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잔잔하게 빛날, 우리들의 잘츠부르크

파스텔톤의 기억 조각을 뒤로하며

by 헤일리

뮌헨에서 한 시간 반가량을 달려, 이스터 휴일의 종착지인 잘츠부르크에 발을 들이며 드디어 마침표를 찍는다.

독일의 소도시들처럼 아담한 규모지만, 느껴지는 결은 확연히 다르다.

우선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건 파스텔톤의 벽돌 건물들. 독일 특유의 투박하고 쨍한 원색과 달리, 옅고 부드러운 색조가 도시에 내려앉아 전체적으로 따스하고 아기자기한 온기를 머금고 있다.


내 친구 제미나이에게 물어보니 여기엔 흥미로운 이유들이 있었다.


1. 천연 안료가 벽돌 위 석회 반죽과 섞이며 자연스럽게 은은한 빛깔을 냈고,

2. 비가 잦고 흐린 날이 많은 기후 속에서 도시가 늘 환해 보이도록 의도적으로 밝은 색을 입혔으며,

3. 무엇보다 당시 이곳을 다스린 대주교들이 이탈리아 건축 양식에 매료되어 지중해 연안의 따스한 색감을 알프스 자락으로 옮겨오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대주교들의 그 고집스러운 미감은 적어도 나에겐 완벽히 통했다. 은은한 파스텔 톤이 낯선 방문객을 다정하게 품어주는 듯한 기분 좋은 첫인상을 받았기 때문.

참으로 포근했던 첫 인상

두 번째 인상은 온통 '모차르트'였다. 도시 어디를 가도 그의 이름과 얼굴이 넘쳐난다. 정작 모차르트 하우스에서 마주한 진실은 조금 냉소적이다. 천재에게 이곳은 재능을 펼치기엔 너무 좁은 무대였고, 결국 그는 자유를 찾아 빈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도시와 그를 잇는 가장 강력한 끈은 '그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상징성뿐인 셈이다.

하지만 후대는 그 홈타운의 이점을 영리하게 파고들었다. 모차르트 쿠겔 초콜릿부터 아이스크림까지, 수많은 관광객을 유인하는 거대한 콘텐츠의 원천이 되었다.

천재 한 명이 수백년 뒤 후손들까지 풍요롭게 먹여 살리는 셈. "잘 키운 천재 하나, 열 부자 안 부럽다"는 말은 잘츠부르크에 너무 들어맞는 표현이다.

모차르트 없었으면 어쨌을 뻔

호엔잘츠부르크 요새에 올라서면 이 도시가 누렸던 부귀가 피부로 와닿는다. 잘츠부르크(Salzburg)라는 이름 자체가 '소금(Salz)의 성(Burg)'을 의미하니, 이미 수백 년 전부터 "나는 부자 도시다"라고 천명해 온 셈이다. 당시 소금은 '하얀 금'이라 불린 귀한 전략 자산이었다. 냉장고 없던 시절, 식품 보존의 열쇠를 쥔 이곳 대주교들은 할라인 광산의 질 좋은 암연을 독점하고 잘자흐 강을 오가는 배들에게 막대한 통행세를 거뒀다. 우리가 감탄하는 화려한 바로크 건축과 웅장한 성당들은 모두 그 '소금기 섞인 금화'로 세워진 것들이다.


900년간 단 한 번도 함락되지 않았다는 이 철옹성 꼭대기에서 마주한 360도 파노라마 뷰는 가히 압도적이다. 발아래 펼쳐진 풍경을 보니, 이곳이 단순히 방어용 요새가 아니라 강을 오가는 소금 배들을 감시하고 징수하던 '정찰과 수탈의 심장부'였음이 직감된다. 바위산 꼭대기에 거대한 성벽을 두른 것도 모자라, 내부에는 1년 이상 자급자족이 가능한 주거지, 대장간, 교회까지 갖춘 '완벽한 작은 세계'를 박아 넣었다. 자신의 권위를 공고히 하려 했던 인간의 거대한 욕망 덕분에, 몇백 년 뒤의 이방인인 나는 이토록 편안히 알프스의 비경을 누리고 있다.



내게 잘츠부르크는 아름다움과 아기자기함 그 자체로 기억될 것 같다. 미라벨 정원의 화사함, 카페 자허에서 음미한 자허 토르테와 비엔나식 커피인 비너 멜랑주, 그리고 햇볕에 부서지던 잘차흐 강의 윤슬까지.


부디 이 도시가 오래도록 나의 기억 속에서 잔잔하게 빛나는 마을로 남아주길 바라며..!


안녕, 우리들의 잘츠부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