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서툴면 어때, 이미 꽃은 피기 시작했는데

독일 생활 4개월차, 잔잔한 주말의 일상 조각

by 헤일리

독일에 온 지 꽉 채운 만 3개월. 첫 이스터 휴가까지 보내고 나니 어느덧 4월 중순이다. 1분기가 적응의 시간이었다면, 2분기는 이제 꽃을 피울 시기(!) 라고 스스로 정의해본다. 돌아보니 참 바지런히도 다녔다. 짧은 기간동안 소도시 10여 곳과 인근 국가 3개국을 쏘다녔으니 말이다. 너무 자주 떠돌아다닌 탓일까, 집순이의 삶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번 주말만큼은 멀리서 리프레쉬를 찾기보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여유를 만끽하며 에너지를 충전해 보기로 했다.


#1. 타우누스 자연공원에서 달리기

힘들 때 달려가고 싶은 나만의 공간이 독일에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기쁘게 Yes라고 답할 수 있다. 그곳은 바로 타우누스 자연공원 안의 '내 아지트'. 내 아지트로 지정한 것은, 정말 아무도 없는 고요함과 적막함이 존재하는 공간이자, 12km 달리기 코스의 딱 중간인 반환 지점이기 때문이다. 명칭은 공원이지만 사실상 산에 가깝다. 6km 정도의 업힐 코스를 숨차게 달리다 보면 내가 정한 그곳이 나타난다. 가지런히 쌓여 있는 잘린 통나무들 위에 휴대폰을 올려두고 사진을 남겨본다. 잠시 쉬어가며 마음을 재정비하고, 복잡했던 생각들을 가다듬는 귀한 시간. 구기동에 살 때 금선사가 나의 휴식처였다면, 이곳 독일에서도 나만의 안식처를 찾은 것 같아 참 다행이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많은 위로와 휴식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타우누스의 내 아지트


#2. 딸 아이와 자전거타기

타우누스 공원에서의 달리기 후, 곧바로 아이를 데리고 자전거를 함께 타러 나갔다. 이번 주 화요일에 드디어 한국에서 모든 이삿짐이 도착했고, 고대하던 우리의 자전거도 함께 왔기 때문. 독일 오기 전 아빠의 맹훈련 하에 두발자전거 타기 미션에 성공을 했기 때문에, 다행히 바로 얼추 타는 그녀.

날도 좋고, 벚꽃도 만개하고,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운 우리들의 자전거 타기. 맑은 풍경 속에서 행복하게 달리나 했는데, 자전거가 마음대로 컨트롤이 안될 때마다 온갖 짜증과 역정을 내는 아이 앞에서 초연하기 쉽지 않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아이의 여과 없는 감정 분출에 부모로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이다. 한국에서 남편과 육아를 함께하면 주말에 교대도 하고, 나만의 시간도 가지며 충전하면서 내 감정의 밸런스도 유지해왔는데, 이 곳에서는 나를 위한 시간이 없다보니 나의 게이지도 쉽게 차오른다. 아이의 잘못이 아님을 알면서도 내 인내심이 고갈되니 결국 비슷한 감정으로 맞대응하게 되고, 순식간에 드라마 한 편을 찍게 된다. 하루 한 시간이라도 온전한 내 시간 갖기가 목표인데, 이를 위해 잠을 줄이면 예민해질 테니 방법을 좀 더 고민해 보는걸로.

한적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의 너


#3. 테라스에서 독서하기

생각해 보니 지난 6개월간 제대로 몰입해서 책을 읽은 기억이 거의 없다. 출국 전 3개월은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이곳에 온 후 3개월은 적응한다는 변명으로 미뤄왔으니... 지적 자극과 인풋이 없으니 생각과 표현이 점점 빈곤해짐을 느낀다.

신기하게도 독일에서 읽고 싶은 책의 종류가 달라졌다. 요즘 나의 관심사는 유럽 역사, 서양 미술사, 그리고 독일 대문호들의 작품이다. 그래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다시 꺼내 들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읽은 것이 마지막인데, 이곳의 공기를 마시며 다시 읽으니 완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몇년 만의 데미안이지...


#4. 딸 아이와 홈베이킹 하기

긴 봄방학을 친구 없이 혼자 노느라 고생한 그녀. 그래서 그런가, 혼자서도 가능한 활동에 대해 적극적이 된 것 같다. '요즘의' 장래희망이 파티시에인 그녀는, 빵과 디저트 만들기에 부쩍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야심차게 기획해본 바나나 초코 머핀 만들기. 어제 마트 가서 각종 재료를 사고, 데코레이션할 초코 시럽과 설탕 과자도 꼼꼼히 챙겨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열심히 만들었다. 첫 베이킹 시도는 성공적! 다음 주에는 어떤 머핀 혹은 파이를 구워볼까, 행복한 고민 중이다. :)

성공적이었던 그녀의 첫 베이킹


타우누스의 고요함, 아이와 함께 탄 자전거, 테라스에서의 독서, 그리고 달콤한 머핀 향기까지.

아이의 짜증에 흔들리고 내 시간의 부족함에 조바심이 나기도 하지만, 타우누스의 내 아지트에서 멈췄던 그 마음으로 2분기를 살아내고 싶다.


2분기도 단단히 살아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