의를 했다. 친구는 요즘 집 밖으로 한발짝도 나가고 있지 않다고 했다. 말간 얼굴에 정갈한 파자마를 입은 얼굴 뒤에서 분노가 끓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두시간 동안 많이도 얘기했다. 어떻게 하면 이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친구에게 나름대로 답을 줘보려 했다. 여수에 취직할래? 아니면 우리회사 올래? 영문학 박사를 하는건 어때? 툭툭 던지는 이야기에 그애는 잘도 웃어주었다. 그애는 역으로 나의 고민에 대해 물었다. 지금의 회사가 답답한 이유를 말해줄 수 있도록 물꼬를 확 터주었다. 간만에 아무런 이야기나 던질 수 있는 시간이 소중했다. 정말로, 살아있는 것 같았다.


최근 그 누구와 만나도 그리 기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직장 동료들을 만나거나 친구들을 만나도 예전만큼 에너지가 폭발하지 않는게 뭔가 이상했다. 그 애와 이야기하면서 그 답을 찾았다. 그건 바로 삶을 제대로 살아나가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도처에서 계속 듣고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의 분위기라는게 그렇다. 노동은 쓸모 없는 것이요, 자본만이 우리를 살아있게 만든다. 저금리에 주식투자 광풍이 얹어지면서 계속해서 사람들은 우리가 노동에 쓰는 그 시간 자체를 폄하하고 있다. 난 논리적으로는 그들의 말에 반박할 수 없어 입을 꾹 닫고 있었으나, 감정적으로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아 불만만 쌓아가고 있었다. 아, 그래요. 아 진짜요 처럼 동태눈깔 아이돌같은 말들만 되풀이하고 있었으니 오히려 재미를 느끼는게 이상할 정도였다.


나와 내 어여쁜 친구는 그럼에도 노동에서 우리가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결국 삶의 많은 부분은 노동일 것이다. 우리는 일을 함으로써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세상과 나누고, 세상이 알고 있는 것을 내 안으로 채워갈 것이다. 노동을 함으로써 내 삶을 먹고 자고 싸는 것 이외의 그 무언가로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리스 귀족들은 노동하지 않는 것을 최고로 쳤다지만, 아직 난 일이 삶에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믿고 싶다. 그 애는 그렇게 말했다. 계속 그렇게 미래에 어떻게 돈 많이 벌 수 있을지만 생각하면, 언제 우리는 살아가? 결국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데서 기쁨을 누리는 것 아니야? 언제 삶이라는 게, 미래에 돈을 더 많이 모으고 더 넓은 집을 사게 되는 것만을 의미하게 되었어. 탄산수를 한잔 마신 듯 심장이 시원해지는 게 느껴졌다.


물론 현재의 주식투자 열풍이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도 보유한 주식이 있고, 노동소득의 일부를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상 생활에서 주식과 관련한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그리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기는 했다. 얼마에 샀니, 잘 샀네. 요즘 좀 힘들겠네. 나는 그종목 괜찮은 것 같아. 하는 식의 이야기가 저녁 식탁을 채우는 순간 느끼는 모종의 삭막함이 싫어서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주식 이야기가 식탁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는 것도 사는 즐거움을 만들어가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세상에 무용하면서도 아름답고 즐겁고, 그래서 사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자신의 삶에서 한순간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욱 주식에 빠져드는 것 같다고 얘기하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지.


그리고 감히 자본이 노동의 가치를 무시하게 된 이 시대에, 노동의 가치를 우리가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하는 일에 흥미와 보람, 결실과 의미 그 어떤 것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식에 빠질 것이 아니라 커리어 전환을 시도해봐야 하는 게 아니냐고 오히려 되묻는다. 우리의 풍요로운 저녁식사와 에너지 넘치는 낮 시간을 위해서라면, 남들에게 계속해서 재미없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걸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서라면, 내가 계속 하는 일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게 수익률을 올리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나중이 아닌 지금을 살기 위해, 내 삶이 시작되길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내 삶을 시작하기 위해.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당신이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