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얼마 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썸,연애 게시판에 게시글 하나가 올라왔다.
"나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요즘시대에 여자가 결혼하면 왜 손해야?"
글은 출산율이 0.61을 기록하는 시대에 여성들이 왜 아직까지 결혼을 손해라 생각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고 질문했다. 육아 문제도 없을 테고 결혼해서 일 그만두게 되면 여성들은 옆집 아주머니들과 커피 마시면서 놀면 되는데 뭐가 문제고 손해라는 것이냐. 소위 "어그로"를 끌어야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기 충분한 주제였다. 잘해야 10개-20개 댓글이 달리는 블라인드에는 간만에 6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여성과 남성은 스파르타와 그리스의 군대와 같이 댓글창에서 강렬하게 전투하기 시작했다. 남성은 "여자가 왜 손해냐, 시집가고 싶어 안달나야 정상 아닌가?" "오히려 요즘은 남자들이 더 결혼 하기 싫어한다. 유부남 돼서 용돈 받고 사느니 자유로운 싱글로 사는게 낫다."라며 남성이 경제권을 책임져야 하기에 결혼은 오히려 남성에게 손해라고 주장했다. 여성은 "맞벌이에 육아까지 해야 하고 시댁 스트레스도 받으니 여성이 더 손해다." "집에서도 죄인 회사에서도 죄인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아느냐"라며 이에 맞섰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떤 결론도 없었다. 각각의 군대는 상처만 입은 채 전장에서 물러났다. 모두의 댓글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었다. 결혼하면 여자도 손해지만, 남자도 손해다. 한국에서는 가정을 이루는 것 자체가 모두에게 손해와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있다. 아마도 자식을 소유물로, 결혼한 자녀의 배우자 역시 자식으로 여기는 문화 때문일 것이라 추측해본다.
한국의 젊은 남녀는 아이 낳기를 포기했다. 합계출산율은 0.61%, 혼인 건수와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는 1970년대 이래로 최저를 기록했다. 평균 초혼 연령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결혼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지 않는 한국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앞으로의 출산율은 반등할 기미가 없다. 정부는 난임 치료 지원, 다자녀 혜택, 육아휴직 확대 등 적극적인 저출산 극복 정책을 펼쳤으나 소용이 없었다. 문제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아 한다는 데 있었다. 한국 여성들은 '그냥 결혼하고 싶지 않아'한다. 결혼하면 여자가 손해야? 이런 말에 일일히 대답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들은 그 모든 이유를 설명하기에 너무 지쳤다.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이러한 젠더 갈등의 원인, 그리고 해결책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 이후 소설 결말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주인공 강민주는 지성과 재력 모두를 겸비한 젊은 여성으로, 여성 문제 상담소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며 여성들의 각종 불행한 사연을 수집한다. 그녀는 남성으로 인해 망가졌거나 스스로 인생을 망가뜨리는 여성을 보며 분노한다. 그리고 자신이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유명 영화배우 백승하를 납치하는 계획을 실행한다.
P.47
"나는 여자들이 그렇게나 많이 남자들에게 당했으면서도 여전히 남자에게 환상을 품는 것에 정말이지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내가 선택한 이 운명 말고, 다른 운명의 남자가 어딘가 꼭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여자들의 우매함은 정말 질색이다. 남자는 한 종이다. 전혀 다른 남자란 종족은 이 지구상에 없다... (중략) 나는 백승하를 싫어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나와 동성인 여성들을 현혹시킨다는 의미에서 그를 증오한다."
강민주는 소설 속 세계관에서 빈틈 없는 치밀함과 이성적인 두뇌를 지닌 인물으로 묘사된다. 그런 그가 정치인이나 기업가가 아닌 백승하를 납치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여성이 남성과 대등한 존재가 되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요소가 바로 사랑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고민 상담을 신청한 많은 여성들은 남성에게서 상처 받고 버려졌음에도 관계를 놓지 못한다. 그들은 연애와 결혼 생활에서 불행하면서도 백승하 같은 남성을 보며 달콤한 세상을 꿈꾼다. 자신의 삶은 본질적으로 바꾸지 못한 채 말이다.
<여자는 인질이다>는 가부장제의 남성 폭력이 오히려 여성과 남성의 성애 관계를 촉발시킨다고 설명한다. 길거리에서의 캣콜링, 성추행과 성희롱 경험을 겪은 여성은 그 트라우마를 동료 남성의 기사도 정신을 보며 치유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그리고 많은 경우 남성이 여성에 비해 힘과 경제적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은 남성의 보호 아래 살아가며 심리적인 안정을 얻고자 한다. 이상적인 남편/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수많은 TV 프로그램의 주 시청자층은 중년 여성이다. 그들은 아내와 자녀에게 헌신적이고 로맨틱한 모습을 보여주는 남성을 사랑한다. 순간적인 쾌락의 감정은 살아가며 실제로 경험하는 수많은 별로인 남성에 대한 증오를 한편으로 누그러뜨린다. 백승하는 소설 속 최수종이고 송일국인 셈이다.
강민주는 백승하 역시 남자이므로, 그에게 대외적으로 알려진 이미지를 부술 만한 사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를 감금하는 데 성공한 후에는 거짓 스캔들을 언론에 흘려 백승하의 비밀을 캐내려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 중반부 백승하는 뜻밖에 세상에 알려진 대로의 좋은 남자 그대로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강민주는 그와 점차 교류하며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하고, 백승하 역시 강민주에게 끌림을 느끼기 시작한다. 여성 해방을 목표로 했던 강민주의 계획은 뜻밖에 인간적인 교류, 감정적 동요를 통해 위기를 맞이한다. 그녀는 점차 그의 미소와 따뜻한 손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마침내 백승하의 세계 속에 동요되어 그와 함께 연습한 연극을 올리는 순간, 그녀는 자신을 사랑한 부하 남기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소설은 여러 테마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남성의 폭력에 의해 불행해지는 여자, 남성의 부드러움으로 행복해 하는 여자, 남성을 증오하고 짓밟으려 하는 여자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에게 끌리는 여자들. 그 여자들의 앞에는 여성을 가해하고, 사랑하고, 숭배하면서도 가지고 싶어하는 남자들이 있다. 강민주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자신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남성에게 그 마음을 발각당해, 자신을 숭배하는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다. 그녀가 백승하를 사랑한 것은 손해였을까? 아마 블라인드의 게시글 대다수는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어머니가 남긴 재산으로 호위호식하며 살 수 있는데, 백승하가 대수였을까? 정 남자가 급하면 소개를 받아 다른 멀쩡한 남자를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반반의 결혼식, 명확한 가사 분담, 경제권과 육아 간의 균형. 그렇게 강민주의 인생에는 어떤 손해도 위험도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강민주의 손해스러운 인생을 기꺼이 책으로 엮기를 택한다. 스물 일곱에 유명 배우를 납치하다 살해당한 여자. 작가는 뉴스 기사에서라면 단순하게 남을 법한 그녀의 특이한 삶을 끝끝내 길고 긴 텍스트로 펼쳐 놓아 독자 앞에 내보인다. 책을 덮은 독자는 아무래도 페미니즘과 반반 결혼에 대해 말을 떼기가 어려워진다. 명백한 손해와 명백한 이득 그 사이엔 아름다운 인생이 없다. "삶이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절망의 텍스트다." 책 첫 문장이 가리키듯, 우리의 삶은 본질적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절망적이고, 결국 무위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손해스럽다.
책의 말미에는 "공격의 대상으로서 상상적으로 그려진 남성과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만남을 통해서" 강민주가 변화되었다는 해석이 적혀 있다. 게시판의 댓글이 전쟁터가 되었다지만 우리네 삶에는 아직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만남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우리 삶이 결국 세 줄 요약으로 끝나는 커뮤니티의 게시글 같은 것이 아니라 절망의 텍스트로 남을 운명이라면, 결국 대단한 이익과 대단한 손해의 계산 뒤에 남는 것은 진부하게도 믿음과 소망, 사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