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입국 1주차, 9세 딸과 67세 친정엄마의 적응기
지난 주 토요일에 입독을 한 딸아이와 (곧 떠날) 남편과 친정 엄마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일주일도 안되어 이미 각자의 고유한 루틴과 인생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인간의 경이로운 적응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먼저 9세 딸.
첫 등교날 하교하자마자 ‘내일이 빨리 와서 얼른 학교를 가고 싶다’고 할만큼 놀라운 적응력을 선보였다.
둘째 날엔 그야말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게 되는데….폭설로 인해 프랑크푸르트 교통이 완전 마비가 되어 10분 거리가 한 시간 이상 소요될만큼 미친 교통상황이 도래, 학교에 스쿨 버스도 진입하지 못하여 꼼짝없이 학교에 갇혀버린(!) 딸.
친구들과 학교에서 저녁까지 먹고, 등교한지 14시간 후인 저녁 9시가 되어서야 무사 귀가를 했다.
이런 상황에 당황하고 지칠 법도 한데, 저녁으로 먹은 피자도 너무 맛있었고 평소 양보다 많이 먹었다고까지 자랑하는 그녀.
셋째 날엔 한국 학교보다 여기가 훨씬 낫다고 하더니, 오늘은 급기야 한국 학교 급식보다 여기 급식이 더 맛있다고 한다. (여기 급식 맛없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모든 것이 새롭고, 재밌고, 탐구할 것 투성인 그녀는 우리 가족 중 가장 월등한 적응력을 보이고 있다.
매일 아침이 기다려진다고 쫑알거리는 목소리와 반짝이는 눈빛을 보는 것만큼 기쁜 일이 있을까.
그 순수한 기쁨에 기대어 나 역시 이 곳에서 살아낼 에너지를 얻는다.
두번 째는 67세 친정 엄마.
한국과 가장 다를 것이 없는 다소 단조로운 루틴을 영위하고 있기에, 적응력이 좋다고까지 할 수 있나? 잠시 반문했으나..아니다.
일단 이 곳의 음식을 거부감 없이 지속적으로(!) 잘 먹고 계신다. 슈니첼, 감자, 샐러드, 치즈, 빵..엄마 연세에 한국 음식이 당길 법도 한데 전혀 찾지 않으시고, 레모네이드가 들어간 저알콜 맥주인 라들러를 매일 한 캔씩 즐기며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남편 말로는 오늘 아이 저녁 재료 준비를 하시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리셨다고 하니…완벽한 적응이라고 평가할만 하다.
운동만 조금 더 열심히 하신다면 건강한 루틴이 완성될 듯하다.
마지막으로 42세 남편.
사실 남편은 우리 가족 중 업무로 인해 가장 독일을 제 집(?) 드나들듯 많이 와본 사람이기도 하고, 나머지 두 가족의 적응을 돕기 위한 역할로 온 것이기에 적응력을 운운할 포지션은 아니지만, 역시나 본인만의 스타일로 독일의 낭만과 소소한 일상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매일 새벽 러닝, 근처 산 하이킹, 아이 학교 짐에서 웨이트 운동, 집 계단 오르내리기 운동을 통해 체력을 무한으로 단련하고 있으며, 혼자 미술관도 가고, 매일 장보고 요리도 하며, 아이 친구들의 엄마들과도 안면을 터가며 한시적이지만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충실히 꾸려가고 있다.
나를 포함한 모든 가족의 구심점이 되어주고 있는 남편. 한국에서 같이 살 때는 몰랐는데(?) 여기 와서 보니 결혼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부부는 떨어져봐야 소중함을 느낀다더니….검증된 팩트였군)
한달이나 먼저 온 나는, 공교롭게도 이들의 입독과 함께 갑자기 긴장이 풀렸는지 장염 증상이 세게 와서 지난 몇일동안 고생을 했다.
그 와중에 회사를 가고, 무슨 정신으로 버텼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그 시간은 지나갔고…
가족이 순탄하게 적응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니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마음이 잔잔히 피어오른다.
군더더기 없는 단조로운 삶 속에서 만족감을 찾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인 요즘.
한국에서 좀처럼 써지지 않던 글이 여기서 써지는 것이 증명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렇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디자인해가며, 서서히 독일의 일상에 젖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