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살이와 함께 바보가 되는 마법

내 두뇌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걸까?

by 헤일리

이 곳에서의 첫 한달은 결혼과 출산 이후 처음으로 길게 주어진 '나혼산' 의 시기였다.


오랜기간 동안 주재생활을 하셨던 같은 팀 선배는 가족이 오기 전까지 간만에 여유를 갖고 '내 자아찾기'에 골몰하라고 조언하셨지만, 독일에 떨어진 후 어디 자아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이나 있었던가.

어딜 가도, 무엇을 해도 모두 처음이었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계속 긴장감을 안고 살았고, 필연적으로 평소에 안하던 실수를 연발하고야 마는데..

초심자의 바보 퍼레이드를 뒤늦게 자랑처럼 전시해본다.


#1. 도착 후 첫 주는 회사 근처의 호텔에서 묵었고, 그 이후 3주는 빨래와 요리를 할 수 있는 임시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체크아웃을 하고 차에 짐을 싣는 중이었다. 트렁크 자리가 협소해서 이민가방이 들어가질 않자, 뒷자석을 앞으로 당기기 위해 좌석 옆의 조절 손잡이를 누르는데......갑자기 좌석이 팍 튀어오르며 왼쪽 눈을 세차게 강타하고 말았다. (얻어맞은 나보다 도와주던 호텔 직원이 더 놀람...순간 정적)

40 인생 살면서 얼굴을 강타당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 와중에 '(추성훈 같이)진짜 힘센 사람한테 눈을 얻어맞으면 이런 느낌이겠구나'라고 잠시 생각했고, 아플 겨를도 없이 비가 눈으로 변하기 전에 얼른 이동해야겠단 생각 뿐이어서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해주던 호텔 직원의 걱정어린 눈빛을 뒤로하고 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선 조심조심 숙소에 도착해서 짐 풀고 정신 차린 후 거울을 보는데.....


회사에서 내 첫 인상 한번 강렬하겠구나...라는 아주 쎈 자각이 왔다.

왼쪽 눈두덩이에 거대한 혹과 함께 피멍 들어있던 것이었다.


그나마 가져온 내 아이셰도우 색상이 피멍과 비슷해서 여차저차 잘 위장하고 다니긴 했는데, 완벽한 위장까진 아니었다. 보는 사람들마다 내게 눈이 왜 그러냐고 물어왔으므로....

역시 외국에서 무엇 하나 혼자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끼게 해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2. 임시숙소는 주차 공간을 무료로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parking ticket을 따로 구입해서 사용해야 했다. 한달권이 80 유로(한화로 136,000원) 정도였고, 3주를 머무를 예정인 내겐 일일권보다 한달 권이 더 유리해서 구입을 했는데, 문제는 이 티켓이 정말 얇은 종이쪼가리에 불과해서 바람에 잘 날아가기 십상으로 생겨먹었단 것이다. 같이 임시숙소에 입소한 동료들과 함께 '이거 잃어버리면 14만원 날리는거에요, 3주동안 보관 잘해야겠어요~하하하~'라며 웃어넘겼는데...


한국 주차장의 인프라와 달리 매번 출입할 때마다 파킹 티켓을 기계에 인식시켜야 통과할 수 있는 낙후된 시스템이다보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그 티켓을 분실해서는 안된다는 필사적인 마인드로 사용 후엔 문 손잡이 공간에 항상 티켓을 보관해두었고, 그렇게 나는 2주 동안 멀쩡하게 그 주차장을 잘 이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항상 '처음'이라는 것인데..임시숙소에 머문지 2주가 되던 날, 퇴근 후 주유소에 가서 (혼자서는 처음이었던) 주유를 하고, 운전석에 타서 문을 닫는 순간 운전석 손잡이 공간에 있던 종이 쪼가리(파킹 티겟)가 보조석으로 날아가는 장면을 목격하였다..주유소를 나서면서도 어차피 차 안에서 날아간 것이니, 숙소 가서 보조석 바닥에서 찾으면 되겠지..하고 주차장 입구 길목에서 잠시 정차를 하고 티켓을 수색하는데..

10분을 샅샅이 찾아도 그 티켓이 안 보이는 것이었다.

'내가 무엇에 홀려서 잘못 봤나?'를 반문할 정도로 정말 미스테리한 일이 아닐 수 없었고...결국 남은 기간동안은 일일 주차권을 매일 사서 돈은 돈대로 더 날리고, 불편함도 감수해야 했다는 후문...

아직도 이건 미스테리다. 나의 파킹 티켓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뭐 위의 사건 외에도 잔잔하게...

차 문도 안 잠근 채 회식 장소로 달려감 (독일 치안을 믿었나봄. 다행히 아무일 없었음)

눈길에 밀리는 브레이크와 함께 수명 짧아짐 (천만다행으로 앞차 없었음)

휴대폰을 차에 놓고 출근해 사무실과 지하 주차장을 무한 루프함


한달이 지나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나의 두뇌는 이때만큼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는 것을.

머릿 속에 수만가지 투두리스트와 앞으로 닥칠 생활에 대한 시나리오에 대한 대비와 각종 연산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니..매순간 집중하고 똑부러지게 완결하는 힘이 부족할만 했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도움이 되었던 마음가짐은 아래와 같다.


매일의 사소한 성취를 축하할 것 - "궂은 날씨에도 사고없이 출퇴근 무사히 잘한 것 칭찬해!"

나 자신에게 무조건 관대할 것 - "주차 티켓 잃어버릴 수 있어, 혼자 잘 적응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위의 마음가짐이 없었다면 끝없는 자괴감에 시달려서 가뜩이나 과부하인 두뇌 용량을 더 잡아먹었을 것이고, 일은 더 꼬였을 것이 분명하다.


오늘보니 이제 눈가의 피멍도 거의 다 빠졌다. 바보 마법이 풀려가는 속도만큼, 나는 이곳에 스며들고 있다.

처음은 누구나 어설프고, 그 시간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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