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 베이커 - 아노라

성노동과 신데렐라의 꿈

by 헤일리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뉴욕의 스트립 클럽에서 <애니>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아노라는 다년간 쌓은 노하우로 고객을 끌어들이고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이스이다. 눈웃음을 치며 다가가 고객과 스몰토크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자연스레 단가가 높은 VIP룸으로 유인한다. 현금이 없다며 주저하는 고객과 친절하게 ATM기 앞까지 동행하는 그녀는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채운다.


이야기는 어느날 그녀의 앞에 나타난 한 러시아 부호가 그녀와 특별한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진행된다. 할머니의 영향으로 러시아어를 알아듣는 애니 앞에 말갛고 순진한 얼굴의 러시아 고객인 반야가 등장한다. 러시아어를할 줄 아는 애니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실력을 발휘하자 그는 종종 클럽 밖에서도 만날 것을 제안한다. 물론 금전적인 대가도 따른다. 클럽 밖의 부수입을 챙길 수 있는 애니는 흔쾌히 제안을 수용한다. 애니는 반야와의 관계를 진전시켜가고, 반야는 어느날 그녀에게 일주일 간 자신의 여자친구를 해줄 수 있는지 묻는다. 1만 5천달러, 한국 돈으로 약 2천만원 가량의 돈이다. 그녀는 스트립 클럽에 일주일 간 쉬겠다고 통보하고 (4대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제도 밖 일자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야와 꿈같은 일주일을 보낸다. 그리고 정말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일어난다. 반야가 그녀에게 청혼한 것이다.

청혼을 받아들인 아노라는 이제 더이상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트리퍼가 아닌 반야의 정식 가족으로 신분 상승을 누린다. 다니던 클럽을 그만두고, 넓은 집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을 가지고 노는 반야의 허리를 꼭 끌어안는다. 반야는 결혼 전이나 후나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다. 아마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반야의 부모는 아들이 매춘부와 결혼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고 전용기를 이용해 뉴욕으로 날아온다. 부모의 하수인인 토로스, 가닉, 이고르는 사건이 '말끔하게' 처리되게 하기 위해 부모보다 먼저 반야의 집으로 들이닥친다. 반야는 부모가 쫓아온다는 소식에 패닉하여 아노라를 버리고 도망친다. 그렇게 신데렐라 스토리로 시작하는 듯했던 영화는 토로스, 가닉, 이고르, 아노라 네명이 반야를 쫓는 로드무비로 변화한다.

아노라는 필사적이다. 반야를 찾고 그를 설득해야 자신에게 찾아온 이 행운을 놓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형제지간인 토로스와 가닉 역시 필사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반야를 찾아 그가 저지른 잘못 (매춘부와 결혼한 것)을 만회해야만 그들의 안위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역할에 충실한다. 캔디 가게를 부숴버리고, 불법 주차로 견인될 뻔한 자동차를 탈취한다. 그리고 마침내 술에 취해 스트리퍼에게 서비스를 받고 있던 반야를 검거하는 데 성공한다. 아노라는 자신을 버리고 클럽에서 여성을 가지고 놀던 남편을 탓하지 못한채 그에게 이 결혼이 무효화되어서는 안된다고 끊임없이 설득한다. 그러나 그런 설득과 회유도 반야의 부모가 등장하자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이야기는 그렇게 아노라의 꿈만 같던 상승에서 시작하여 그녀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이야기로 막을 내린다.

아노라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었을까? 관객은 필사적으로 결혼을 유지하려는 아노라를 응원하게 되기도, 창녀이면서 더 높은 지위를 원했던 그녀가 헛된 꿈을 꾸었다며 비난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반야 가족이 등장하는 이야기의 중후반부터 그녀가 받는 멸시를 오롯이 같이 느끼게 된다. 법원에서 토로스는 결혼 당사자인 그녀가 "말할 자격이 없다"고 소리친다. 반야는 결혼을 꼭 무를 필요가 없다는 아노라의 말을 무시하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나와 놀아줘서 고마웠다는 말을 전한다. 아노라는 반야와 성매매에서 관계를 시작했다는 이유로 모든 곳에서 아무도 아닌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한다.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소리친다. 너희들도 필요가 있어서 날 이용한 거잖아? 나도 내 입장이 있는 거잖아? 1등 스트리퍼로 일하던 실력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녀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몸짓은 사납다. 그러나 한바탕 소동을 벌여도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로드무비로 달려가던 영화는 모든 소동이 끝나고 조용히 앉아있는 아노라를 조명한다. 가닉과 토로스가 없는 곳에서 이고르는 말한다. 난 애니보다 아노라가 더 좋은 것 같은데. 빛, 밝음 이라는 뜻이라고. 아노라는 이고르의 말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에게 가닉과 토로스가 없었으면 날 강간했을 것이라며 쏘아붙인다. 이고르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난 널 강간하지 않았을거야." 아노라는 믿지 않는다. "네가 날 강간하지 않을 거라고? 그게 어떻게 가능해?"


이야기의 마지막에야 관객은 비로소 앞의 화려함과 왁자지껄한 소동이 이 3부를 위한 것임을 직감한다. 그렇게도 나약해 보이던 반야를 끝까지 믿었던 행동이 무색하게, 아노라는 자신을 위로하려는 이고르를 믿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겪어왔던 세상이 그녀를 "기회가 있을 땐 강간하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반야와의 결혼이 비극으로 끝날 것을 그녀 역시 알았을 지 모른다. 그렇게 한순간의 꿈에 불과함을 알았어도 그 기회를 사납게 붙잡으려 했던 이유는 아마도 그녀가 달리 살아갈 삶이 없기에, 기회가 있으면 강간을 당하고, 그 앞에서 웃음을 파는 삶 이외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고르는 아노라를 원래 그녀가 살던 브루클린 집 앞에 데려다주고는, 소동극 속에서 몰래 빼돌린 다이아몬드 반지를 그녀에게 건넨다. 강제로 이혼을 당하고 터무니없는 취급을 당한 아노라에게 반지는 지난 시간이 아픔만은 아니었다는 위로를 건네는 듯하다. 반지를 받은 아노라는 고마워하다, 자신이 원래 알고 있는 방식의 보답을 하려 시도한다. 어쩌면 그녀는 이고르 역시 반야나 다른 스트립 클럽의 고객처럼 그런 서비스를 남몰래 받고 싶어한다고 생각했을지도, 그렇게 자신에게 위로를 건넨 이고르 역시 자신을 물건으로 만들었던 그 남성들과 똑같다는 확인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허리를 흔들던 아노라는 한순간의 상념에 빠진다. 아노라의 비참한 모습을 보던 관객도 순간의 고요 속으로 들어간다. 정말 아노라는 조건 없는 위로 따윈 받을 수 수 없는 사람이었던 걸까? 고요히 창 밖에는 눈이 쌓인다. 아노라는 하나의 인간이 되어 웃음 대신 눈물을 흘린다.


감독과 각본을 맡은 션 베이커는 <아노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의 성노동자에게 이 이상을 바친다"는 수상소감을 전했다. 그는 성노동 합법화에 찬성하며 성 노동자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를 여럿 제작한 바 있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하는 성노동을 보고 있자면 아이러니하게도 성노동이 일반적인 '노동'에 부합하지 않는 특성에 집중하게 된다. 여성은 분명히 시간과 육체를 갈아넣고 있음에도 노동자가 아닌 상품으로 취급되며, 노동이 일반적으로 생산하는 인간적인 관계를 자본의 교환 가치 속으로 밀어넣는다. 제도권은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으며, 노동자 역시 제도권 안에서라면 누릴 수 없는 높은 시간 당 페이를 끈 팬티 속으로 찔러넣는다. 자신의 영혼과 인간성을 팔아 큰 돈을 맛본 사람이 계속해서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그 개인의 탓으로 오로지 돌릴 수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인간성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그 책임이 없다고 볼 수는 있는가? 아노라는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목돈삼아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못할 것이다. 더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건실한 청년으로 우뚝 서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그녀에게 도덕적 단죄를 내리고 싶은 관객의 욕심일지 모른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명히 하고 싶은 관객의 마음을 배반하듯 이야기에는 그 어떤 도덕적 단죄나 교훈도 없다. 감독은 아노라에게 성판매를 하게 된 어쩔 수 없는 사정이나 사실은 성을 판매하고 싶지 않았을 거란 변명거리조차 주지 않고, 그저 그녀를 클럽의 에이스 스트리퍼 그 자체로 조명할 뿐이다. 우리가 수많은 기사에서 봐왔던 성판매자의 일상이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등장한다. 관객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반야와 같이 소리지르는 그녀를 짓밟을 수도, 아니면 이고르와 같이 그 모든 소동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껴안을 수도 있다. 좋은 영화는 질문과 함께 끝난다. 사물이었다 사람이 된 아노라의 찰나를 보던 관객은 문득 영화적 경험에서 깨어나 강제로 질문을 마주한다. 우리는 아노라였던 적이 없었을 지라도 그녀와 같은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 자본 앞에 한없이 무력해졌던 기억, 그러면서도 그 반짝거림을 포기할 수 없었던 욕심. 자신을 미워하고 인간임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주어졌던 조건 없는 따뜻함. 문득 그녀가 스트립 클럽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런 위로를 다시 한번 느끼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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