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으로 산다는 것

혼란 속에서도 마음 다잡는 법

by 헤일리

나는 요즘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다.


주재원으로서 본사에서 파견된 몸이지만, 지금은 권역 소속이기도 하다. 본사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면서도, 권역의 실리를 외면할 수 없는 이중적인 위치다.

관리자로서 업무를 수행하는 여타 주재원과는 달리 내게 기대되는 역할은 주재원과 실무급 현지채용인 그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직무 기술서가 명확하고 소속이 명확해도 쉽지 않은 것이 직장인의 삶인데, 이렇게 애매모호한 '위치' 때문에 심적으로 괴로운 경험은 처음이다.


경계인으로서 이따금씩 몰아치는 회의감, 소외감.

직무 기술서 없이, 내가 일을 하며 그 기술서를 직접 써내려가는 느낌.


그래서 요즘 내 목표는 '모호함을 디폴트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우는 것' 이다.


물론 이것 때문에 너무나 괴로워서 밤에 잠이 안오고, 한숨을 푹푹 내쉴만큼 스트레스 받는다거나 데미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잔잔하게 짜증나고 모호한 상황의 연속이 주는 스트레스 또한 적지 않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라고 니체가 얘기했다지만...일련의 상황 속에서 내가 과연 강해지고 있는 게 맞는지, 되려 무뎌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물론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견뎌내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일을 확실하게 해내고 시작과 끝맺음을 명확하게 하는 것과 대척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가 저의 역할이고, 그에 상응하는 목표는 무엇이어서, 그게 근거하여 저는 이런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생각합니다' 라고 어필해야 하는 연말의 성과 평가 시즌에 나는 어떤 스토리를 풀어낼 수 있을까.


퇴근길에 이런 생각을 줄줄이 하다가 문득 반문했다. 관점을 살짝만 틀어보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적 사고를 해야하는 상황은 아닐까?

모호함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대신 얻게 된 장점들도 참 많다.


- 해외살이를 통해 확장되는 견문

- 새로운 업무 경험을 통해 (어떻게든 과거와는 달라질) 내 모습

- 내 아이의 달라진 교육 환경

- 심플해진 내 삶 (이렇게 퇴근 후 고요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라니)

- 쾌적한 주거 환경 (새 지저귀는 소리로 깨는 아침과 별이 보이는 맑은 밤 하늘)

그리고 기타 등등..


플러스적인 사고를 해보자라고 생각하던 차에, 애정하는 어느 블로그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하는 선물과도 같은 문장들을 발견하곤 불끈 힘이 났다.


‘고요한 삶을 살다 풍파가 닥칠 땐 그 사람의 그릇을 시험하느라 시련을 주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 그럴 때 힘들지만 더 나아지려고 해봐. 그럼 어느 순간 그걸 이겨낸 내가 장하다고 여겨지는 더 큰 그릇의 내가 되어 있더라고. 어차피 살거면 시련을 버티고 이겨서 더 큰 내가 되어보자!!!'


그러고보니 며칠 전, 팀의 동료와 대화하며 이런 이야기도 나눴었다.


'XX 부서와 협업을 하고, 그들에게 일정 부분 기대어 일을 해야만 하는 우리의 업무 특성상, 매일이 이슈 투성이고 스트레스의 연속인 것 같다. 우리 부서는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다른 부서, 다른 직장엔 나름의 또 다른 고충이 또 있지 않나. 나는 여기가 4번째 회사인데, 매번 이직할 때마다 상황이 나을거라 기대하고 이직했지만 근본적으로 직장인의 삶은 어딜가나 비슷하다 여겨진다. 이럴 땐 '컵이 반이나 차있다'라는 긍정적 사고를 장착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나.' 라는 내용의...


그러고보면 나는 이미 스스로 답을 알고 있다.

이런 상황일수록 플러스 사고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글을 쓰며 흔들리는 중심을 다잡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치유의 방법이라는 것을.


오늘도 대혼란과 모호함과의 싸움을 이겨낸 나를 칭찬해본다. 그 와중에 괴로운 티를 내지 않은 것 또한 매우 잘했다고.


나는 더 큰 그릇이, 더 성숙한 프로페셔널이 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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