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하고 서늘한 동화의 얼굴
슈트루벨페터(더벅머리 페터)에 대해 혹시 들어본 적있는가. 독일에서는 국민 캐릭터급으로 유명한, 한껏 헝클어진 머리에 마구 뻗어나가는듯한 긴 손톱을 보유한 익살스런(?) 캐릭터다.
지난 주말 역시 날씨가 맑지 않다 보니, 또 어김없이 뮤지엄 패스를 지참하고 프랑크푸르트 시내로 나섰다. 이번 행선지는 내 친구 제미나이가 추천해 준 슈트루벨페터 박물관. 아이를 데리고 갈만한 뮤지엄을 추천해달라 했더니 이 곳으로 안내했다. 슈투르벨페터가 무엇인지 아무 지식이 없는 채로 갔는데, 결론적으로는 매우 만족스러운 전시 경험이었다. 새로운 아동문학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
이 슈트루벨페터라는 캐릭터의 기원은 184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신과 의사였던 하인리히 호프만이라는 의사가 3세 아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러 갔다가 마땅히 고를게 없어서, 직접 동화책을 그려서 수첩에 묶기 시작한 것. 1845년에 <어린아이들을 위한 재미있는 이야기와 익살스러운 그림들>로 출판이 되었다가, 이 책이 워낙에 인기를 끌자 주인공 격인 슈트루벨페터 이름을 따서 공식 제목이 바뀌게 되었다 한다. 의사가 손수 아들을 위해 그린 것도 놀랍지만, 더더욱 놀라운 것은 그 안에 담긴 잔혹한 이야기들이다.
페터는 머리카락과 손톱을 깎지 않아 더벅머리의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고,
엄지 손가락을 빠는 나쁜 습관이 있는 콘라트에겐 재단사가 와서 그 손가락을 절단해버리고,(!)
수프를 먹지 않겠다고 거부한 카스파는 며칠 만에 굶어 죽으며,(!!)
불장난을 한 파울린헨은 한 줌의 재로 타들어간다. (!!!)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고 하기에는 실로 충격 요법에 가까운 잔혹한 서사인데, 그 당시에는 이것이 교육적으로 용인되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오늘날 시각으로는 아동 학대 수준의 책이라는 평도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이 동화의 캐릭터로 박물관이 지어진 것부터가 그 방증일 터. 우리가 잘 아는 팀 버튼 감독의 영화 <가위손>의 비주얼과 다양한 공포 영화에 영감을 제공했다고 하고, 그림 형제의 동화와 함께 독일식 '잔혹 동화'의 전형으로 꼽히는 것도 그렇다. ADHD나 거식증 같은 증상을 문학적으로 묘사한 초기 사례로 연구되기도 한다고.
또 하나 재밌는 것은, 슈트루벨페터가 정치적 풍자물에도 스핀오프처럼 활용되었다는 사실. <슈트루벨히틀러>라는 작품은 영국의 로버트와 필립 스펜스 형제가 1941년에 나치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원작의 에피소드들을 뒤틀어서 히틀러와 나치 간부들을 조롱하는 이야기를 담은 것. 나치 지도부를 철없고 버릇없는 아이로 격하시키는 효과도 있었고, 잔혹한 결말 구조를 이용해 나치의 말로를 암시하는 서사로도 활용했다고 한다. 우리 시대의 밈(meme) 격이라고나 할까.
동화라는 것의 역할과 실체가 시간을 거듭하면서 변화해왔다는 것도 놀랍다. 그저 아름답고 교훈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오히려 어글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얻는 교육 효과를 노렸다는 것도.
흔히 우리는 시대를 불문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고전이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슈트루벨페터는 정형화된 고전의 범주에서 비껴나 있을지 모르나,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와 사회적 규범 사이의 충돌을 이토록 원색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생명력을 획득한다. 시대에 따라 그 해석의 결은 달라질지언정, 인간 내면의 뒤틀린 형상을 동화라는 거울로 비추어낸 이 기이한 기록이야말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다른 형태의 고전이 아닐까.
흐린 날씨 덕분에 만난 이 기묘한 영감이 다음 행선지에서는 또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우리들의 박물관 투어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