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서 마주한 낯익은 본능
바이에른 왕국의 본거지인 뮌헨에 왔으니, 님펜부르크 궁전을 보고 가지 않을 수가 없다. 님펜부르크 궁전은 1662년, 바이에른의 선제후 페르디난트 마리아가 결혼 10년 만에 고대하던 후계자를 얻자, 아내인 헨리에테 아델라이드에게 고생했다며 선물로 지어준 별궁이다. 님펜부르크(요정의 성)라는 이름도 아내가 직접 붙인 이름.
본궁도 아닌 별궁의 스케일이 이 정도라니, 그 당시 선제후의 통이 얼마나 컸는지, 바이에른 왕국의 부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님펜부르크를 둘러보며 느낀 것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이나 '인류의 본능에는 변함이 없구나'라는 점이었다.
첫 번째 본능은 바로 '탐미'다. 궁 안에는 루드비히 1세가 꾸민 미인 갤러리가 있다. 신분에 상관없이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미인 36명의 초상화를 걸어둔 곳이다.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변함이 없다. 그 갈망이 기술의 진보와 함께 오늘날 성형이나 각종 시술로 이어지고 있을 뿐.
재미있는 점은 이 36명의 여인을 그린 화가가 요제프 카를 슈틸러(Joseph Karl Stieler)라는 사실이다. 그는 우리가 잘 아는,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고뇌에 찬 표정으로 악보를 든 베토벤의 초상화를 그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거장의 고뇌를 거칠게 담아냈던 그의 붓끝은, 이곳 미인들의 얼굴 위에서는 한없이 부드럽고 매끈하게 변한다. 과거 슈틸러의 정교한 붓질이 담당했던 '보정'의 역할이, 이제는 현대의 의료 기술과 정교한 카메라 필터로 대체된 셈.
완벽에 가까운 아름다움이 큐레이션 된 공간이 과거의 궁전이라면, 2026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 공간은 인스타그램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그것을 가장 근사한 형태로 전시하려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는 시대를 막론하고 여전히 유효하다.
두번째 본능은 '유흥'과 '쾌락'의 본능이다.
궁을 둘러보다가 이해가 안가는 장면을 담은 그림을 만나 오디오 가이드를 들어보니, 그 당시 희한하고 잔인했던 유흥을 알게 된다. 바로 이것.
화려한 결혼식 축제의 일환으로 호수에 사슴을 몰아넣고 사냥개들이 물어뜯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배 위에서 우아하게 관람하는 장면.
다 뜯긴 사슴은, 다시 배 위로 올려져 사냥개들의 먹잇감으로 쓰였다 한다. 피가 흥건한 장면을 보며 도파민을 느꼈을 그 당시 인간들이, 자극적인 콘텐츠를 찾아 헤매는 현대의 우리와 다른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는 대목. 찾아보니 이 것은 당시 바이에른 왕실이 즐겼던 '수중 사냥' 축제 장면이라고.
유흥의 본능은 물 위에서 멈추지 않는다. 훗날 세계 최대의 맥주 축제가 될 옥토버페스트의 시작이 사실은 왕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경마 대회'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1810년 루드비히 1세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한 경마 대회가 열렸고, 관람객들의 목을 축이기 위해 맥주가 제공되었던 것인데, 조연이었던 맥주가 오히려 주연이 되면서 지금의 옥토버페스트가 된 것이라 한다. 시각적 쾌락이 미각적 쾌락으로 옮겨간 것.
또 다른 사치스러운 유흥을 마차 박물관에서도 접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금으로 된 썰매!
바이에른의 왕족들은 겨울에 눈이 내리면 밤마다 횃불을 들고 썰매 경주를 즐겼다고 한다. 썰매 앞머리에는 신화 속의 신, 황금 사자, 혹은 화려한 조각상들이 박혀 있다. 밤눈을 헤치며 황금빛 썰매가 횃불 사이로 번쩍이며 지나가는 광경은 그 자체로 거대한 쇼였을 것이다.
우리에겐 디즈니성의 모태로 알려진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주인공, 루드비히 2세는 특히 한겨울 밤에 혼자 화려한 로코코식 썰매를 타고 눈 덮인 알프스 산맥을 달렸다고 한다. 그 성도 본인이 혼자 은둔하기 위해 지은 것이니, 오로지 개인의 취미를 위해 국가 재정을 동원한 것. 거대하고 사치스러운 성들을 짓느라 국가재정을 파탄낸 그는 결국 폐위되고, 호수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당대에는 무지성으로 국가 재정을 바닥내며 손가락질받던 광기 어린 왕이었으나,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바이에른주는 그가 남긴 광기의 유산을 관광 상품화하여 막대한 부를 끌어모으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란..
여의도 면적의 2/3에 상응하는 거대한 님펜부르크 궁전을 나서며, 인간인 이상 우리는 과거와 그 유산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실감한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모양만 조금 달라졌을 뿐, 우리는 여전히 같은 본능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지독하게 닮은 종족이다.
먼 독일의 뮌헨에서 마주한 인류의 기묘한 동질감. 색다르고도 선연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수백 년 전의 그들과 같은 꿈을 꾸며, 같은 궤도 위를 달리고 있는 중일지도.