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다른 유럽에서의 달리기

달리는 몸의 자유로운 감각이 내게 일깨워준 것

by 헤일리

한국에서는 주로 집 근처 대학교 내의 트랙을 반복해서 뛰었는데, 독일에 와서 보니 이 곳만큼 뛰기 좋은 환경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땅덩이가 넓고, 공원도 잘 조성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뛸 때 접하게 되는 장면이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보는 재미‘가 있는 달리기. 그게 가장 큰 차이다.


뻔한 빌딩숲과 아파트 단지, 동네 운동장, 강변의 비슷비슷한 모습이 아니고, 집과 건물들이 제마다 다른 지붕의 각도와 색깔을 자랑한다.

바둑판처럼 매끈하게 짜인 길이 아니다보니,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좁은 골목과 우연히 맞닥뜨리는 재미도 있다. 의무감으로 시작한 달리기가, 어느 순간 탐험이 된다.

그래서일까, 달리는 시간을 의식하지 않은 채 그저 광활하고 예측 불가한 주로에서 자유롭게 탐색하는 자연인의 모습을 -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감각을 - 발견하게 된다.

이 곳에서 달리기라는 루틴을 놓아버린다면, 어쩌면 작은 행복 하나를 흘려보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독일에서 처음 달렸던 아침의 풍경 @Kurpark, Bad Homburg


문득 달리기의 감각이 인생의 감각과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복된 트랙을 벗어나 조금 더 넓은 공간에서 뛰는 경험이 내 사고의 방향을 바꾸어 놓고 있다 느끼기에.


아직도 기억난다, 독일에 와서 처음 뛰며 자유로움을 온몸으로 느꼈던 환희의 순간.

임시 숙소 근처의 Kurpark Bad Homburg 에서 토요일 아침 8시를 자유롭게 뛰던 그 감각은

이 곳에 오기 전에 스스로에게 했던 약속을 떠올리게 했다.


인생에서의 의무감을 내려놓고, 좀 더 자유로워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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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달리기의 순간들


마흔 초반의 한국 여성. 결혼도 했고, 아이도 키우고 있고, 직장 생활도 오랫동안 이어가고 있다보니,

내 인생의 선택지는 어느 정도 좁혀졌다는 생각 속에서 살아왔다.

아이 교육의 영역도, 내 커리어도, 앞으로의 인생도 이미 잡힌 틀 안에서 변주하며 살아가는 것만 남아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 드라마틱하게 인생을 바꿔보고 싶다면, 직장을 나와서 내 사업을 해보는 변화를 꾀하는 것 정도가 내게 남겨진 선택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는 공간, 뛰는 공간이 바뀌자 깨닫게 되었다. 그 '틀'은 세상이 아니라 내가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곳에서라면, 조금 다른 삶을 상상해보고 살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달라져도 좋고, 상상했으나 결국 제자리에 돌아오는 삶이어도 좋다. 뭐든 한번 ‘뒤흔들어 보는 자유로움’을 경험하는데 의의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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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스위스 여행가서도 만끽한 자유로운 달리기


요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이런 것이다.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과거와는 다르게 살아볼 수 있을까?”

“딸이 이 곳에서 계속 공부를 이어간다면 어떨까?”

“내가 이 곳에서 계속 일과 삶을 이어간다면 어떨까?”

“의무감을 내려놓고 순수하게 즐기는 순간을 늘여보면 어떨까?“ 등등의..


지금 질문의 단계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발화 단계다. 하지만 1년쯤 지나면, 그 가능성이 어떤 모양으로든 드러나지 않을까. 질문의 답을 계속 찾기 위해, 이곳에서 더 자유로운 러너가 되기를 결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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