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교로 보낸 선택이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을까
나에게 주어진 독일 주재 기간은 2년. (연장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파견 온 입장에서는 2년이 딱 적당한 것 같지만, 아이의 교육 측면에선 어학을 제대로 학습하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원하던 국제학교에 TO가 없다는 비보를 전해듣고, 그 학교의 멀디 먼 분교로 보내는 옵션을 택했다.
(스쿨버스를 한 시간 가량 타고 통학을 하는 거니까…멀긴 멀다)
분교에 한 학기 다니면 본교로 transfer를 해주겠다는 조건부 오퍼였기 때문에 감행해볼 만한 선택지라고도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아이를 이 곳에서 혼자 키우는 워킹맘의 입장에서 내 스케줄과 조화를 이루는 것 또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데, 아이가 아침 일찍 스쿨버스에 탑승하기 때문에 아이를 보내고 출근해도 넉넉하다는 이점이 있었다.
게다가 분교라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 교사 한명당 담당하는 아이가 7명인 수준인 것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만큼 가족같이 따뜻하게 챙겨주는 분위기라는 얘기도 들어서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우리 아이에게는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과는?
물론 오늘이 첫 등교였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지만…오늘 학교를 가보니 ‘오히려‘ 너무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캠퍼스 투어를 하던 중에 수업 중인 딸을 두번이나 발견했는데, 엄마아빠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해줄 줄 알았는데) 본체만체하며 본인 수업과 친구들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만큼 ‘나 즐기고 있어요’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겠지.
옆에서 가이드해주던 교감 선생님도 엄마아빠를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신호라며, 오며가며 만나는 선생님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며 함께 기뻐해주셨다. ^^;)
그리고 마음에 들었던 몇 가지를 얘기해보자면,
- 학년 통합반의 장점: Grade 3~4가 함께 섞여 생활하는 혼합반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이 혼합반의 형태는 많은 국제학교와 독일의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식이기도 한데, Grade 3로 들어간 우리 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윗학년 언니오빠로부터 태도나 문제 해결 역량 등을 배우면서 ‘배우는 사람’에서 학년이 올라가면 ‘끌어주는 사람‘으로 진화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 학습 효과가 극대화되는 ‘인간 역학’을 잘 활용할 수 있다는 것.
게다가 훨씬 풍성한 사회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딸의 경우, 워낙에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보니 더할 나위 없이 잘되었단 생각이 들었다.
- 끈끈한 소규모 공동체: 전교생이 소규모다 보니, 학년과 상관없이 서로 가깝게 지낸다는 것. 이건 선생님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딸을 기억하고 챙겨줄 수 있는 선생님들이 많다는 것.
오늘 첫 등교한 딸의 경우에도, 캠퍼스 투어를 하면서 교감 선생님이 동네방네 아이의 첫 등교를 알렸더랬다.
- 예술 활동의 정규화: 드라마나 아트 클라스 같은 예술적 활동을 장려하는 수업이 아예 정규 클라스에 다 편입되어 있다는 것. 한국의 경우, 미술이나 드라마 같은 수업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서 방과 후 수업에서야 선택해서 들을 수 있었는데. 이것 또한 만들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에겐 잘 되었단 생각이.
- 고학년 아이들의 돌봄 케어: 그리고 가장 반가운 소식은, 아이가 하교하고 내가 퇴근할 때까지 혼자 있을 수 있도 있는 시간에 같은 학교의 고학년 아이들이 돌봄 케어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것!
우리집이 본교 근처라서, 동네 반경에 거주하는 아이들이 많을 것 같다고 했다. 필요시 몇 주 전에만 얘기하면 연결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듣고 너무 반가웠다.
무엇보다 다 떠나서,
하교한 아이의 함박 웃음과 함께 ‘얼른 내일이 되어서 또 학교 가고 싶다’ 라는 얘기를 들으니
정말 ‘나만 잘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혼자 자기 방에 들어가 말도 안되는 영어를 지껄이는 것을 엿들으면서..웃기면서도 아이가 너무 기특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부모가 열어주는 세계와 경험만큼 자라난다.
해외 여행을 가서 외국 친구를 사귀고 몇일을 연이어 같이 놀고 연락처까지 교환했던 경험, 1학년부터 혼자 종종 등하교도 하고, 집 근처 슈퍼에서 혼자 장봐오는 심부름도 했던 경험, 내가 여기있는 동안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 혼자 집에서 기다리며 본인의 루틴(숙제, 샤워)을 지켜가며 잘 지내온 경험 등..
일하는 엄마아빠가 매 순간을 함께 해줄 수 없어서 아쉬웠던 부분만큼 아이는 한뼘한뼘 자라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낯선 환경에서도 친구를 쉽게 사귀고, 첫날부터 스쿨버스에서 내려서 혼자 선생님과 교실도 잘 찾아가고 한 오늘의 소소한 성취는, 과거의 그 축적된 경험들에서 비롯된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오늘의 끝에 와서 다다른 생각은 역시나,
“나만 잘하면 된다”는 것.
한달 간 혼자 지낼 때와 달리 확실히 책임감의 형체가 더 뚜렷해짐을 느낀다.
내일부터 나는 또 나의 일을 잘해나가보는걸로!
(딸은 오후 7시부터 곯아떨어졌다. 즐거웠지만 매우 고된 하루였던 모양이다. 꿈속에서 오늘 배운 말도 안 되는 영어로 신나게 떠들고 있지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